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상대방과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것을 말한다.

건강한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휠체어를 타야하는 척수장애인이 되었을 때 그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많은 척수장애인들이 일성(一聲)으로 다치기 전에는 휠체어를 본 적이 거의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척수장애인이 되어서 휠체어를 타고 눈높이를 낮추어 세상을 볼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가 '역지사지'이다.

요즘에 장애인화장실이 참 많아졌다. 갯수도 많아졌지만 다양한 형태의 시설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하지만 아직도 장애인화장실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어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

장애인화장실을 창고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자동문이 아니어서 혼자의 힘으로는 출입하기도 어려운 곳도 있고, 회전을 할 수 없거나 충분한 공간이 없는 말뿐인 장애인화장실도 많이 있다.

척수장애인들이 장애인화장실을 사용하면서 아쉬운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척수장애인들은 넬라톤(CIC, 청결자가도뇨)을 많이 하는데, 도뇨장비를 화장실에 마땅히 놓을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세면대 위에 놓기도 그렇고, 변기뚜껑위에 놓기도 그렇다. 도뇨는 청결이 최우선인데 화장실에 도뇨용품을 놓을 거치대가 없는 것이 많이 불편하다.

다목적 선반같은 것이 있었으면 참 편리하겠다.

유아용 의자처럼 다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청결한 장비가 필요하다. ⓒ이찬우

그리고 척수장애인들이 외출 시 배뇨배변으로 실수를 하는 경우에 긴급히 처리를 해야 할 때, 화장실의 변기에 앉아서 하면 편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세면대에는 샤워기가 없고, 운좋게 있더라도 샤워기의 줄도 충분히 길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곤란함을 많이 겪는다.

장애인화장실에 샤워용 호스가 충분한 길이로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워기 헤드에 물량의 조절이 가능한 스위치가 같이 불어 있는 것이면 더 좋겠다. 움직임이 불편한 척수장애인이 물을 틀거나 잠그려고 움직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김천(구미)KTX 역사에 있는 장애인용 화장실의 예. ⓒ이찬우

며칠 전, 학회에 참석차 신촌세브란스병원을 간 적이 있다. 그 곳에 있는 엘리베이터에서 가슴 따스한 것을 하나 보았다.

엘리베이터의 한 구석에 코너용 소파(의자)가 있는 것이다. 병원의 특성상 서서가기 어려운 환자나 보호자를 위한 배려인데, 이것이야 말로 유니버설디자인이 아닌가하고 사진을 찍어 왔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엘리베이터에 있는 소파. ⓒ이찬우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모든 사물을 보는 것, 그것이 유니버설 다자인이고, 유니버설적 사고(Universal Thinking)이다.

서로의 시각에서 바라봐 주는 것, 그리고 이해하고 개선하는 것, 이것이 사회통합의 기본일 것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