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교과내용이 어려워지는 이유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같은 이유로, 초등 4학년은 학습장애를 발견할 수 있는 학년이기도 하다.

학습장애는 학령기 학습 상황에서 나타나는 장애이므로 이보다 빠른 진단은 어렵다. 모국어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연령의 아이들이나 학업 성취에 있어 부진의 원인이 되는 일차적 장애가 있는 경우에는 학습이 부진해도 학습장애로 진단하지 않는다. 때문에 학습장애는 본격적인 학습이 시작되는 4학년 시기를 보내고 나서야 진단할 수 있다.

학습장애는 지능이나 발달에 이상 없이 읽기, 쓰기, 셈하기 등 학습의 영역에서 곤란을 겪는 경우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발달이나 정서 행동 장애가 없는 순수 학습장애가 드문 편이다. 드물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또 다른 장애가 될 수 있다.

다양한 사례들은 더 나은 교육 서비스 개발에 도움이 된다. 사례가 적다면 그만큼 이해 받기도, 적절한 서비스를 받기도 어려울 수 있다.

학습장애는 치료 된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할리우드 스타 탐 크루즈가 난독증을 치료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하다.

그런데 환경적 차이나 치료 기간, 과정, 통제 조건 등에 대한 언급 없이 이런 사례를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 않다.

자칫 학습장애가 노력만 하면 단기간에 치료되는 것처럼 오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해는 종종 아이에게 지나친 읽기 쓰기의 반복학습만 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고 이로 인해 아이의 다른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초등 4학년이 어떤 시기인지 생각해 보자. 태어나 누워만 있던 아기는 일어나 공간을 걷고, 말을 시작하고 친구를 사귀고 학교에 입학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눈에 보이는 것을 이야기하던 아이는 점점 사실을 넘어 가치와 도덕을 이야기하게 된다.

초등 4학년은 인간의 삶에 대해서 눈에 보이는 것 외의 것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기이다. 논리를 이해하고, 판단의 기준이 되는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는 시기이다. 공간을 넘어 4차원의 개념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아이에게 읽기 장애를 치료한다는 이유로 같은 내용의 읽기만 반복시키는 것은 아이의 정신세계를 가두어 놓는 것과 마찬가지다.

좀 더 다양하게 학습할 기회를 놓치는 문제는 이런 이유만이 아니다. 학생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이 문자로 된 시험지이기 때문에 학습장애가 있는 학생들은 자신의 실력보다 낮게 평가 받게 되고, 이로 인해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읽기는 학업에 있어 중요한 과제지만 장애로 인해 학습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조금 오래된 이야기인데, <비버리힐즈의 아이들>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한국에서 방영된 적이 있다. 지금은 그 드라마에 출연했던 인물들이나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관심 있게 보았던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극 중 도나라는 여자 아이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대학 진학을 위한 시험에서 형편없는 점수를 받게 된다. 이로 인해 도나는 자신이 지적장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선생님은 도나의 지적 능력과 성적이 맞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녀가 학습장애라는 것을 알아낸다. 그리고 구두 테스트나 다른 방식으로 재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한다.

드라마는 드라마니까, 드라마의 내용이 미국의 실제와 다를 수 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미국의 제도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장애는 한계가 아니다. 우리 시야를 가리고 있는 얇은 막이다. 이 막을 걷어낸다면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가진 장점을 더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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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영 칼럼리스트
교육학 석사(특수교육 전공). 아이를 양육하고 가르치는 일에 있어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훌륭한 교육 시스템이라고 해도 모든 학생들에게 좋을 수는 없으며, 전공 서적을 읽는다고 좋은 부모가 되는 것도 아니다. 각자의 몫으로 해야 할 고민들 중 몇 가지 주제를 통해 함께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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