예전 한 티비 프로그램 중에 개그맨 이휘재씨가 나와 "그래 결정했어!"라고 외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결정의 순간에 두 가지 선택으로 인해 변하는 두 가지 미래...

만일 필자가 척수손상의 사고이후에 지금과는 전혀 다른 재활프로그램과 사회복귀훈련을 받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수술이후에 하루라도 빨리 환자의 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주었다면, ‘걸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면 허튼 희망으로 많은 돈도 낭비하고 재활의 시기를 놓치는 시간의 낭비는 없었을 것이다.

병원에서 하루라도 빨리 동료척수장애인들의 솔직하고 진지한 상담을 받게 했더라면, 몇 년씩 병원을 전전하지 않고 하루라도 빨리 사회로 나가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병원에서 가족과 함께 장애수용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면, 그 많은 척수장애인들이 이혼의 아픔을 겪지 않고 자녀와 생이별하는 아픔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장애 때문에 애써 여자 친구를 떠나보내는 우를 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병원에서 제대로 된 방광훈련과 욕창예방 교육을 받았다면, 방광염으로 욕창으로 자주 병원을 들락거리는 횟수를 조금이라도 줄였을 것이다.

척수손상이후에는 어떤 합병증과 후유증이 있을 거라는 책 한 권만 있었어도 사전예방과 건강증진이 가능했을 것이다.

제대로 휠체어를 사용하는 방법 운동 후에 자동적으로 스트레칭하는 방법을 교육받았었다면, 근골격계질환의 2차 손상의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추었을 것이다.

재무 관리하는 노하우를 누구라도 먼저 알려주었다면, 괜한 꼬임에 빠져서 재산을 탕진하고 화병에 몸도 마음도 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척수는 재생이 안 되기 때문에 허튼 곳에 함부로 돈쓰지 말라는 교육만 받았어도 그 비싼 민간요법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줄기세포 때문에 열풍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나의 길을 갔을 것이다.

장애가 있어도 공부를 하면 이 사회에서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주었다면 하루하루를 허송세월하며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8만의 척수장애인이 병원에서 제대로 준비된 사회복귀훈련을 받고 지역사회로 나올 수 있었다면, 입원초기부터 제대로 된 직업재활 상담과 훈련을 받았다면 많은 척수장애인들이 세금내는 장애인이 되었을 것이다.

풍부한 사회경험을 사장시키지 않고 사고 전의 풍부한 경력의 프리미엄을 누리고 원직장으로 복귀하여 직장동료들과 활기찬 사회활동을 했을 것이다. 또는 학교로 복귀하여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일 하고 싶고 일할 수 있는데 어쩔 수없이 수급권자가 되어 평생을 수동적인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다. 2010년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연구한 척수장애인실태조사에 의한 손상 전 무직은 5.9%이고, 손상 후 무직이 61.6%이라는 암담한 현실도 바뀌었을 것이다.

몸에 맞는 특수휠체어나 활동형 휠체어를 장애 초기에 현실적인 수가로 보급했더라면, 자세가 틀어지고 욕창으로 근골격계질환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에 돈을 허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지마비 척수장애인을 위한 이동기구(호이스트나 리프트)를 공급했다면, 가족이 몸이 망가져서 서로가 마음이 상하지 않았을 것이고, 활동보조인이 기피하는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렇듯 초기에 제대로 알려주는 것 없이 스스로 좌충우돌하면서 배우는 것이 그것이 인생이고 ‘옛날에는 다 그랬다.’라는 사탕발림의 이야기로 저급한 위안을 받는다.

통계란 집단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양적 기술을 반영하는 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반복된 실수나 오류를 굳이 몸으로 체험하고 배워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왜 선진국은 척수장애인의 재활을 위해 국가적으로 관리하고 투자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척수장애전문병원이 있어 팀제로 관리를 하고 전문재활센터가 있어 심리치료와 직업재활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이 수술직후부터 빠르게 투입이 되는지 알아야 한다. 고가의 보장구를 지급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한국의 척수장애인들도 제대로 선진화된 재활훈련이 필요하고 동료상담이 필요하고 사회복귀훈련과 직업교육, 학업상담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지혜이다. 계속되는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초기대응의 실패이고 시스템의 부재이다.

척수장애인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고 그 배우자와 가족, 직장동료, 지역사회 모두의 문제가 된다. 나비효과처럼 말이다. 한해에 2,000여 명씩 발생하는 척수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이 초기에 필자처럼 힘들이지 않고 건강하게 일상의 삶을 살기를 원한다.

제대로 된 재활병원과 사회복귀훈련까지 책임지는 재활시스템, 지역사회에 돌아가서도 만족할 만한 척수관련 프로그램과 지원이 있다면 가능하다. 이것은 소진을 예방하고 예산을 절감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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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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