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 째 구릉을 넘어설 무렵 모래폭풍이 몰려왔다. ⓒkbs 방송 화면 캡처

모래밭을 벗어나자 마사토 같은 굵은 모래와 잔돌이 섞여있는 낮은 구릉지대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구릉을 넘어갔을 때 뱃속에서 불협화음을 내며 속이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아까 먹은 칼국수가 탈을 일으킨 것 같았다. 일행에게 폐가 될 것 같아서 내색을 않고 계속 달렸다. 다섯 번째 구릉을 넘어설 무렵 모래폭풍이 불어왔다.

“모래폭풍이 잠잠해질 때까지 쉬었다 가죠.”

나는 ‘모래 폭풍이 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하는 심정으로 쉬는 자리에서 벗어나 불편한 속에 있는 것을 배설했다.

설사가 나왔다. 어둠을 휘저으며 음산한 소리와 함께 세차게 불어오는 모래 폭풍 속에서 엉덩이를 까고 쭈그려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참으로 볼썽사나운 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프로 얼굴을 감싸고 쭈그리고 앉아서 모래 폭풍이 끝날 때까지라도 속을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배설하리라 작정했다. 구릉지대를 벗어나자 다시 평탄한 모래밭이 시작되었다.

“자, 지금부터 밤의 제왕 송경태가 앞장을 서서 여러 분들을 에스코트 하겠습니다.”

“참, 밤이 되면 송 관장님이 우릴 에스코트해준다고 했었죠.”

“여러분들은 맹인의 안내를 받는 세계 최초의 레이서들입니다.”

내가 선두에 서고 김성관 씨, 정 혜경 씨, 창용찬 씨 순서로 줄을 지어 달렸다.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이곳까지 왔는데 도움 없이 선두에서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잠시나마 들뜨게 했다. 다행히 평지인데다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모래밭이어서 마음 놓고 달릴 수 있었다.

“송 관장님, 속도가 너무 빨라요. 만약 시각장애인 마라톤 대회가 있으면 송 관장님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겠어요.”

그러나 내가 누리던 기쁨도 잠시였다. 뱃속이 심하게 요동치며 아랫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또 설사가 나올 것 같았다.

“여러분 먼저 가십시오. 제게 급한 용무가 생겼습니다.”

“배탈이라도 난 거야? 아까 모래폭풍이 불 때도 이탈해서 한참 만에 오더니.”

창용찬 씨가 걱정스레 물었다. 나는 미처 대답할 겨를도 없이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 반바지를 내렸다. 밤이라서 다행이었다. 남자만 있다면 모를까 숙녀인 정혜경씨가 있는 데서 민망한 꼴을 보인다는 게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기에.

아랫배에서 느끼는 묵지근한 통증이 배설을 하고 나서도 가셔지지 않았다. 쏟아놓은 배설물은 거의가 수분이었다. 낮에는 태양열이 수분을 앗아가더니 밤이 되자 설사까지 내 몸의 수분을 쏟아내게 했다. 용변을 끝내고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갔다.

“송 관장님, 과연 밤의 제왕입니다. 어떡하나 보려고 아무 말도 안 하고 기다려 봤거든요. 그런데 망설임 없이 찾아오네요.”

“혜경 씨, 오감보다 더 뛰어난 게 직감이거든요. 눈을 잃은 후 오감도 발달했지만 직감이 더 발달했어요. 친구한테 들은 예긴데 고향 마을에 당숙되는 분이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 보셨대요. 어느 날 당숙이 저만치 오시는 걸 보고 인사하기 귀찮아서 방향을 바꾸어 가려고 하자 호통을 치시더래요.

어른한테 인사도 안 하고 간다고.”

“정말 이해하기 힘든 직감이네요. 그건 그렇고 송 관장님, 괜찮으세요? 설사를 하고 나면 체력이 급격히 떨어질 텐데….”

”그래, 걱정이네. 앞으로 남은 거리가 25㎞ 정도나 남았는데

어떡하지?”

“형님, 염려 마세요. 기어서라도 갈 테니까요.”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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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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