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 보다 아름다운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피지도 못하고 먼 길 떠난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아직도 차디찬 바다 속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소망해 본다.

화려한 계절 봄. 그러나 올 봄은 화려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화려 할 수 없기에 더욱 안타까운 이 봄에 고양 꽃 박람회를 찾았다. 일산 호수공원에서 개최되는 고양 국제 꽃 박람회도 세월호 아픔을 함께 하고자 화려한 개막식 행사를 모두 취소하고 희생자와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마음으로 소박하게 치러지고 있다.

호수공원에 차려진 꽃 박람회는 올해로 열일곱 해를 맞는다. ‘압도’ 라 불린 호수공원은 조선시대 영조때, 고양군지에 호수공원일대를 압도라 불렀다. “오리 섬”이라는 뜻의 압도는 갈대 군락지였다. 압도에서 생산된 갈대는 다듬지 않는 “초란”과 잘 다듬어진 갈대인“정란”으로 구분하여 국가에 공납하였다. 품질이 우수래 공예품과 생활용품을 만들어 쓰였고 조선시대에는 갈대로 둘러싸인 압도가 감옥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박람회장을 들어서니 세월호 실종자의 무사귀한을 기다리는 듯 노란 튜율립이 활짝 피었다. 오천년 전 꽃가루가 발굴된 고양시는 일산 신도시 개발에 따른 문화유적 발굴 조사 당시 땅속에서 오래된 꽃가루가 발견되었다. 이 꽃가루를 미국 베타 연구소에 연대측정을 의뢰한 결과 가장 오래된 것은 오천육백 이십년 전 것으로 추정한다.

조선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고양군지는 화수(花水), 화정(花井) 화전(花田)과 같이 꽃과 관련된 땅이름이 있어 꽃과 고양시의 오랜 인연을 알 수 있다. 고양지역은 칠십 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화훼산업이 시작됐고 팔십 년대를 지나면서 급격히 화훼농가가 늘어나 구십 년대 초부터 고양꽃전시회를 시작으로 구십칠 년엔 박람회를 개최해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렇듯 오천년 전의 꽃가루가 발굴된 고양시에서 세계적인 고양국제 꽃 박람회를 개최하는 것은 당연한 듯하다.

박람회장 안에선 사방에 예뿐 꽃들로 가득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꽃으로 만든 다양한 작품들은 보는 사람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고 모자이크 ‘컬쳐’ 대회 작품도 이곳을 찾는 관람객을 맞는다.

작품 중엔 대홍수를 피한 사람들과 자연을 지켜준 노의 방주를 상징하는 Neo Ark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겪어가는 새로운 자연재회(미세먼지, 방사능 황사 등)으로부터 지켜주는 인간과 자연의 쉼터가 되는 고양시의 새로운 방을 표현했다.

빨간 모자를 쓴 아기코리는 큰 귀를 펄럭이며 둥근 공을 힘차게 굴리는 앙증맞은 모습을 율동감 있게 표현했다. “코끼리 날다”는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고 토피어로 만든 거대 작품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모자이크 컬쳐는 금속으로 된 틀에 흙을 채우고 표면에 여러 가지 식물을 심어 볼륨감 있게 표현하는 식물조형작품이다. 전 세계적으로 자연과의 공생이 추구되는 환경보존의 중요성을 알리는 친환경적인 효과를 연출한다.

관람동선을 따라 가다보면 고양 육백년 역사를 만난다. 사진으로 보는 고양의 역사는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는 옛 향수를 자극한다. 사진으로 볼 수 있는 호수공원 자연학습장과 생태계는 사진 속에서 정지돼 흐뭇하기만 하다. 물 반 고기반의 수도권 최대 규모의 씨월드도 사진 속에서 웃고 있다.

동선을 따라 가다보면 실내전시관인 플라워 관으로 들어선다. 국내‧외 최고 플로리스트의 환상적인 화훼 예술작품을 선보이는 전시관은 수국으로 만든 꽃 드레스가 화려하다. 꽃 드레스를 입고 결혼하는 신부는 얼마나 눈부시고 아름다울까.

영원히 변화지 않기를 바라는 인간의 마음은 시들지 않는 꽃으로도 탄생했다. 프리저브드 플라워는 생화를 특수가공처리해 시들지 않게 만든 꽃이다. 생화를 꽃꽂이 하면 일주일 안에 시들어 버리지만 시들지 않은 꽃은 자연스러운 생화 모습 그대로 삼년이상 감상 할 수 있다.

꽃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액세서리를 통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압화”도 만날 수 있다. 식물의 꽃과 잎, 줄기, 열매, 뿌리를 눌러서 건조해 다양한 작품의 소재가 되는 자연친화적인 꽃 예술이다. 길섶에 흔한 야생초들이 훌륭한 소재가 되어 가구와 액자, 도자기, 액세서리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플라워 관을 빠져 나오면 플라워 터널을 자연 생태관을 만난다. 자연 생태관은 비닐하우스가 호수공원으로 이동 한 것 같다. 터널 안엔 나비의 탄생에서 성장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우리나라 하천 주변의 생태계를 그대로 옮겨왔다.

