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 트레이닝을 진행 중인 빅토리아.(맨 앞쪽) ⓒ이광원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하 ‘협약’) 한국 정부보고서에 대한 민간 차원의 대응으로 국내의 NGO들이 연대하여 지난 4월 결성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 보고서 연대(이하 ’유엔연대’)’가 주최한 ‘효과적 NGO 보고서 작성을 위한 집중 워크숍’ 행사가 지난 5월 31일과 6월 1일 이틀에 걸쳐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이 행사의 실무 훈련과정 트레이너를 담당하기 위해 내한한 국제장애연맹(International Disability Alliance, 이하 ’IDA’)의 인권담당관 빅토리아 리(Victoria Lee, 이하 ‘빅토리아’)를 인터뷰했다.

(지난 호 칼럼에 이어서 계속)

다음은 일문일답

이광원 : 빅토리아께서 IDA의 인권담당관으로 일하시면서 가장 어렵고 힘든 점은 무엇인가?

빅토리아 : IDA에서 일하면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장애인 인권의 주류화와 협약 기준의 주류화이다.

저는 유엔인권이사회, 유엔사회권위원회,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 유엔고문방지위원회, 유엔고문방지소위원회, 유엔아동권리위원회 등을 포함하여 다른 조약기구의 활동도 정기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이 위원회들이 다루는 내용들에는 모두 다 장애인의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각 위원회들이 가진 장애인 인권에 대한 관심도는 각각 다르며, 경우에 따라서는 협약의 수준보다도 못한 권고사항이 나오는 위원회도 있다.

우리는 IDA의 회원단체들과 함께 효과적 주류화를 보장하기 위하여 장애인단체들이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이하 ‘위원회’)뿐만 아니라 다른 조약기구의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지만, 역량과 자원이 부족한 장애인단체들은 다른 조약기구 심의에 참여가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해당 조약기구의 권고에는 장애인 인권관련 내용이 빠지거나 협약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권고가 나올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가장 어렵고도 아쉬운 점이다.

이광원 : 그렇다면, 반대로 IDA의 인권담당관으로 일하면서 가장 보람된 점은 무엇인가?

빅토리아 : 아까 얘기한 어렵고 힘든 상황들을 극복했을 때가 바로 가장 보람된 때라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면, 각국 장애인단체들이 타 조약기구 심의에 적극 참여하여 장애인 인권을 부각시키고, 그 결과로 장애인단체의 목소리와 함께 협약의 기준이 반영된 권고안이 나왔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구체적인 사례를 예로 하나 들어 보겠다. 정치 참여에 대한 권리가 유엔자유권규약의 핵심적 조항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투표권은 최근까지 단 한 번도 유엔인권이사회의 권고의 초점이 된 적이 없었다.

유엔인권이사회의 1996년 정치적 참여에 관한 일반논평 제25호는, 보편적 참정권에서 ‘정신적 무능력자(persons with mental incapacity)’를 명백히 제외시킨 바 있었다.

이에 대응하여 지난 몇 년간 IDA와 각국 장애인단체들은 유엔인권이사회에 투표권에 있어 장애인을 배제하는 것은 협약 제29조에 반하는 차별적 문제임을 서면을 통해 체계적인 문제 제기해왔다.

그 결과, 지난 2013년 3월의 유엔인권이사회 회의의 권고사항 중에 일반논평 제25호를 대신하여 장애인의 투표권에 대한 이사회의 입장을 명확히 밝힌 권고사항이 포함됐다.

유엔인권이사회는 ‘자유권규약 제25조와 협약 제29조에 따라, 투표권에 관한 법률이 정신적, 지적 또는 사회심리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투표권을 거부하는 차별적 내용을 담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권고했다.

이는 유엔인권이사회가 처음으로 협약에 대한 언급을 구체적으로 한 것이며, 타 인권기구의 구체적 조항을 언급한 것 또한 처음일 것 같다.

이는 각국 장애인단체와 IDA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이루어낸, 협약 기준에 대한 확산과 촉진을 통해 국제인권법을 발전시키고, 그들의 일관성을 개선시킨 성공적인 주류화의 상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참가자들과 질의응답 중인 빅토리아.(가운데 검은 옷) ⓒ이광원

이광원 : 한국에는 자주 오는가? 부모님의 나라인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

빅토리아 :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던 것은 지난 2004년이었다. 그 후부터 현재까지 대략 5~6회 정도 짧게 한국을 방문했던 것 같다.

한국에는 친척분들이 계셔서 한국에 오는 것을 좋아하며, 특히 한국의 사회와 문화를 보면서 부모님의 나라인 한국을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한국인, 캐나다인 그리고 호주인, 이렇게 서로 다른 3개 나라 국민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셋 중 어느 하나도 나를 온전히 대표하는 정체성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그런데 한국에 자주 오게 될수록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더할 수 있어 더 좋은 것 같다.

내겐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한국어를 배워보고 싶지만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라서 아쉬운데, 만약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더 많은 일상생활들을 경험해보고 싶다.

