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저 언덕 너머에 오아시스가 있어요.” ⓒkbs 방송 화면 캡처

창용찬씨가 내 정신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내 정신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정상적인 레이스가 아닌 무엇에 쫓기듯이 정신 줄을 놓아버린 채 달리고 있었다.

“잠깐 쉬어. 유 팀장 아까처럼 그늘 좀 만들어 줘.”

창용찬씨가 내 정신이 온전치 않은 것을 간파했는지 목소리가 단호하면서도 힘이 실려 있었다.

“송 관장, 왜 그랬어? 송 관장 표정이 평소와는 달랐어. 꼭 무엇에 홀린 사람 같았어.”

창용찬씨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무어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송 관장, 여기만 지나면 오아시스가 있을 거야. 오아시스에서 충분히 휴식을 하고나면 체력도 보충이 될 거야. 그리고 오아시스에서 자네 아들이 기다리고 있어.”

‘그래! 민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내 마음 깊은 데서 뜨거운 그 무엇이 솟구치고 있었다. 한 번도 눈으로 본 적이 없는 아들 민의 얼굴이 떠오른다.

민의 얼굴은 젊은 날의 내 얼굴이었다. 솟구치던 뜨거운 그 무엇이 내 마음을 충만하게 채우고 있었다.

“이보게 송 관장, 우리 몸이 지금 사하라를 달리고 있지만 사실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길을 달리고 있는 거라네. 조금 전 자네는 마음속에 있는 길을 잠시 잃었던 모양이네.”

김성관씨의 말씀이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그랬다. 내 마음 속에 펼쳐졌던 두려움이라는 신기루가 내 마음의 길을 잃게 만들었다.

“김 회장님, 고맙습니다. 이제 마음속의 길을 찾았습니다.”

“송 관장님, 이제 보니 모르쇠는 아니네요.”

정혜경씨의 재치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다른 이들도 청량하게 웃었다.

“자, 출발합시다.”

창용찬씨의 말에 따라 출발 할 채비를 차렸다.

“창 회장님, 제가 앞에 가서 정찰을 하겠습니다.”

유지성씨가 사막의 아들답게 먼저 달려갔다.

나를 배려해 주는 모든 이들이 고마웠다.

“송 관장님, 오늘이 롱데이잖아요. 밤에도 레이스를 해야 될 텐데 그때는 송 관장님이 우리를 에스코트해주어야 해요.”

정혜경씨의 재치가 또 한 번 우리에게 웃음을 주었다.

“그러죠. 밤에는 내가 거리낄 게 없으니까요.”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지요?”

“염려 마세요. 설마하니 내가 밤길을 잃겠어요.”

“유 팀장이 오아시스를 발견한 모양이에요.”

창용찬씨 말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유지성씨가 달려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바로 저 언덕 너머에 오아시스가 있어요.”

“유 팀장님, 설마 신기루를 보신 건 아니죠?”

“혜경씨, 내가 본 게 신기루라면 지금 혜경씨가 보고 있는 내가 신기루일 겁니다.”

내가 가장 보고 싶은 색깔은 초록색이다. 초록은 생명의 색이기 때문이다. 황막한 대지를 달려 온 모두들은 시야 가득 들어오는 생명의 윤기가 빛나는 초록색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으리라.<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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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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