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것은 휴식이 아니었다. 쉬어야겠다는 생각마저도 없이 서리 맞은 배추 잎 같은 몸을 추스르지 못해 그렇게 누워 있을 뿐이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내게 창용찬씨가 알루미늄 시트를 깔고 배낭에서 슬리핑백을 꺼내서 지퍼를 열어주었다.

고맙다는 말은 차치하고 고마운 마음까지 들지 않았다.

내 몸과 정신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생각과 행동, 즉 타인의 배려에 대한 감사의 말과 생각마저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본능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만 할 뿐.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동안 나는 공전하는 지구에 등을 대고 누워 천체의 운행 법칙에 따라 우주로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짧은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졌다.

“미스터 송, 이제 마지막이에요. 캠프에서 당신의 아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나를 깨운 메리 아담스가 혼미한 정신으로 있는 내게 말했다.

아! 민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

고압 전류에 감전이라도 된 것 마냥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들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드나 보네.”

창용찬씨가 하는 말이 또렷이 들렸다.

죽음 같은 깊은 휴식 때문인지 아들 민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정신이 들었다.

“핏줄이 원래 그런 거야. 낮에도 말했지만 우리가 다 포기를 해도 송 관장만은 끝까지 완주할 거야. 아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포기를 할 수 있겠어.”

김성관씨의 말을 들은 후 ‘예,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하고 속으로 대답했다.

“자, 마지막을 위해서 좀 먹어 둬.”

창용찬씨가 쥐어 주는 비스킷과 말린 바나나를 꼭꼭 씹어 먹었다. 비스킷과 말린 바나나를 대여섯 개씩 먹고 물을 마시고 나니 허기가 가셨다.

마지막 구간 9㎞.

여기까지 달려 온 231㎞가 순간을 달려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아 있는 9㎞ 역시 순간순간 발걸음을 내디디며 가리라고 다짐했다.

어둠 속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새벽의 대기는 여전히 싸늘했다. 새벽, 닭이 울던 고향집이 떠올랐다.

군 입대를 하기 위해 마을 동구 밖을 나서며 몇 번이나 뒤돌아보았던 고향집, 눈물을 훔치며 손을 흔들고 계시던 어머니, 아, 다시는 볼 수 없는 어머니와 고향집.

그로부터 23년, 그 절망과 고난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 기적을 이루고 있다.

죽기 위해 저수지에 몸을 던졌을 때를 생각하면 나는 분명 기적을 이루고 있다.

그 기적의 완성을 이루려고 지금 걸음을 내디디고 있는 것이다.

일행은 지평선 위 하늘이 밝아오는 여명을 보고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내 마음의 지평이 밝아오는 여명을 보고 있다.

그리고 여명 다음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내게도 아들 민이 태양처럼 떠오를 것이다.

지면에 깔린 자잘한 돌이 밟혔다. 통증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통증을 느끼면서 생각했다. 통증을 느낄 수 있는 신경 세포가 살아 있는 한 레이스를 계속할 수 있으리라고.<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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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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