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수장애인 이원준 씨(원내)는 장애인식개선 강사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찬우

※MH: 맨땅에 헤딩의 약자로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장애인을 일컫는 척수장애인들만의 은어이다.

이원준 씨(37)는 기갑부대의 부사관 출신이고 사고 당시에는 상무대의 기계화학교 부교관으로 복무 중이었다.

그는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하는 최중증의 척수장애인이 되었다. 전동휠체어도 손으로 움직이지 못하여 턱으로 움직이는 특수 장치로 휠체어를 구동한다.

이 정도의 장애이고 군대에서 다쳤다면 당연히 보훈 대상자가 되어 나라로부터 연금이나 의료혜택을 보장받고 자녀들을 걱정 없이 키울 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원준 씨는 그 어떤 혜택도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처지이다.

원준 씨는 약3년 전 지역축제의 자전거 라이딩에 참가 하던 중 사고로 사지마비의 척수장애인이 되었는데 사고당시가 근무일이 아니고 휴일(2011.8.13.토)이었다는 이유로 그 어떤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날은 장성 축령산에서 "산소축제"가 있었는데 전날 밤부터 엄청나게 폭우가 쏟아졌지만 전국에서 몰려든 300여명의 자전거 동호인들은 편백나무숲속에서 경주가 아닌 자연을 만끽하며 즐기며 라이딩을 하기 위해 모여들었고 악천우 임에도 코스를 축소 변경하여 소강상태일 때 강행하게 되었다

목적지를 얼마 남기지 않고 내리막 커브 길에서 브레이킹하며 갔음에도 빗물이 흐르던 시멘트포장도로는 너무나 미끄러웠고 커브 길에서 극복하지 못한 채로 나무와 충돌하였다. 헬맷도 착용했지만...

평소 군인 신분에 대한 자부심이 그 누구보다도 컸기에 고참들이 미쳤다라고 했지만 자전거로 출퇴근길 60km를 즐겨 탔었다고 했다.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건강에 대한 애착이 컸기에 술, 담배도 접하지 않았을 정도로 자기관리가 철저한 원준씨였다.

사고 후 의료비조차 본인이 다 부담을 하고, 국민연금처럼 장애연금도 받지 못한다고 한다. 군인연금은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보험하나 들어 놓은 것을 받아서 2년 4개월간 밀린 의료비 내고 남은 돈으로 아파트에 전세로 살다가 만기가 되었고 장애인의 몸으로 자주 이사를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 지금의 빌라를 무리가 되더라도 장만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국민생활기초생활수급권의 혜택도 받을 수가 없게 되었다.

자녀는 15살, 10살, 7살짜리 셋인데 이들을 바라보니 눈물만 나온다고 한다. 가정을 위해서라면 거리에서 행상을 할 정도의 의지는 가지고 있지만 사회의 편견에 중증장애의 몸으로 직장생활은 꿈을 꿀 수도 없다.

보다 못해 사지마비의 남편을 두고 부인이 보험회사에 취직을 했지만 지금 같은 불경기에 많이 어렵다고 한다.

활동보조인을 2개월째 구할 수가 없어서 어머님이 도와주고는 있지만 이래저래 불편함에 살아가는 맛이 안 난다고 한다.

현재 원준 씨의 유일한 수입은 척수협회의 장애인식개선강사로 활동하며 나오는 아주 적은 활동비다. 지금은 방학 때라 일도 없어 개학 때까지는 실로 막막할 수밖에는 없다.

다행히 지역 내의 자선단체에서 딱한 소식을 듣고 6개월 동안만 매월 13만원씩 지원을 해 준다고 해서 안도를 하고 있다.

국가보훈처에 민원도 하고 축제를 개최한 지자체를 상대로 소송이라도 해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개인적으로 여기저기 알아보아도 그 높은 벽을 넘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나쁜 짓을 하다가 다친 것도 아니고 군인의 신분 중에 다친 것인데 이해할 수가 없다.

이 나라는 그놈의 규정 탓에 피 같은 나이의 직업군인이었고 아이 셋의 가장에게도 그 어떤 지원도 못해 주는 허울 좋은 복지국가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중도장애인에게 다친 경위에 따라 보훈이니 산재니, 교통 보험 등의 다양한 잣대를 들이대어 끼리끼리 문화를 만들고, 이도저도 아닌 장애인에게는 사고 후에도 거리감을 두게 하고 소외감을 주고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나라의 혜택(국민기초생활수급권제도)을 받도록 해 놓았지만 여기에도 해당이 안 되는 장애인들은 MH라는 사각지대에 속해있다.

원준씨가 수급권자가 되려면 집 명의를 타인 앞으로 하고 법적으로 이혼을 하는 등의 양심에 꺼리는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원준씨도 원하지 않고 국가가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빈익빈 부익부도 아니고 무전유죄 유전무죄도 아니고 시대적 양극화도 아닌 이상한 계층(사각지대)이 생산되고 있다.

중증인 척수장애인은 장애유지를 위한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장애유형이다. 보장구 구입과 이동에 드는 비용, 경제활동을 못함으로 생기는 문제, 언제 발생할지 의료비 지출로 불안한 장애유형이다. 노후준비는 꿈도 꿀 수 없다.

애석하게도 척수장애인은 경력단절의 대표적인 부류이고 근로능력은 있으나 근로시장에서 철저하게 소외받는 계층이다.

우리도 뉴질랜드의 ACC제도처럼 일을 하다 다친 사람들은 비슷한 보상을 받는 그런 제도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일을 하고자 하는 장애인들은 사회활동을 통해서 부가적인 수익을 얻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을 하고 가장의 역할을 충실히 하도록 하여야 한다.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버티다가 원준씨의 가정이 파괴되어 아이들도 부인도 뿔뿔이 흩어지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국가보훈처가 보상은 못해준다고 하면 가장이 일을 통해 가정을 돌볼 수 있도록 (원직장으로 복귀는 안 되더라도) 근로제공은 할 수 있지 않은가? 전우애는 도대체 무엇인가?

몸은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해도 전화 상담이나 병원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심리상담 등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도 많다.

틀에 갇히지 말고 모 아니면 도로 경직되기 보다는 유연하게 사정을 하고 지원을 하고 근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생산적인 복지체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고 전 기갑부대의 부사관으로 근무 당시 늠름한 모습. ⓒ이찬우

사고 전 세 아이의 아빠로 단란하던 모습. 지금은 아이들을 안아줄 수도 없다. ⓒ이찬우

사고 바로 전에 출발할 때 기념포즈. 두 다리로 서있던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이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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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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