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출연자들의 낭독공연 ‘청혼’의 한 장면. ⓒ이찬우

한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토요일인 지난 27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페럼타워 3층 페럼홀에서 이 세상에 없었던 아름다운 공연이 열렸다.

시각장애인과 척수장애인들이 목소리만으로 한편의 라디오드라마를 공연하는 것이다.

김병찬 아나운서의 사회로 시작된 1부의 첫 번째 무대는 안톤 체홉의 희곡인 ‘청혼’을 시각장애인들이 낭독공연을 하였고, 이어지는 두 번째 무대는 척수장애인들이 주축이 되어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햄릿’의 낭독공연이 있었다.

시각장애인들은 각자의 점자정보단말기를 이용하여 대본을 손으로 읽으면서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감성적으로 목소리 공연을 완벽하게 마쳐 관객들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척수장애인들의 공연은 전혀 손색이 없었다. 휠체어에 앉았지만 온몸으로 연기를 하며 하는 낭독공연은 또 다른 묘미를 주었으며 관객 모두가 햄릿왕자의 고뇌에 빠지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여 많은 갈채와 환호를 받았다.

감동의 공연에 이어진 2부 순서에서는 나경원 국회의원의 시낭송과 가수 김종환, 이라 킴 등의 게스트와 함께하는 순서로 공연에 함께하신 관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보는 것에 너무 익숙한 우리에게 낭독공연은 귀로 듣는 것만으로도 더욱 상상하게 하고 감동을 받을 수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2014년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토요일에 실로 가슴 따스한 공연이었다.

우리의 선입견과 고정된 틀을 깨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시작하고 도전하고 멈추지 않을 때에 가능하다.

시각장애인과 척수장애인들이 성우(목소리 배우)의 꿈을 가지고 4년 전에 시작을 하여 지금껏 도전하여 멈추지 않았다. 이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격려해 주는 방법은 우리들의 무한한 인정과 축하 밖에는 없다.

눈으로 일할 수 없지만, 몸으로는 일을 할 수 없지만 그들은 목소리를 통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장애인이 방송인이란 직업을 꿈도 꿀 수 없었던 불모지에 불가능을 딛고 희망을 꿈꾸는 그들이 이 시대의 진정한 용자(勇者)가 될 수 있도록 응원이 필요하다.

이 일을 처음 기획하신 분은 권희덕 선생님으로 76년 동아방송 성우로 시작하여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고 최진실 씨의 CF 멘트로 유명하고 각종 외화의 여주인공 목소리를 통하여 우리에게는 목소리로 너무나 익숙하신 분이시다.

이 분이 목소리를 통한 장애인들의 직업을 계획하시고 오래 전부터 시각장애인들을 지도하시고 가능성을 확인하셨고 시각장애인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위해 보이스 트레이닝의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올해부터는 척수장애인들이 가지고 있는 무궁한 가능성을 확인하시고 길을 열어 주셨다. 한 해 동안 매주 월요일 오후 이룸센터에서 만나 연습과 지도를 반복하는 장기 레이스 끝에 이번 공연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권희덕 선생님은 총감독의 역할을 하시고, 척수장애인인 김영진 KBS드라마 피디가 연출을 도와주셨다.

김영진 피디는 1998년 방영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보인 KBS특별기획 ‘야망의 전설’을 연출하셨다. 이후 교통사고로 척수장애인이 되었지만 계속하여 현장에서 현역 PD로 활동하시는 의지의 한국인이다.

2012년 12월 성탄특집극 ‘고마워 웃게 해줘서’는 2102년 45회 휴스톤 국제영화제 TV영화부분대상을 수상하였다. 이후에도 매년 주옥같은 드라마를 연출하고 계신다.

출연진 중에는 한때 대한민국 최고의 휠체어스포츠댄서이었고 지금은 휠체어무용가로 현장에서 활동하며 후학들도 양성하고 있는 김용우 씨가 새로운 도전을 위하여 1년간의 연습 결과를 통해 우리에게 또 다른 재능을 선보였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의 장애인식개선교육강사로 활동 중인 송치현 씨와 임현우 씨도 그동안의 땀의 결실을 당당히 보여 주겠다는 각오로 임했고 매우 발전적인 결과를 안겨주었다.

남들이 했던 길을 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노력만 하면 된다. 하지만 남들이 하지 않았던 길을 가는 것은 극심한 두려움과 외로움이 동반한다. 하지만 가치가 있고 보람은 훨씬 더 크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의 마지막 절에 이런 구절이 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갈라져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것으로 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라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조력자들과 기꺼이 도전하는 장애인 당사자, 그 길의 앞뒤에서 밀고 끌어주는 봉사자들이 있는 한 세상은 긍정의 에너지가 넘칠 것이다.

12월의 아름다운 선물이 공연에 참석한 모든 이의 가슴에 전달되었을 것이고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이에게 널리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시각장애인 참가자는 ‘에니메이션 더빙하는 것이 꿈이다’라고 말을 해서 필자의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가능성을 보여준 이번 공연처럼 시간은 걸릴지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희망하건데 새로운 도전을 통해 가능성을 보여준 이들에게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되는 정상적인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척수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이 함께 한 낭독공연 ‘햄릿’의 한 장면. ⓒ이찬우

나경원 국회의원의 시낭독후에 김병찬 아나운서와 공연에 대한 감동을 나누고 있다. ⓒ이찬우

공연 전에 출연자인 김용우 씨와 기념촬영. ⓒ이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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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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