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맞벌이를 한다는 이유로 평일에는 어머니가 딸아이를 돌보아주시고, 주말에만 집으로 데리고 온다.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3살된 딸아이가 나보다 먼저 일어나 깨우기 시작한다. 일찍 일어난 딸아이와 함께 아파트 놀이터나 주변 산책로를 나서게 된다.

날씨가 화창한 날에는 아침부터 놀이터에 아이들이 가득하다. 미끄럼도 타고 그네도 밀면서 놀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흘러간다. 문득 ‘장애를 가진 어린이는 이런 놀이터에서 어떻게 마음껏 놀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장애를 가진 어린이를 배려하여 기구를 설치한 놀이시설은 드물다. 그래서 장애를 가진 어린이는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가 없다.

이런 점은 장애인을 위한 시설들에도 마찬가지이다. 장애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기보다는 장애 어른의 입장에서 계획되어 있기 때문에 장애 어린이가 시설을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어린이'는 17세기부터 써 온 말이다. '어리다'의 의미가 '어리석다(愚)'에서 '나이가 적다(幼)'로 변화하면서, '어리다'의 관형사형 '어린'에 의존 명사 '이'가 결합되어 형성되었다.

그러다가 방정환 선생이 1920년에 유년과 소년을 대접하고, 남녀 유소년을 다 함께 부르기 위하여 '어린이'란 말을 새롭게 쓰기 시작했는데, 이 때부터 원래의 '어린이'에 없었던 높임의 뜻이 있음을 강조하여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반면 ‘어른’은 15세기 국어(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국어)에서의 ‘얼운’에서 비롯된다. 이는 ‘얼우다’의 어간 ‘얼우-’에 명사형 접미사 ‘-ㄴ’이 붙은 것이다. 이 때 얼우다는 ‘성교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말로 성교를 하는 것을 인정 받은 사람, 즉 ‘혼인한 사람’이란 뜻이다. 혼인하지 않은 어린이들은 아직 어른들보다 미숙하여 보호받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린이를 사회적 제도와 어른들의 양식으로 ‘보호’하려는 것은 그들이 아직 혼자 독립하여 살기에는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동물로 말하자면 어린 새끼이고 식물로 말하면 묘목 같은 존재이다. 어른들의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보살핌을 통하여 더욱 건강해지는 것이다.

또한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환경의 동물이다. 특히나 어린이에게는 생활 환경이 곧 육체적 성장과 인격형성 결과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 따라서 이러한 배려가 없는 어린이 전용시설은 문제가 많다. 더욱이 유치원 공간과 놀이터 환경은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주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어린이 놀이터를 살펴보면 어딜가나 천편일률적인 모양으로 놀이시설 모양도 비슷하고 종류도 비슷하다. 비슷한 놀이터에서 비슷한 놀이밖에 할 수 없으며, 더욱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놀이기구는 아무것도 없다.

어린이들의 눈높이를 고려하기보다는 어른들의 편의에 의해서 구성되었을 것이고, 아마 놀이기구 생산업체와 놀이터 시설 운영 주체의 시각이 비슷하게 무관심하고, 형식적이고, 적당주의인 탓일 것이다. 예산도 적을 적이고, 그래서 더욱 장애 아이들을 고려하기는 어렵다.

어린이를 위한 공간은 어린이의 평생 추억의 생산 장소이기에 그 행위와 경험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어른들의 몫이 특히 중요하다.

어른들의 몫은 비단 현재 살고 있는 우리들의 공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인 어린이들을 위해, 특히 장애 아이들을 위해서 조금 더 편안하고, 조금 더 행복하고, 조금 더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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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길 칼럼리스트
시작은 사소함이다. 비어있는 도시건축공간에 행복을 채우는 일, 그 사소함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지어진 도시건축과 지어질 도시건축 속의 숨겨진 의미를 알아보는 일이 그 사소함의 시작이다. 개발시대의 도시건축은 우리에게 부를 주었지만, 문화시대의 도시건축은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 생활이 문화가 되고 문화가 생활이 되기를 바란다. 사람의 온기로 삶의 언어를 노래하는 시인이자, 사각 프레임을 통해 세상살이의 오감을 바라보는 사진작가, 도시건축 속의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통하고자하는 건축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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