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주언이, 틈만 나면 종이에다 뭔가를 써서 오리고 붙이고 하는 것이 일이다.

두어달 전부터는 종이 몇 장을 스테이플러로 꼭 찝은 후, 그림과 나름의 글을 덧붙여 책이랍시고 만들고는 한다. 물론, 여섯살짜리 아이의 작품인지라 책이라 할 것도 없을 만큼 스토리도 없고 그림도 형편없다.(그것마저도 엄마 아빠의 눈에는 이쁘지만.)

그런데 오늘 꽤 괜찮은 작품(?)이 하나 나왔다. 비록 제목 한 장, 텍스트 두 장의 책이지만 촌철살인의 웃음을 주는, 예리한 대사와 그림.

제목은 <아빠 보고 싶어요>다.

어디서 본건 있어서인지 표지에는 저자서명인 '박주언 글, 그림'이 들어가 있고, 표지 그림은 아빠와 아들의 정다운 대화 내용이다.

말풍선을 달아서 애기 얼굴이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면 아빠 얼굴이 "알았다"라고 대답해주고 있는 모습인데, 애기 얼굴과 아빠 얼굴은 턱 부분의 수염으로 구분할 수 있단다.

주언이가 그린 <아빠 보고 싶어요>그림. ⓒ이은희

"어떤 가족이 벽으로 집을 짓고 있었어요. 뚝딱뚝딱뚝딱"

아마도 '벽돌'에서 '돌'이 생략되지 않았나 싶다.

'주언집'이라고 문패가 있고, 옆에 선한 얼굴로 웃고 있는 사람은 아빠란다. 역시 수염으로 아빠 얼굴임을 확인할 수 있다.

주언이가 그린 가족이 벽으로 집을 짓고 있는 그림. ⓒ이은희

"근데 집을 짓다가 깜빡 하고 화장실을 못 만들어서 밖에서 오줌을 싸야 했습니다."

아주 압권인 대사였다. 깜빡 잊고 화장실을 못 만들다니???

이 엄마는 아주 빵 터지고 말았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닌게 아니라 자는방(침실), 놀이방, 가실(거실), 부억(부엌)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빠가 밖에서 소변을 보고 계시고(이번에도 웃는 얼굴로?), 다리 사이에 보이는 바로 저 점선모양(----------)이 소변을 의미하는 듯.

더 웃긴 것은 급하게 응가를 할 때는 경찰차가 와야 한단다. 집 옆에 있는 차가 경찰차이고, 차 밑에 조금씩 떨어져 있는 것은 응가라고.

주언이가 그린 그림. ⓒ이은희

마지막 쪽에서는 글씨를 쓰다가 힘들어서 대신 좀 써달라고 아빠한테 불러주었다.

글씨를 오래 쓰다 보면 손이 아파져서 종종 엄마아빠한테 대신 써달라고 청할 때가 있다.

다리 대신 손을 대근육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손이 쉬이 피로하다고 한다. 치료사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가 발가락으로 뭐를 집으려고 애를 쓰면 발가락 주변의 근육이 아파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니 이럴 때 보면 어쩔수 없이 안쓰러워진다.

아무튼 우리 가족은 주언군이 만든 이 책을 보고 저녁 한때 즐겁게 웃었다. 덕분에 형아도 동생도 모두 배깔고 누워 나름의 '책만들기'에 열중했던 밤이었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근심이 떠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을 보면, 근심은커녕 아이 덕분에 오히려 새로운 에너지가 퐁퐁 솟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밝게 키우고자 했던 깨알같은 엄마아빠의 노력의 결실이 벌써부터 훨씬 더 큰 모습으로 우리에게로 돌아오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 아이에게 늘 고맙고 부모로서의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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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칼럼리스트
주언이가 보통 아이처럼 건강했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사회의 여러 구석들과 만나면서 아이 덕분에 또 하나의 새로운 인생을 얻은 엄마 이은희. 가족들과 함께 낯선 땅 영국에서 제3의 인생을 펼쳐가고 있는데...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좌충우돌 일상사를, 영국에서 보내온 그녀의 편지를 통해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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