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주최, ‘자기결정권 존중을 위한 성년후견제 공청회’ 행사 장면 ⓒ에이블뉴스

지난 호 칼럼에서 필자는 성년후견제에 대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이하 ‘위원회’)의 입장을 소개하면서, 작년 9월 개최된 위원회 회의에서 나온 ‘중국 정부보고서에 대한 위원회의 최종 견해’ 내용 중 제12조 부분에서 중국의 성년후견제 폐지 권고가 있었음을 소개했었다.

그리고 중국의 성년후견제의 내용과 우리나라 성년후견제의 내용이 다를 수 있기에 단순 비교를 하는 것은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언급한 바 있었다.

한편, 필자가 지난 호 칼럼을 쓰던 날(에이블뉴스에는 다음날 아침 시점에 게재됐지만)과 같은 날,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정부에게 ‘자기결정권 존중을 위한 성년후견제 내실화방안 마련’을 권고하면서, 현행 성년후견제의 문제점들을 지적했다는 보도자료가 언론에 뿌려짐으로써 인권위 역시 불완전한 상태의 성년후견제 시행에 대해 공식적 우려를 표명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칼럼을 쓰고 나서야 알게 된 소식이지만, 지난 4월 2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개최한 ‘자기결정권 존중을 위한 성년후견제 공청회’에서 인권위 장애차별조사1과의 조형석 장애정책팀장이 현재의 세 가지 법정후견(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과 임의후견의 후견 유형 중 ‘성년후견’을 중장기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한양대 로스쿨 제철웅 교수는 후견 유형으로 성년후견을 채택하지 말아야 하며, 굳이 성년후견을 채택해야 한다면 한정후견의 대리권을 넓히는 쪽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서 접하게 되었다.

필자는 성년후견제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하 ‘협약’) 제12조의 취지는 ‘대리 의사결정(substituted decision-making)’ 제도가 아닌 ‘조력 의사결정(supported decision-making)’ 제도를 요구하는 것임을 밝힘과 아울러,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우리나라의 성년후견제도는 협약이 요구하는 ‘조력 의사결정’ 제도에 충분히 부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신장애인 권익옹호 국제 NGO ‘세계정신보건서비스이용자및피해자네트워크’ 사이트의 메인페이지 캡쳐 사진 ⓒWorld Network of Users and Survivors of Psychiatry

참고로, 지난 호 칼럼에서 언급했던 중국 정부보고서에 대한 위원회 최종견해 제12조 부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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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조 법 앞의 동등한 인정

1. 위원회는 협약 12조에 부합하지 않는 법적후견 제도가 만들어진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다. 위원회는 그 제도가 장애인의 자기결정과 자율의 권리, 개인의 의지 그리고 개인의 선호가 존중되어짐을 인정하는 ‘조력 의사결정’ 방식이 완전히 결여된 것임에 주목한다.

2. 위원회는 중국 정부에게 성년신탁제와 성년후견제를 허용하는 법, 정책 그리고 사회적 관례들을 폐지하는 조치를 취하고, 협약 12조에 따라 개인의 법적능력 행사에 있어서 개인의 자율, 개인의 의지 그리고 개인의 선호가 존중되는 ‘조력 의사결정’에 의해 ‘대리 의사결정’ 제도가 대체되는 입법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위원회는 중국 정부가 장애인 단체와의 협의를 통해 다음 사항들을 포함하는 ‘조력 의사결정’ 제도 도입을 위한 청사진을 준비하여 입법화한 후 이행할 것을 권고한다.

(가) 자신이 법적능력과 그 행사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다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나) 법적능력 행사가 필요한 곳에 대한 지원을 위해 편의와 접근성을 제공하는 것

(다) 그 (의사결정에 대한) 조력이 개인의 자율, 개인의 의지 그리고 개인의 선호를 존중하는 것임을 보장하는 법령을 갖추고, 그 (의사결정에 대한) 조력이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음을 보장하는 피드백 메커니즘을 확립하는 것

(라) ‘조력 의사결정’ 제도의 확립과 홍보를 위해 준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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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필자가 번역한 것으로, 문맥상의 표현 방식이 번역자에 따라 다를 수 있을 터이니,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자면 위원회 홈페이지의 영문 원본을 확인하는 게 좋을 것이다.)

만약 중국의 성년후견제도가 우리의 그것과는 다른, 아주 후진적인 제도라고 할지라도 위의 최종 견해 내용은 우리의 성년후견제도를 어떻게 고쳐나가는 것이 좋고 옳은 방향일지에 대한 매우 중요하고도 값진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 중 몇 가지를 꼽자면 첫째로, 『‘조력 의사결정’ 제도 도입을 위한 청사진을, 정부가 장애인 단체(organization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와의 협의를 통해 준비하여 입법화한 후 이행할 것』이라고 권고한 점을 들 수 있겠다.

