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막의 길은 내 마음 속으로 이어지고 있다. 내가 달려 온 사하라 240㎞는 내 삶의 여정의 일부분이기에. ⓒkbs 방송 화면 캡처

사하라 240㎞, 사막의 길은 끝났다. 내일 카이로 근교로 이동해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는 지역 10㎞를 달리면 ‘레이싱 더 플래닛’에서 주최한 사하라 250㎞ 레이스는 막을 내린다.

내일 달릴 구간은 사막이 아니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를 달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서 사막의 길은 끝나지 않았다. 사막은 길이면서도 또한 길이 아니었다. 사막에는 길이 있으면서도 또한 길이 없었다.

길이면서도 길이 아닌, 있으면서도 없는 사막의 길 240㎞를 달려 왔다. 사하라에서 내가 밟고 온 땅이 나의 길이었다.

다른 모두도 그들이 밟고 온 땅이 그들의 길이었다. 모든 레이서들은 사하라에 자신만의 고유한 길을 만들었다.

지금 사막의 길은 내 마음 속으로 이어지고 있다. 내가 달려 온 사하라 240㎞는 내 삶의 여정의 일부분이기에.

피니시 라인을 통과해서부터 지금까지 여러 사람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단지 내가 앞을 못 보는 장애인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물론 앞을 못 보고 달린다는 건 힘든 일이었다. 체력 소모와 감당해야 할 고통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심했다.

그러나 나는 내 길을 달려왔을 뿐이다. 삶은 같은 시간대를 살지라도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이기에.

두 시 무렵, 점심을 먹고 캠프 밖에 앉아서 사막을 바라보았다. 이글거리는 태양과 염열로 일렁이는 대기와 눈이 부신 대지를 상상하면서 사막에 찍혀 있는 내 발자국을 바라보았다.

“미스터 송, 사막에서 무얼 보고 있소?”

주로에서 잠시 대화를 나누었던 영국인 브랜튼이었다.

“내 발자국을 보고 있었소.”

“당신의 발자국은 사하라의 시간의 지층 위에 뚜렷이 남아 있을 것이오.”

“미스터 브랜튼, 내가 장애인이라서 그런 찬사를 한다면 사양하겠소. 나는 내 길을 달려 왔을 뿐이오.”

“미스터 송, 나는 증권가에서 욕망 때문에 파멸되는 사람들을 많이 봤소. 제어할 수 없는 욕망이 결국은 재앙을 가져다주더군요. 난 이번에 당신에게서 처음으로 아름다운 욕망을 보았소. 자신의 길을 달려왔을 뿐이라는 당신의 말을 이해하오. 하지만 당신이 달려온 길은 위대한 길이었소.그 누구도 달릴 수 없는 위대한 길이었소. 당신의 아름다운 욕망이 개척한 길이었소.”

깨알 같은 점자를 해독하기 위해 손가락 끝에 온 신경을 모아서 하나하나 짚으며 보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내가 달려온 사하라의 지표면에 널려 있는 돌들을 밟을 때마다 그 점자들을 생각했다.

깨알 같은 점자와 사하라의 돌은 내게 똑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점자 하나, 돌 하나가 내게 준 고통의 의미는 같은 것이었다.

점자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입력되어 마침내 마음의 눈을 뜨고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듯이 사하라의 돌들을 밟고 240 ㎞를 달려온 지금 나는 또 다른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장애의 몸으로 사하라를 달려온 것이 꼭 찬사를 받아 마땅한 일일까? 앞을 볼 수 있고 못 보는 그 차이일 뿐 그 때문에 찬사를 받을 일은 아닌 것 같다. 누구에게나 차이는 있다. 일흔네 살의 부르피 노인도 사하라를 달리지 않았던가.

내가 지향하는 삶은 그 차이를 인정하고 내 나름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내 능력을 발휘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사하라 레이스에 참가하겠다고 했을 때 열이면 열 사람 모두 반대를 했다. 내가 앞을 볼 수 없다는 그 사실 하나가 반대를 하는 사람들의 보편의 잣대이자 기준이었다.

그러나 보편의 잣대나 기준에 맞추어서 산다면 그 보편이라는 안이함 너머에 있는 새롭고 값진 삶의 의미와 가치를 모르는 무미건조한 삶에 불과할 것이다.

내가 제대를 했을 때, 나를 보는 사람들의 보편의 잣대이자 기준은 ‘평생 동안 해주는 밥이나 먹으면서 방안에서 지내야 할 팔자’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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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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