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관계를 맺으며 산다. 지금 서 있는 위치와 거주하는 공간의 관계 속에서도 외면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내면 깊숙한 곳까지 관계맺음이 스며들어 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공간은 단순한 삶의 그릇이 아니다. 그 속에서 ‘살다’라고 하는 것은 어떤 도시, 지역, 집, 방 등의 공간 속에 놓여져 있다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우리들이 ‘거주하다’라고 할 때는 생활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생활에 의해 공간은 환경이 된다. 그리고 그 안에는 ‘마음’이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거주하다’라는 것을 통해서, 환경이 된 생활공간에 마음을 작용시킨다. 즉, 사람이 산다는 것은 '환경'인 동시에 '마음'의 투영이다.

공간이 진정한 의미로서의 환경이 되는 것은 인간적인 의미를 내포하며, 인간화되는 것에 있다. 바꾸어 말하면, 단단하고 메마르고, 무기적(無機的)인 공간이 포근하고 촉촉한 인간적인 공간으로 바뀌는 것이다.

따라서 공간의 인간화는 무엇보다도 ‘마음’으로 행하여진다.

본래 인간은 신체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의하지 않는 삶의 방식은 인간의 삶이 아닌 것이다. 인간은 ‘마음’으로 인간화된 공간이라는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여기에서 ‘마음’이라는 것은 느끼거나, 생각하거나, 원하거나 하는 것으로 신체에 의한 행동이며, 행위을 조정하는 움직임이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

‘마음’은 개인만의 것이 아니고, 가족이라든지 민족과 같은 집단에서도 각각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공간의 인간화'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개인의 환경에는 그 개인의 특수성이, 어떤 집단의 환경에는 그 집단의 특수성이 특유한 분위기와 멋으로써 진한 색깔이 반영되어 있다.

가장 가까운 환경공간으로의 주거라는 것을 살펴보면, 주거는 자연과 인간과의 다면적으로 관련된 곳, 소위 결정체이기 때문에 그것은 물리적인 건축으로서 개인생활상의 필요라든가, 더욱이 지역사회며 민족성이며 풍토적인 조건에 의한 구조상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거주’를 한다는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에 의해 각각 서로 다른 멋을 가진다는 것, 즉 다른 방식에서 공간이 인간화된다는 것. 개개인의 ‘마음’이 반영된 공간 속에서 자신만의 공간이 발현되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으로 인간화된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마음’의 장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쩌면 공간 속 ‘마음’의 장애로 인하여 우리는 스스로가 불편한 현실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슴 깊숙이 숨어있는 ‘마음’의 장애가 치유될 때, 우리는 진정한 환경 속에서 ‘마음’으로 지어진 공간을 통하여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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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길 칼럼리스트
시작은 사소함이다. 비어있는 도시건축공간에 행복을 채우는 일, 그 사소함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지어진 도시건축과 지어질 도시건축 속의 숨겨진 의미를 알아보는 일이 그 사소함의 시작이다. 개발시대의 도시건축은 우리에게 부를 주었지만, 문화시대의 도시건축은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 생활이 문화가 되고 문화가 생활이 되기를 바란다. 사람의 온기로 삶의 언어를 노래하는 시인이자, 사각 프레임을 통해 세상살이의 오감을 바라보는 사진작가, 도시건축 속의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통하고자하는 건축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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