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몇 살부터 시키면 좋을까요?”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필자는 늘 ‘초등학교 3학년’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너무 늦지 않느냐고 반문을 하지만, 어느 정도 원하는 답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어떤 설명이나 이유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학교에서 영어를 ‘3학년’에 시작하는 한 그들이 원했던 답은 ‘3학년’이 아니다.

많은 부모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그 전에 미리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이를 ‘예습’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예습과 선행학습은 명백히 다르다.

교육 전문가들이 예습은 권하지만 선행학습을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선행학습은 결코 학습 효과가 없고 오히려 독이 된다. 문제는 선행학습의 결과가 마치 학습 효과가 있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킨다는 것인데, 이 착각이 너무 달콤하기 때문에 미처 독인지 깨닫지 못하고 빠져들게 된다.

왜 외국어 공부는 초등학교 3학년 이후에 시키는 것이 좋을까?

0세부터 9세까지 아이들은 다양한 활동과 함께 하나의 언어체계를 습득하게 된다. 이 시기에 두 개 이상의 언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모국어 습득에 방해를 받게 되어 일시적으로 언어장애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일시적 언어장애는 곧 회복되지만, 이러한 경험이 외국어를 습득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0세에서 9세는 신체적, 지적, 정신적 발달이 가장 활발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외국어의 지나친 경험은 언어뿐만 아니라 다른 발달에도 방해가 될 수 있다.

아이들마다 발달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10세를 기준으로 모국어가 완성된다고 본다.(어린 아이가 한글을 줄줄 읽으면 모국어가 완성되었다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한글을 익히는 것과 한국어를 제대로 사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모국어가 완성되면 언어만으로 설명과 이해가 가능해지므로 본격적으로 학습할 준비가 되었다고 본다. 초등학교 4학년 과정부터 학습 내용이 어려워지는 것은 이러한 아동 발달과 관련 있다.

선행학습은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최초의 단맛을 보여준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모국어가 완성되기 이전 시기이므로 정규 과정에서의 교과 내용이 쉽다. 미리 공부하면 누구나 좋은 성적을 받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선행학습은 고학년에서도 어느 정도 유지된다. 학습 내용만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 역시 모국어가 완성되고 난 이후는 학습 능력이 향상되기 때문에 미리 익힌만큼 성적을 유지해 준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이면 6년 동안 조금씩 익숙해진 독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앞서 ‘연간계획 세우기’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스스로 자기 평가를 하고 계획을 세우는 학습전략을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선행학습을 계속 해 온 아이들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평가를 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6년 동안 미리 공부해 온 덕에 수업이 쉽다고만 느끼게 되고 자연히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는 습관이 생기게 된다.

중학교 과정부터 수업에서는 집중력을 잃고, 학습 분량은 점점 늘어나고, 학습해야 할 분량에 비해 자신의 능력을 과대 혹은 과소평가하고, 이로 인해 적절하지 못한 학습 계획을 세우게 되는 등 여러 가지 선행학습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제 단맛은 서서히 빠지고 독 기운만 남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때에도 계속 선행학습을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던 습관은 선행학습 시간에도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학습 분량은 누적되어 더욱 늘어나므로 더 이상 방학을 이용해서 한 학년 혹은 한 학기 과정을 다 익힐 수는 없게 된다.

게다가 빠르게 진도를 내는 데에만 익숙해진 두뇌는 하나의 주제를 두고 깊이 고민하거나 생각하는 것을 잘하지 못하게 되는데 고등교육으로 올라갈수록 이런 내용들은 늘어난다. 습관적으로 놓친 것을 반복하여 놓치게 되고 깊이 있는 내용을 생각하지 못하므로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른 채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한계를 느끼게 된다.

아이들이 해야 할 유일한 선행학습이 있다면 좋아하는 활동을 하고, 좋아하는 것을 즐기고, 친구와 어울려 놀고, 무한히 상상하는 것이다. 부작용 없는 선행학습이란 이 뿐이다.

로봇 이야기 그리기를 좋아하는 재원이의 <골판지 전사>(이재원, 9세, 2013) ⓒ최지영

학교에서 배워야 할 내용을 미리 공부하는 것은 예습이 아니다. 효과적인 예습은 학습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 정도가 좋다. 누군가를 통해 배우는 것보다 스스로 읽고, 읽은 내용을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견주어 보고, 또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궁금해 하는 정도면 예습으로 충분하다.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은 보다 더 깊은 내용을 학습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준다.

발달에 장애가 있는 어린이의 경우, 지적, 언어적 발달의 장애 정도가 적을수록 부모는 선행학습 유혹을 받게 된다. 초등학교 입학을 1년 유예 시키고 학교 수업 내용을 미리 가르친 후 입학시키면 학교 적응이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예 결정은 부모의 몫이다. 그러나 선행학습이 학교 적응을 도와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결정해야 한다. 일시적인 단맛만 살짝 남을 뿐이다.

아이들은 어른이 시키지 않는 한 학업 성적을 이유로 친구를 멀리하지는 않는다. 학업 자체는 학교 적응에 큰 문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와 사회에서 잘 적응하는 방법은 우리 사회가 각자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 스스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최지영 칼럼리스트
교육학 석사(특수교육 전공). 아이를 양육하고 가르치는 일에 있어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훌륭한 교육 시스템이라고 해도 모든 학생들에게 좋을 수는 없으며, 전공 서적을 읽는다고 좋은 부모가 되는 것도 아니다. 각자의 몫으로 해야 할 고민들 중 몇 가지 주제를 통해 함께 나누고자 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