여기에서의 장애인 단체에는 장애인 부모단체(organizations of paren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뿐만 아니라, 피후견인 그룹에 속하는 장애인 당사자 단체, 또 피후견인 그룹을 잘 옹호할 수 있는 (장애인 부모 단체가 아닌) 다른 장애유형의 장애인 당사자단체 등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권고는 중국 정부에 대한 권고이지만(비록 제도가 다르다 하더라도) 성년후견제가 시작되고 있으며, 앞으로 수정보완 등을 위한 재검토가 필요한 한국 정부에게도, 매우 중요한 시사점이 될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2항의 (가)호부터 (라)호까지의 네 가지 사항이다. 제도 도입에 있어서 필수적으로 포함시켜야 할 사항들을 언급한 이 부분은 한국 정부가 관련 제도를 만들고 시행하는 데 있어서도, 역시 필수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란 말이 여기에도 적용될 듯 싶다. 중국 정부에 대한 위원회의 권고를 우리와 다른 형태의 제도, 혹은 우리보다 후진적인 제도를 가진 나라에 대한 권고로만 생각하며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일이 아닌 이유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부분들 때문이다.

한편, 영국의 ‘정신능력법(Mental Capacity Act)’에서는 피후견인의 의사결정능력을 판단함에 있어서 피후견인의 자기결정 권리에 대한 침해를 막기 위해 다음의 원칙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것은 첫째, 항상 사람들은 누구라 가릴 것 없이 모두 다 의사결정능력이 있다고 추정되어야 한다는 것, 둘째,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도록 조력하는 모든 조치를 취했는데도 성공 못한 경우만 빼고는, 의사무능력자로 취급하지 말 것, 셋째,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단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의사무능력자로 취급하지 말 것, 넷째, 피후견인을 대신하거나 동 법에 따라 내린 결정은, 피후견인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어야 할 것, 다섯째, 특정 행동이나 결정전에, 그 목적이 피후견인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더 적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를 찾아볼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런 원칙 적용을 통한 피후견인 권리 침해 예방장치 강구 등에 최선을 다한 후에 극히 제한적 범위 내에서만 의사결정에 대한 조력을 하도록 하는 안전장치들을 연구하고, 그것이 단지 문헌상의 원칙으로만 그치지 않고, 실제의 현장에서 어떻게 필수적으로 적용될 수 있게 할 것인지, 또 그것을 어떻게 제도화하고 강제할 것이며, 모니터링을 통해 그를 어겼을 때 어떤 패널티를 줄 것인지 등이 명확히 제시되어야 피후견인의 권리침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배제를 넘어 평등으로’의 책 표지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그렇다면 ‘조력 의사결정’의 외국 사례는 어떤 경우가 있을까?

유엔경제사회국,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그리고 국제의원연맹이 만든, 국회의원을 위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매뉴얼 ‘배제를 넘어 평등으로(From Exclusion To Equality)’라는 책에 보면, 그 사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에 대한 참고가, 기존의 성년후견제의 문제점들을 보완하고 대체할 새로운 시스템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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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롬비아주는 조력의사결정을 법률, 정책, 관습에 구체화시킨 모범지역이다.

장애인은 조력 네트워크와 ‘대리권 동의(representation agreement)’를 체결할 수 있다.

이 동의는 해당 장애인이 의사결정을 할 때 자신을 조력해 주고,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권한을 조력 네트워크에 위임한 것으로서, 의사, 금융 기관, 서비스 제공자 등에게 해주는 서명 같은 것이다.

이 제도가 획기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중증 장애인은 지정된 조력자에 대한 ‘신뢰(trust)’만 표현하면, 조력 네트워크와 대리권 동의를 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리권 동의를 체결할 때 해당 장애인은 일반적 기준-정보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 그 결과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지, 자발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지, 스스로 자신의 판단을 전달할 수 있는 표현 능력을 가졌는지 등에 따른 법률 적격성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

현재 수많은 장애인들과 조력 네트워크가 후견인 제도 같은 대리의사결정의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대리권 동의’를 체결하고 있다.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대리권동의자원센터(Representation Agreement Resource Centre)는 정보 제공, 출판, 워크숍, 상담 등을 통해 조력 네트워크의 유지ㆍ발전에 일조하고 있다.

또한, 센터는 조력 네트워크가 필요한 장애인과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살펴볼 수 있도록 동의서를 공시하는, 등록소(registry)를 감독한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刊, 윤삼호 譯, ‘배제를 넘어 평등으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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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2008년 8월에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가 번역하여 배포한 적이 있으므로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한 사람은 그 번역서의 내용들을 참고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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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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