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비 장애인 자살에 대한 조력 문제를 다룬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포스터(출처 : 네이버 영화 화면 캡처) ⓒ튜브엔터테인먼트

자살하는 비장애인들의 경우처럼, 장애인의 경우에도 자살을 시도하고 싶을 때가 있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을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 비장애인들은 자신 혼자 자살을 시도하겠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는 전신마비 중증장애인이라면,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 경우, 자살을 도와줄 조력자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겠지만, 아무튼 구해서 자살에 성공했다고 가정해보자, 중증장애인이 자신의 손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해서 도와준 활동보조인의 행위는 유죄일까? 잘은 모르겠으나 형법을 찾아보니, 제252조에 해당되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것 같다.

그렇다면 똑같은 상황의 비장애인을 생각해보자. 자살을 시도했을 때 성공했다면, 죽은 사람에게 죄를 물을 일이 없겠으나 실패해서 다시 살게 되었다면, 자살을 시도한 것이 죄가 되나? ‘자살 시도 죄?’그런 죄는 들어 본적이 없다.

손발이 멀쩡한 비장애인은 자살할 권리(?)를 갖고 있고, 자살을 시도해도 죄가 되지 않는데, 전신마비 중증장애인의 경우에는 자신의 손발을 쓸 수가 없어서, 이를 대신해주는 조력자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하에서, 이 경우 조력자가 처벌을 받게 된다? ‘이는 불공평한 것 아닌가?’하는 의문이 바로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다.

비장애인은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언제든지, 또 얼마든지 자살을 시도할 수 있지만, 전신마비 중증장애인은 조력자가 처벌 받게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자살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말게 되는 셈이다.

이런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몇몇 있다. 그중에서도 대중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두고, 가장 널리 알려진 영화가 바로 ‘밀리언 달러 베이비(Million Dollar Baby)'이다.

이 영화는 2005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요 4개 부문을 석권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걸작이다. 영화를 본 독자들도 많겠지만, 간단히 영화의 내용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왕년엔 잘 나갔지만 이제는 나이도 들고 별 볼일 없어진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 扮)는, 친구인 스크랩(모건 프리먼 扮)과 함께 낡고 허름한 체육관을 운영한다. 그러던 중 프랭키에게 나이 많은 복서 지망생 매기(힐러리 스웽크 扮)가 찾아온다.

처음엔 프랭키가 매기에게, “31살이 된 여자가 발레리나를 꿈꾸지 않듯, 복서를 꿈꿔서도 안 돼!"라고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매기는 "31살에 이것마저 못하게 한다면, 내겐 아무것도 없어요."라며 호소했고, 결국 프랭키는 매기의 트레이너가 된다.

프랭키에겐 딸이 있었지만 연락도 거의 안 되는 소원한 관계였고, 매기 역시 자신에게 돈을 뜯어 살아가려는 흡혈귀 같은 가족들로 인해 외롭게 살아왔는데, 서로 간에 부녀와도 같은 정이 움트면서, 복서와 트레이너의 관계만이 아니라 혈육보다도 소중한 가족의 정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는, 프랭키가 시합에 나간 매기의 가운에 새겨놓은 ‘모쿠슈라(‘나의 사랑, 나의 혈육’이란 뜻)’라는 단어를 통해서도 표현된다.

매기는 전 게임을 넉 아웃 승으로 장식하며 타이틀 매치까지 나가게 됐지만, 결국 시합 도중 목뼈가 부러져 하루아침에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고 만다.

매기는 존재 의미의 전부였던 복싱을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음에 좌절하고, 또 서서히 다가오는 인생의 몰락을 괴로워하며 자살을 위해 혀를 깨문다.

하지만 병원의 응급처치로 자살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게 되고, 병원(사회)은 인공호흡기를 통한 생물학적인 삶의 연장만을 그녀에게 강요한다.

생의 최고의 순간에서 인생을 마감하고 싶어 하는 매기의 간절한 소망은 전신마비의 장애와 병원(사회)의 방해로 인해 이룰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프랭키는 이제 가족과 같은 존재가 돼버린 매기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그녀를 안락사시킨다.

영화 후반부의 충격적 반전을 빼고도 이 영화는, 현대 사회의 ‘가족 해체’ 문제를 다룸으로써 누구나 감동하게 만들지만, 특히 그 감동을 극대화시켜 정말 ‘우리의 눈물을 주체할 수 없도록’ 만드는 힘은, 역시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터져 나온다.

식물인간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나 ‘소극적 안락사’의 문제는, 자신의 안락사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어 타인이 결정하는 경우지만, 매기처럼 뇌의 기능에 문제가 없는 중증장애인이 자신의 장애 때문에 행사할 수 없게 되는 ‘자살할 권리(?)’는, 과연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까?

감독 크린트 이스트우드는 우리에게 묻는다.

‘전신마비 장애인의 자살할 권리(?)를 계속 박탈시키며,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생물학적인 삶의 연장만을 강요하는 사회가 유죄인가?’

아니면,

‘본인이 선택하고 결정했지만, 장애로 인해 자살을 시도할 수 없는 부분을 조력하는 사람이 유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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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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