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수장애인 세계에는 MH라는 그룹이 있다. ‘맨땅에 헤딩’이라는 뜻의 MH이다.

척수장애인들은 장애 후의 삶에 신분계급이 생긴다고 자조적인 말들을 한다. 평생 연금과 의료혜택을 받는 보훈대상자와 산재장애인, 보상을 많이 받은 교통장애인 그리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여러 지원과 특히 의료혜택에 한시름 놓은 수급권자가 있다.

하지만,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각지대의 그룹을 MH라고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장애를 가져도 장애 후의 삶이 이리 천차만별이고 양극화도 일어난다.

MH중에 국민연금의 장애연금을 받는 부류는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다고 MH들이 재산이 많거나 삶이 넉넉한 그런 것도 아니다. 언제든지 수급권자가 될 수 있는 그런 상황도 매우 많다.

그렇지만 이들은 열심히 활동한다. 알량한 자존심은 있어서 가능하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중증장애인으로 안정된 직업을 갖는 것이 쉽지 않아 늘 경제적인 곤란함을 겪을 준비(?)가 되어 있다.

MH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의료비이다. 척수장애인은 밤새 안녕이라고, 시도 때도 없이 욕창이든 방광염이든 대기 상태의 환자들이다. 선택진료비, 자기부담, 간병비 등이 무서워 아프기가 두렵다.

또 하나, 두려운 부분은 노후대책 부족이다. 건강상의 문제로 항시 지출되는 의료비와 값비싼 각종 보장구 구입, 전·월세 주택비 지출로 허리가 휘고, 고용이 불안한 경제활동을 하면서는 노후를 위해 저축하며 준비할 여유가 없다.

필자는 1987년 8월 회사에서 일을 하다 중량물에 깔려 하지가 마비되었다. 외국에서 장비를 수입하여 국내 판매와 서비스를 하는 직원 15명 정도의 작은 회사에서 꼬박꼬박 갑근세 등 세금을 내는 모범 납세자였다. 하지만 산재 혜택과 장애연금은 받지 못했다.

지금이야 1인 근로자 이상 기업이면 산재보험에 의무 가입해야 하지만 그 당시 가입기준은 300인 이상 제조업체만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국민연금의 장애연금도 받을 수가 없었다. 아시다시피 국민연금은 1988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기가 막힌 상황 때문에 장애 초기에 많은 울분과 자책으로 힘든 적이 있었다.

덕분에(?) MH의 신분으로 신속한 사회복귀는 할 수 있었다. 내가 벌어야 먹고 살 수 있으니까. 남들에게 손 안 벌리려고 열심히 살았다. 10년 이상 직장생활을 했고, 후에 창업도 하고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나이가 점점 들어가고 노후의 삶을 생각하면 자신이 없어진다. 노동력 저하로 경쟁력도 당연히 떨어질 것이고 하루하루 다르다고 느껴지는 건강에도 자신이 없어진다.

올해부터 소득이 없는 경력단절 여성이라고 해도 과거 국민연금을 납부한 경력이 있으면 장애연금이나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보건복지부는 경력단절 여성에게 장애 및 유족연금 수급권을 보장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23일부터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으로 혜택을 보는 이들은 총 464만 명이다.

이에리사 국회의원이 발의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법률안'은 국가대표 선수와 지도자들이 훈련이나 국제경기 중에 사망 혹은 중증 장애를 입을 경우 국가대표보상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체육유공자로 지정된다. 체육유공자도 국가유공자에 준하는 보상을 받는다고 한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필자는 성인군자가 아니어서 이런 뉴스를 접하면 은근히 배가 아프다.

열심히 직장생활로 국가에 세금을 내었으면 당연히 자격이 있지 않은가? <사각지대 장애인 지원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소급적용도 하고, 지금이라도 산재혜택도 받고 장애연금도 받았으면 좋겠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많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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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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