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레이스가 다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푸근한 안도와 뿌듯한 행복을 느꼈다. 민이 가져다 준 재스민차를 마시고 2㎞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노천 온천을 향해 출발했다. 마을을 벗어나서 500m쯤 갔을 때 창용찬씨가 걸음을 멈추었다.

“온천이 어느 방향인지 모르겠어. 앞서 간 사람들 발자국도 안 보여.”

“잠시만 기다려 보지요. 온천에서 오는 사람이 있던 지 아니면 가는 사람이 있을 것 같으니까요.”

정혜경씨의 말에 일행은 우두커니 서서 주위를 살폈다. 잠시 시간이 지났을 때, 지면에 딱딱한 발굽이 닿는 소리가 들렸다.

“형님 누가 오고 있어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귀를 기울이며 말했다.

“송 관장, 청각은 정말 예민하군.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데.”

곧 정혜경씨의 생기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창 회장님 정말 누가 오고 있어요. 당나귀를 타고 오는 걸로 봐서 원주민인 것 같아요.”

다가온 원주민에게 온천의 위치를 영어로 물었지만 소통이 안 되었다. 정혜경씨가 몸을 씻는 시늉을 해보이자 그제야 당나귀를 대추야자 나무에 매어두고 앞장서서 걸어갔다.

“아, 저기 방송차가 있네요.”

노천 온천을 촬영하기 위해 주차해 둔 차를 정혜경씨가 발견했다.

김성관씨가 고마움의 표시로 원주민에게 10달러를 건네자 손가락으로 동그라미 두 개를 만들어 보이며 100달러를 요구한다고 했다.

정말 터무니없는 요구였다. 아마도 며칠에 걸려 염열이 이글거리는 사막을 달려 온 우리들이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처럼 보여서 그런 터무니없는 요구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송 관장님, 저 경선이에요. 고생 많이 하셨지요?”

레이스를 포기하고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배경선씨가 다가왔다.

“제가 온천탕에 안내해 드릴게요.”

배경선씨 설명에 따르면 온천수는 직경 10㎝의 파이프를 통해서 공급되고, 욕탕은 가로 세로 2m에 높이가 1m의 공간이라고 했다.

노천 온천이라는 말을 듣고 상상했던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소금버캐가 서걱거리는 몸이라 그나마도 감지덕지였다.

“경선씨, 지금 몇 사람이 탕에 있어요?”

“여섯 분이 계세요.”

“옷을 입고 있어요, 아니면 벗고 있어요?”

“입은 분도 있고 벗은 분도 있어요.”

나는 땀에 절어 서걱거리는 옷을 빨기도 할 겸 옷을 입은 채 탕에 들어갔다. 비릿한 석회 냄새가 올라오는 물은 미지근했다. 물속에 온몸을 담그고 있다는 사실이 예상치 못했던 행복으로 환치되었다.

주로 개설자의 존재가 떠올랐다. 지금까지 가졌던 증오심이 깨끗이 녹아 내렸다.

온천욕을 끝내고 해질 무렵에 다시 레이스를 시작했다. 지나온 체크 포인트에서와는 달리 충분한 휴식과 온천욕까지 하고 난 후여서 그런지 몸도 마음도 가뿐했다.

잡초와 나무들이 서있는 지역을 달렸다. 체크 포인트가 있는 마을을 벗어났는데도 잡초와 나무들이 잇는 걸로 보아 오아시스의 면적이 상당히 넓은 것 같았다.

붉은 흙과 누런 빛깔의 풀이 자라고 있는 낮은 구릉을 넘어가자 교목들이 서 있는 사이로 오솔길이 나타났다. 그 길이 끝나는 지점에 작은 마을이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마을 어귀에서 우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고 했다.<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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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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