이광원 : 유엔 조약기구 등의 인권 관련 활동을 해오면서, 한국 NGO 관계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나? 그런 기회가 있었다면 그 때 만난 한국 NGO들로부터 받은 인상은 어떠했나?

빅토리아 : 2011년 유엔아동권리협약 한국보고서 심의 당시 ‘국제아동인권센터(InCRC : International Child Rights Center)’와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모임(TRACK : Truth and Reconciliation for the Adoption Community of Korea)’의 관계자분들을 만났던 것이, 유엔 인권 관련 활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한국 NGO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 때 학생들을 포함해서 많은 한국 NGO 관계자들이 참여했었는데, 한국 NGO들이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과 함께, 한국 시민 사회가 매우 활발하게 관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다.

또 아동 당사자를 포함하여 다양한 관점들을 제공하고 있으며, 매우 포괄적인 내용을 담은 한국 NGO 보고서를 접했던 기억이 있다. 그를 통해 한국 NGO들이 NGO 보고서 작성에 매우 헌신적으로 관여했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울러 장애인 인권 주류화를 위한 유엔 조약기구들에서의 활동들을 통하여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이양희 전 위원장님이나 유엔사회권위원회의 신혜수위원님과의 업무에 친숙해지게 됐는데, 이분들은 각각 활동하시는 위원회의 가장 비중 있는 멤버들 중의 한 분들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분들은 각 위원회의 위원활동에 장애인지적 관점을 포함시키는 일과 장애 이슈 주류화에 대한 노력들을 끊임없이 주도해나갔다.

이 때문에 이분들과 IDA 간에는 자연스럽게 빈번한 의사소통의 기회가 생기게 된 것이다.

또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김형식위원님의 경우에는, 장애인단체들을 대할 때마다 항상 열린 자세로 임하며, 장애인단체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그들과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 마련되는 부대행사에도 항상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분이시다.

실무 트레이닝 참가자들과 함께 한 기념사진. ⓒ이광원

이광원 : 이번 행사로 만난 한국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에 대한 인상은 어떠했나?

빅토리아 : 워크샵 중에도 여러 번 언급한 바 있었는데, 유엔연대의 연대체 조직이 매우 잘 되어 있다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협약 조항들을 주제별로 6개의 워킹그룹으로 나눠서 담당하며 활동하고 있는 것, 주기적으로 스터디를 잘 진행해나가고 있는 것, 그리고 유엔연대가 꾸려지기 전인 작년 연말에 4회에 걸쳐 전문적인 교육을 실시했던 것(필자 註 : 이 교육은 유엔인권정책센터가 주관해서, 장애인단체 관계자와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협약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는 내용으로 진행됐었음.) 등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워크샵에 임하는 자세들도 적극적이라서 보기 좋았다.

이틀이라는 제한된 만남으로 인해 한국의 장애인단체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단체와 변호사들이 파트너쉽을 갖고 같이 일하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앞으로도 변호사들이 장애인단체 활동에 많은 도움을 줌으로써, 질 높은 보고서가 나올 것이란 나의 기대감을 높여주는 계기가 됐다.

한편, 청각장애인이나 지적장애인 등 다양한 유형을 가진 장애인 당사자들의 더 적극적인 참여를 볼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이광원 : 마지막으로 한국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린다.

빅토리아 : 좋은 NGO보고서를 만들기 위해서 자료 수집과 초안 작성 과정에서 협약이나 위원회의 법체계를 연구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더욱 친밀한 교류, 공유, 그리고 함께 공부하는 기회들을 가지시기 바란다.

또 지방의 장애인, 이주민 장애인 그리고 노인 장애인 등 한층 더 소외된 장애인들의 이슈를 포함하여 가급적이면 모든 장애인의 권리들을 다룰 수 있도록 노력해주시고, 특히 워킹그룹 의장들께서는 자신들의 이슈뿐만 아니라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의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이광원 : 행사로 인한 피로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린다. 건강하게 귀국하시길 기원한다.

빅토리아 : 이러한 과정들이 좋은 NGO 보고서의 성공적인 준비를 가져다 줄 것이고, 그 결과로 한국의 모든 장애인 인권의 현저한 향상을 이끌어 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초청해주신 한국의 장애인단체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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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註 : 정부보고서에 대한 민간보고서는 그 명칭이, 대안보고서(alternative report), 보충적 보고서(supplementary report), 섀도우보고서(shadow report), 병행보고서(parallel report)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음. 빅토리아는 대부분의 인터뷰 내용에서 민간보고서를 굳이 병행보고서(parallel report)라고 일관되게 표현하였으나, 과거 보도내용과의 일관성이나 인터뷰 기사 전체의 통일성을 위해, 필자가 NGO 보고서로 변경하여 실었음을 밝혀두는 바임.

* 대담, 정리 : 이광원

* 통역 : 김기원

* 번역 : 김기원, 이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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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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