흰줄나비에서 호랑나비, 낮은 산지의 계곡 근처에 서식하는 긴 꼬리 제비나비 까지 나비의 다양한 종을 볼 수 있고 나비의 탄생장소에선 애벌레에서 갓 태어난 나비들을 생태 관을 가득 메운다. 또한 우리주변 하천과 계곡에서 볼 수 있는 무당개구리. 거미, 가제, 사마귀, 게아재비, 물 방게, 도롱뇽, 쉬리 까지 아이들은 물런 어른들도 추억을 회상하게 한다.

생태 관엔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곤충만지기도 있다. 커다란 유리 상자 안엔 사슴벌레가 서식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사슴벌레의 습성을 관찰 할 수 있고 아이들에게 곤충을 가까이에서 만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생태관 밖엔 옛이야기 지줄대는 고양을 만난다. 예부터 내려오는 고양시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소재로 꾸며진 정감 있는 정원이다. 정원엔 꽃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어 함께 느끼고 나눌 수 있는 소통하는 정원이다.

정원 속엔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을 표현돼 있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꽃으로 음식을 만들어 나눠먹기도 했다. 삼짇날 음력 3월 3일에는 화전놀이를 나가 진달래 꽃 화전을 먹으며 즐겼고, 중앙절인 음력 9월 9일엔 감국을 사용해서 감국화전을 만들어 먹었다.

그러고 보니 나 얼릴 때 봄에도 엄마가 뒷산에서 진달래를 따오라고 하셨다. 대 바구니 가득 진달래꽃을 따오면 술도 담그고 화전도 만들어주셨다. 아카시아 꽃으로도 시 시루떡을 만들어 주신 기억도 있다. 가을엔 국화꽃으로 술을 담가 술이 익으면 반주로 즐기셨던 기억도 난다. 한번은 달달한 국화 꽃 술 몇 잔을 먹고 취해 혼난 적도 있다. 어릴 땐 꽃으로 담근 음식과 술로 계절을 느낄 수 있게 했다.

고양정원엔 명화십이객도 있다. 명화십이객(名花十二客)은 열두 자기의 꽃을 손님에 비유해 이름붙인 것에 유래됐다. 열두 가지 꽃을 사람에 비유한 명화십이객의 마음을 담아 고양의 정원을 방문한 시민들에게 마음을 담았다.

목단 꽃은 귀객을 뜻한다. 지위가 높거나 귀중한 사람을 일컬어 꽃중의 왕이라 불리는 모란처럼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이라고 한다. 매화꽃은 청객을 뜻한다. 풍류를 가지고 있으며 물욕을 떠나 속되지 않고 하얀 꽃을 흩날리는 매화같이 가끔은 일상을 벗어난 자유를 말한다.

국화꽃은 수객이다.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모양으로 피어나는 국화처럼 축복받는 사람을 말한다. 서향 꽃은 가객을 의미한다. 향기로 천리 밖에서도 향기로 알 수 있는 반갑고 귀한 사람을 말한다. 정향꽃은 소객을 의미한다. 초가지붕위에서 재잘거리듯 피어나는 정향꽃처럼 소박한 사람을 말한다.

난 꽃은 유객으로 세상을 피하여 한가하고 산중에 은둔하듯 자리 잡은 난초의 조용함을 말한다. 연꽃은 정객으로 편안한 사람인 화중군자(化中君子)를 일컫는다. 가볍게 연못에 자리를 잡고 모든 것을 편안하게 받쳐주는 연잎의 포근함을 의미한다.

다미 꽃은 아객을 뜻한다. 마음이 바르고 품위가 있는 귀여운 사람을 의미하고 굽이굽이 먼 길 돌아앉은 풍류객의 뒷모습 같은 멋지고 풍치 있는 차 밭이 생각나는 꽃이다. 계수 꽃은 선객을 말한다. 도를 닦아서 인간세계를 떠나 자연과 벗하며 사는 도인을 의미한다.

장미꽃은 아객을 의미하다. 화려한 권세를 멀리하고 초야에 묻혀 선비의 마음을 담아 장미 향기를 내는 사람을 말한다. 말리 꽃은 원객을 의미한다. 먼 하늘에 촘촘히 박혀있는 별 모양의 꽃으로 멀리서 온 귀한 손님을 맞이한다는 뜻을 가진다.

작약 꽃은 근객을 의미한다. 꽃의 재상인 작약의 화려하고도 넉넉한 함박웃음으로 친근함이 의미한다. 이처럼 열두 꽃마다 의미가 붙여져 한국의 정원을 풍성하게 한다.

고양 육백년 기념전시관엔 지지 않는 꽃 도 전시중이다. ‘지지않는 꽃’은 일본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만화기획전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만화 기획전은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 축제에서 앙코르 전시까지 개최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원으로 제작된 만화전은 보는 것만으로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만화전은 위안부 할머니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노력하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담아 할머니의 회상하는 모습을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를 바라는 할머니의 소망을 표현했다.

