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눈 대신 온 몸으로 초록색을 보았다. 살갗에 닿는 산소의 신선함 속에 있는 초록색을 보았다.

대양의 섬과 같은 사하라사막의 오아시스에는 생명을 키워주는 물이 있었고 그 물을 먹고 자란 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나무가 뿜어내는 산소는 신선했다.

염열이 이글거리는 사막의 대기에 있는 산소와는 질이 달랐다. 생명이 뿜어내는 산소이기 때문이다.

오아시스가 보이는 언덕에서 사진 촬영을 했다. 아름다운 오아시스 풍경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체액을 말리는 메마른 대지를 달려 온 모두들에게는 오아시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순간, 몸과 마음이 희열을 느꼈으리라.

그때,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일행은 눈으로 오아시스를 보고 있을 때 나는 몸으로 오아시스를 받아들였다.

오아시스 초입에서 원주민이 팔고 있는 대추야자를 샀다. 굵은 대추만한, 말 그대로 대추야자를 입에 넣고 씹으니 자연의 단맛이 입안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레이스를 하는 동안 가공된 음식만 먹어 온 터라 대추야자 한 알의 쫄깃하면서도 풍부한 단맛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었다.

오아시스 마을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체크 포인트를 향해 가는 동안 동네 아이들이 나와서 구경을 하고 있다고 했다.

대양 한가운데 있는 섬이나 다름없는 오아시스에서 외지인을 만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으리라.

스물세 개 나라에서 온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들이 몰려 왔으니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구경거리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나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을 상상해 보았다. 피부는 사하라의 대지를 닮아서 갈색일 터이고 눈동자는 검고 눈이 크리라.

콧날은 오뚝하고 머리카락은 까마귀 털처럼 검은 윤기가 흐르리라. 대여섯 살 어린 녀석 중에서 코를 흘리는 녀석도 있을 테고 조금 전까지 갖고 놀던 놀잇감을 들고 있는 녀석도 있을 것이다.

롱데이 구간 80㎞에서 절반인 40.5㎞를 달려왔다는 절반의 안도와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에 들어섰다는 반가움이 걸음을 가볍게 했다.

뿔피리 소리, 비둘기 우는 소리, 당나귀 우는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닭 우는 소리, 개가 짖는 소리. 아이들이 재잘 거리는 소리 등.

귀에 익숙한 소리들이 들려 왔다. 흙벽돌로 지은 집들이 있는 마을로 들어서자 주민들이 모두 나와 구경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마을이 생긴 이래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몰려오기는 처음일지도 모른다.

변화 없이 단조롭게 살고 있던 마을에 몰려 온 이방인들은 고요한 일상을 흔들어 놓았다.

마을 가운데 키가 큰 교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곳에 체크 포인트가 자리 잡고 있었다. 다섯 번째 체크 포인트였다.

텐트의 좁은 그늘에 앉을 자리가 없어서 기다려야 했던 지금까지의 체크 포인트에 비하면 그야말로 환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내게로 전해 오는 뜨거운 피의 흐름, 아, 동질의 유전인자가 지닌 생명의 자장이 서로를 당기고 있었다.

내가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아들 민이 지니고 있는 생명의 자장이 나를 끌어 준 힘이었으리라.

“아버지, 괜찮으세요?”

“그래. 괜찮아. 너 고생이 많지?”

“고생은요. 아버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요.”

민은 지금 웃고 있을 것이다. 나를 쏙 빼닮았다는 녀석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아버지, 잠시만 계세요. 따끈한 재스민차를 준비해 올게요. 피로 회복에 좋대요.”

“송 관장, 정말 보기 좋은 장면이야.”

창용찬씨가 내 어깨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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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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