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장애인의 날 저녁, 실로 아름다운 공연 하나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비탄에 빠져있을 때라 공연을 하는 주최 측도 관객들도 매우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장애인의 날 34주년 기념 CSI퓨전오케스트라 창단연주회라는 다소 소박한 이름의 공연이었고, 예술의 전당 맞은편에 있는 바로크챔버홀이라는 아담한 규모의 소극장에서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로비에는 젊은 학생들이 안내를 하고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공연장입구에 휠체어를 타신 분들도 꽤 눈에 띤다.

무대중앙에는 무대의 크기에 맞지 않는 다소 커다란 지휘대가 보인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이 되고 우렁찬 관객들의 박수와 함께 휠체어를 타신 지휘자가 보조인의 도움으로 등장하셔서 지휘대위로 당당히 올라가셨다. 이분이 바로 휠체어를 탄 지휘자 정상일 교수이다.

2012년 5월 추락사고로 사지마비의 척수장애를 입게 된 지휘자 정상일 세한대 실용음악과 교수는 1년이 넘는 혹독한 재활을 마치고 지난해 11월 23일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다시 서기도 하셨다. 이어서 11월 25일에는 불가리아 시립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셨다.

교수님께서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고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하여 본인의 이름을 붙인 CSI퓨전오케스트라를 구성하여 창단연주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 오케스트라에는 교수님의 뜻에 함께하는 각계의 연주자들이 동참을 하셨고, 대학의 재학생과 졸업생, 음악교수, 음악전공자는 아니지만 교수님들의 지인이신 분들도 기꺼이 참여하신 아름다운 악단이다.

협회에도 여러 번 오셔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정열적으로 일을 추진하시는 분이셨다.

테너 이남현 씨의 공연모습. 지휘자는 세한대 정상일 교수.ⓒ이찬우

이번 연주회에는 척수장애인을 성악활동을 왕성히 하고 있는 성악가 바리톤 이남현 씨도 함께 공연을 하였다. '기적을 노래하는 바퀴 달린 성악가' 로 알려져 있는 이남현 씨는 성악을 전공하던 중 다이빙사고로 목 아래로는 거동이 불편한 중증의 사지마비 척수장애인이지만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성악가로 재탄생한 의지의 한국인이다.

사고 후 폐활량이 일반인의 30%도 안 되는 이남현 씨는 '도레미파솔라시도' 소리를 내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렸고 노래를 다시 하는 데는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사실 온 몸으로 발성해야 하는 성악의 상식을 뒤집은 장본인이다.

소프라노 심언애 씨의 공연모습. 지휘자는 세한대 정상일 교수. ⓒ이찬우

이남현 씨의 공연을 이어 이번에는 여성척수장애인 소프라노 심언애 씨의 협연이 이어졌다.

심언애 씨는 27살에 불의의 사고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이 되었고, 사고 후 10년 만에 나사렛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하고 졸업을 하였다. 오늘 공연이 졸업 후에 갖는 첫 공식무대여서 더 감동스러운 무대였다.

지휘자 정상일 교수는 이런 사정들을 다 아시고 척수장애인 성악가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하여 이 공연을 기획하신 깊은 뜻이 있으셨다.

이어진 2부 공연에는 다양한 곡들로 국가적인 재해로 심신이 지친 관객들에게 아름다운 선율로 위로해 주셨다. 곡에 대한 설명 중에 감격에 못 이겨 울먹이시는 마음 여린 천상 음악가이신 교수님이시다.

금년 7월에는 이남현 성악가와 오스트리아 빈을 방문하셔서 그곳의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는 계획도 가지고 계신다고 한다.

많은 장애인들이 사고전의 일상의 삶으로 속속 나오기를 바라며, 정상일 교수님께서 앞으로 장애계를 위해서 커다란 일꾼이 되시리라 기대를 한다.

공연을 마치고 지휘자 정상일 교수(중앙), 더 크로스의 김혁건씨(우측)와 기념촬영. ⓒ이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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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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