만화 ‘소녀의 이야기’는 정서운 할머니의 증언으로 시작된다. “부모를 잘 만나 고생을 안했어 클 때, 고생안하고……. 그런데 아버지가 왜놈들 하는 일은 반대라 했는데, 하루는 일본군이 집으로 쳐들어와 놋그릇을 안 받치냐고, 아버지는 이놈들아 차라리 날 죽이고 가져가라고 했지. 그러고 나서 아버지는 놋그릇을 몰래 논에 다 묻었지,

그런데 이장이 그걸 왜놈들한테 일러 밀고를 한 거야. 아버지는 일본군에게 끌려갔고 옥살이를 했지, 아버지를 면회 갔는데 아버지는 나에게 감옥엔 절대 면회 오지 말라 했어. 면회 후 아버지를 어떻게 감옥에서 나오게 할 수 있는지 그 궁리만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이장이 집으로 찾아와 어머니하고 하는 말을 들었어.

일본군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2년 정도 일을 하면 아버지를 감옥에서 꺼낼 돈을 벌수 있다고 했어. 어머니는 나를 공장으로 보 낼 수 없다고 했는데, 아버지를 감옥에서 꺼낼 방법은 내가 공장에서 일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어머니를 설득해 일본에 있는 공장으로 가기로 했어.

일본으로 떠는 배 안엔 나 말고도 열 명이 넘는 소녀들이 있었어. 며칠을 배타고 일본으로 왔다고 생각했는데 도착한 곳은 일본이 아니었어. 덥고 습하고 피부색도 다른 사람들이 많았어. 그때서야 알았지, 일본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시 난 겨우 열다섯 살이었어. 함께 간 소녀 중에서도 가장 어린 나이었지. 어린 나는 너무 무서웠고 골방에 갇혀 지내고 있는데 하루는 술 취한 일본장교가 찾아와 나를 겁탈했지.

그 후로 그런 일은 일상처럼 벌어졌고 반항하는 나에게 왜놈은 아편으로 나를 저항하지 못하게 했지. 그곳에서 생활은 끔찍한 지옥이었어. 아편에 중독된 난 왜놈들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어.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

함께 끌려간 언니들 중 몇몇은 죽어 나가고 언니들의 시체는 죽은 짐승 치우듯 야산에 그냥 묻어버리더라구. 그러던 중 인도네시아 사람이 일본군 장교 빨래를 걷어가 세탁하기 위해서 부대로 들어왔어. 그 사람들을 보니 왜 그리 반가운지 눈물이 저절로 났지. 그 사람에게 쪽지를 몰래 건내서 연합군에게 알렸지

며칠 후 부대는 폭격되고 그 틈을 타 난 연합군에 의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 하지만 고향엔 어머니 아버지 모두 돌아가시고 빈집만 덩그러니 남아있었어. 고향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아편을 떼는데 4개월 넘게 엄청 고생했지. 그 후로 해방이 되고 세월이 흘러 지금까지 살아왔지. 억울해서 죽지도 못하고 지금까지 살아서 일본정부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끝난다.

정서운 할머니는 1924년에서 2004년의 삶을 살고 세상을 떠났다. 우리의 역사는 아픔으로 가득하다. 나라를 빼앗긴 설움도 겪고, 동족상극의 잔인한 전쟁과 군사독재의 서슬 퍼런 칼과 총으로 압사 직전 사회에서도 견뎌내며 살아왔다.

고난을 이겨낸 우리 사회는 선진국 문 앞에서 다시한번 침몰해 버렸다. 세월호 침몰 참사로 사회 안전망에 구멍이 뚫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들이 희생당했다. 박람회장 꽃은 활짝 피었는데 아이들은 꽃을 피우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미안할 뿐이다. 단원고 아이들의 열여덟 번째 봄날. 꽃 같은 아이들을 어떻게 보내야할까.

•가는 길

지하철 3호선 정발산역 2번 출구 박람회장 까지 8백 미터/ 입장료 복지할인 적용 7천원

•먹거리

행사장 유료구역

패스트 푸드 등 간이 식음료 시설 (롯데리아, 나뚜루, CU, 스무디킹, 커피빈)

행사장 무료구역: 기타 식음료 시설

김밥, 유부초밥, 떡, 과일음료 시설 (롯데리아, 나뚜루, CU, 스무디킹, 오가다) 전통음식 시설 꽃음식(꽃차, 꽃음식)

•장애인화장실

박람회장 곳곳에 잘 마련돼 있다

•문의

휠체어 배낭여행,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고양 꽃 박람회. ⓒ전윤선

세월호 실종자를 기다리는 듯한 노란 튜율립.ⓒ전윤선

5천년 역사의 씨 앗 전 고양 가와지 볍 씨.ⓒ전윤선

생태관 사슴벌레, ⓒ전윤선

위안부 소녀상.ⓒ전윤선

정서운 할머니 소녀시절.ⓒ전윤선

소녀의 인권을 유린한 일본군.ⓒ전윤선

소녀의 이야기를 증언하는 할머니.ⓒ전윤선

박람회장 내 장애인화장실. ⓒ전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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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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