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현재 소속된 직장이 없는 탓에 다소 웃기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발달장애인도 노동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대중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닌 이상, 그래야 합니다.

5월 1일은 노동절입니다. 노동자들이 더는 못 살겠다고 들고 일어났던 미국의 어느 5월 1일을 기념하다보니 그렇게 역사에 길이 남는 5월 1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노동절을 맞이하면서 노동조합은 집회도 하고, 많은 일터는 하루를 쉬었습니다.

이런 세상사와 무관하게 발달장애인이 노동자가 된다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제가 한국장애인개발원(이하 개발원)에 있었을 때 이야기입니다.

제 부서에서는 그것을 진짜로 알아야 할 대상인 발달장애인들도 알아듣기 쉬운 발달장애인법 해설서를 준비 중인데, 그 와중에 한 발달장애인 자문단원이 부서를 찾아왔습니다. 그 해설서 준비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가지 어이없어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당사자가 노동을 하지 않고 정부 수급비로 생활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자리를 찾아서 일을 한 소득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일자리를 찾기 정 어려우면 장애인복지관이나 장애인고용공단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했는데, 이것을 신기하게 생각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 분은 시설퇴소자 출신이셔서 직업교육이나 노동의식 교육 등이 부족했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노동을 하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것 이외에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 일을 해서 번 돈은 내가 번 돈이므로 내가 알아서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돈은 바르게 쓸 생각을 미리 짜서 써야겠지만, 자신이 직접 번 돈이야말로 내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남이 준 돈이라면 눈칫밥도 먹어가면서 써야겠지만(실제로 저도 용돈 타 쓰던 대학생 시절에는 집 눈치 봐가면서 돈을 써야 했습니다.) 내가 번 돈을 쓰는 것은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전혀 없으니 무엇을 하건 상관하지 않습니다.

제 경우에도 개발원 생활을 할 때는 어머니께 돈을 드렸으면 드렸지 돈을 달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부메랑을 맞은 셈이지만 제가 학자금대출 상환 프로그램을 짠 것도 제가 번 돈을 알아서 쓸 수 있기 때문에 과감한 상환 프로그램을 짠 것이고, 그것이 지금 위기를 맞고 있지만 나름 버텨내고 있습니다.

둘째, 노동이라는 것 자체가 단순히 돈을 버는 행위에 그친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다보면 사람과 사람을 만나서 해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사람과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나중에 한 번 짚고 넘어가겠지만 발달장애인에게 있어서 최고의 ‘보장구’는 사람입니다.

발달장애인들이 보호작업장에서든 정식 직장에서든 상대하는 사람과 만나서 일을 하게 됩니다. 저도 개발원 시절 같은 부서의 직원뿐만 아니라 총무부 같은 다른 부서와 협력해야 했던 일도 있었고, 부서를 떠나 같은 직장에 다닌다는 이유로 친해진 다른 부서 직원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주제도 일 관련 이야기도 있지만 일 밖의 이야기, 심지어는 프로야구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제 경우에도 야구를 주제로 딱딱한 분위기를 깨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두 동료가 각자 응원하는 팀의 경기 때문에 문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저는 “야구경기 도중 벌어진 일을 가지고 여기서도 싸우지 마세요.”라는 내용을 담은 문자메시지를 동료들에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퇴사 이후에도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의지하고 있고, 이 칼럼 시리즈를 쓰는데도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셋째, 이것은 제 정신과 주치의 선생님이 이야기 해주신 것을 그대로 인용해서 시작해보겠습니다.

“일을 해야 진짜로 쉴 수 있다!”

직장이 없이 노는 것은 좋은 일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힘든 것입니다. 물론 기초생활수급비 같은 사회급여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히 생활하기에는 힘든 비용입니다. 하다못해 번화가의 작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 여유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행이나 휴가를 보낼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럴 시간에는 일자리를 찾아서 장애인고용공단이나 고용노동부 산하 고용센터, 취업포털 사이트를 헤매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번 실업이 장기화될 경우 군산-전주 쪽으로 가려고 세워놓았던 휴가 계획을 취소할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발원에서 퇴사한 후 좋게 변화한 것을 굳이 따진다면, 개발원 생활을 위해 잠시 포기했던 새정치연합 당적을 복구, 즉 복당을 한 것 정도밖에 없습니다.

참고로 지금의 생활비는 정부의 실업급여를 일부 받으면서 생활하고 있고, 그나마 8월이면 끊어집니다. 그래서 8월이 오기 전에 재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각오가 나올 정도이면 직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더 큰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발달장애인도 엄연히 장애인이고, 노동할 권리가 있고, 법으로는 아니지만 도덕적으로 노동을 할 의무가 있습니다.

발달장애인들도 일을 하면 역설적으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음을 개발원 2년의 세월동안 배웠고, 지금 역설적으로 그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평소에는 물과 공기의 소중함을 잘 모르듯이 말이죠.

일자리를 찾고 싶다고요? 그렇다면 다음 이야기에서 그 에피소드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