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장애인연맹(DPI-AP)의 의장 나까니시 쇼지(Shoji Nakanishi) ⓒAP-DPO United

일본 최초의 자립생활센터인 휴먼케어협회의 설립자이자, 현 아태장애인연맹(DPI-AP : Disabled Peoples’ International Asia-Pacific Region)의 의장이기도 한 나까니시 쇼지(Shoji Nakanishi)씨를, 예전에 필자가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는 ‘기관 주도형 활동보조서비스’에 비해 ‘당사자 주도형 활동보조서비스’가 갖고 있는 우월한 경쟁력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운영되는 서비스 기관의 경우에는, 야간이나 휴일에 서비스를 제공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 정해진 서비스 시간이 아닌 때에 갑자기 서비스가 필요해질 경우에도, 역시 서비스를 제공 받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이 운영하는 자립생활센터의 경우에는, 소장 등 운영진들이 자신이 직접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한 경험들을 갖고 있어서, 야간이나 휴일 그리고 긴급한 상황 발생 시에, 활동보조서비스의 절실함을 몸으로 직접 체험해 봤기 때문에, 그에 대한 서비스를 빠트리지 않고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중증장애인들의 경우, 비장애인이 운영하는 서비스 기관보다도, 중증장애인 당사자가 운영하는 자립생활센터를 더 선호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자립생활센터가 경쟁력 있는 활동보조서비스 기관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실제로 하치오지(Hachioji, 八王子) 시에 소재한 휴먼케어협회 자립생활센터의 경우에는, 활동보조서비스 코디네이터들이 야간이나 휴일에 걸려오는 긴급 서비스 요청을 접수받기 위해, 긴급대응용 이동전화를 당번을 정해 순번제로 받음으로써, 대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개기관들은 몇 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 기관들을 자립생활센터와 비자립생활센터로 나눈다고 할 때, 전 호의 칼럼에서 소개한 미국과 일본의 사례들을 거울삼아, 이용자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개발하여 제공한다면, 비자립생활센터에 비해 자립생활센터들이 훨씬 더 강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일본 최초의 자립생활센터인 휴먼케어협회의 영문 홈페이지 캡쳐 사진 ⓒHuman Care Association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보조서비스에 있어서, 비자립생활센터에 비해 자립생활센터들이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 문제로 귀결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 첫 번째는 인건비와 운영비의 문제다. 비자립생활센터 중개기관의 경우, 지자체 등으로부터 이미 받아오고 있는 인건비와 운영비를 활용하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만, 별 다른 수입이 없는 자립생활센터들은 그렇지 못한 상태라, 중개기관 수수료에서 인건비와 운영비를 해결하다보니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자립생활센터의 인건비와 운영비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비자립생활센터 중개기관과의 무한 경쟁을 계속 이어가게 된다면, 활동보조서비스 전달체계로서의 자립생활센터는 머지않아 모두 다 고사(枯死)되고 말 것이다.

Nosek은, 소비자(당사자) 주도(Consumer controled), 지역사회중심(Community based), 전장애영역포괄(Cross-disability), 비거주시설(Non-residential), 비영리(Non-profit) 기관이란 다섯 가지를, 자립생활서비스 전달체계로서의 자립생활센터 요건으로 제시한 바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활동보조서비스 전달체계로서 당사자 주도(Consumer controled) 기관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자립생활센터가, 언젠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활동보조서비스 중개기관으로서의 자립생활센터와 비자립생활센터는, 이미 애초부터 같은 출발선에서의 경쟁이 될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는 것이다.

2010년 방콕에서 활동보조서비스를 주제로 개최됐던 아태자립생활센터네트워크(APNIL)의 세미나 기념사진 ⓒDPI-AP

두 번째는, 나까니시 쇼지씨가 얘기했던 중증장애인 당사자 운영 중개기관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거나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활동보조서비스 이용자의 소비자로서의 입장에서 보면, 같은 돈을 내면서 더 좋은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은 것이 당연한 것이다. 옛 속담에, ‘아주머니의 떡도 커야 사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왕이면 장애인 당사자가 주도하는 자립생활센터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지만, 같은 돈을 냈을 때 비자립생활센터의 떡이 크다면, 문제는 달라진다는 얘기다.

따라서 자립생활센터들은 나까니시 쇼지씨의 조언을 거울삼아, 중증장애인 당사자가 운영하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비자립생활센터보다 우월한 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떡’의 크기를 키울 수 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필자 역시 장애인의 한 사람으로서 활동보조서비스를 바라볼 때, 장애인 당사자가 주도하는 자립생활센터 같은 곳이, 활동보조서비스 중개기관으로서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충분히 살림으로써, 경쟁력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되려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자립생활센터의 공적 서비스 전달체계 편입 방안’ 등을 포함하여, 다양한 대안들이 검토됨으로써, 첫 번째 문제인 자립생활센터의 인건비와 운영비 문제의 해결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든 ‘동일하지 않은 출발선 상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자립생활센터들은, 중증장애인 당사자가 운영하지 않고 있는 비자립생활센터에 비해, 보다 우월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활동보조서비스에서 우월한 경쟁력을 지닌 자립생활센터들의 모습들을, 하루 빨리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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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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