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것은 삶의 다른 이름이며, 걸을 만한 도시의 통찰이다.

자신이 하고 싶다면 멈출 수도 있다.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으며, 대화를 시작할 수도 있다. 스스로가 주변 환경의 여건에 반응할 수도 있으며, 꿈 꿀 수도 있다. 생각에 반응할 수도 있으며, 느리거나 빠르게 속도를 바꿀 수도 있다. 방향을 바꿀 수도 있으며, 앉거나 뛰어놀거나, 기대어 서거나 하는 모든 삶의 행위들을 걸으면서 함께 할 수 있다.

그래서 걷는 것은 삶이며, 자신만의 개성(사람들마다 자신만의 성격, 외모, 장애유무 등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이를 개성이라 보겠다.)을 지닌다.

더욱이 우리는 항상 혼자서 또는 빈손으로 걷지 않는다. 종종 가방을 들거나 우산이나 쇼핑백을 들기도 하고, 유모차를 밀거나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다. 친구와 함께 걷거나 혹은 여러 명이 걷기도 한다.

우리는 두 발로만 걷지도 않는다. 다리가 불편하여 목발을 겨드랑이에 끼고 걷거나,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수도 있으며,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서 걷기도 한다. 시각장애인은 지팡이나 안내견의 도움을 받아 걷는다.

그래서 우리는 적절한 도시공간을 필요로 하며, 다양한 사회적 기능과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걷는 것의 본질은 멈춤과 함께 의미가 확장된다.

우리는 서기 위해 멈춰야 한다. 앉기 위해, 어딘가에 기대기 위해, 어딘가 눕기 위해서 멈춰서야 한다.

쉬려고 하거나 무언가 다른 것을 하기위해 손을 비우려고 한다면 우리는 멈춰섬으로써 쉴 수 있고, 낮잠을 자고, 무엇인가 내려놓을 수 있다. 우리는 햇빛을 쬐기 위해 걸음을 멈추기도 하고, 누군가와 이야기하기 위해 쉬기도 한다.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 보여 주기도 하고, 보기 위해 혹은 독서를 위해, 먹기 위해, 그리고 아이들의 놀이를 위해 걸음을 제한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걸을 만한 도시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길에는 일어설 만한 것, 앉을 만한 것, 기댈 만한 것, 볼 만한 것 그리고 놀 만한 것이 필요한 것이다.

걸을 만한 도시는 건축물과 주변 요소들을 관찰할 공간이 존재한다.

관찰은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하여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다. 걷는 속도에 따라 건축물을 관찰할 수 있고 주변요소들을 살펴볼 수 있다. 도시공간을 관찰한다는 것은 도시와 건축의 사이공간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훌륭한 경험들이 일어날 수 있는 기회와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 살 만한 도시이며, 안전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걸을 만한 도시는 살 만한 것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우리가 알아야하는 것은 “걸을 수 있는 도시”는 “살 만한 도시”이고, “살 만한 도시”는 “걸을 만한 도시”라는 간단한 논리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가끔 잊어버리고 산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걸을 만한 도시의 시작이 곧 장애인을 위한 길이다.

그래서 누구나 걸을 만한, 그래서 누구나 살 만한 도시를 가꾸어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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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길 칼럼리스트
시작은 사소함이다. 비어있는 도시건축공간에 행복을 채우는 일, 그 사소함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지어진 도시건축과 지어질 도시건축 속의 숨겨진 의미를 알아보는 일이 그 사소함의 시작이다. 개발시대의 도시건축은 우리에게 부를 주었지만, 문화시대의 도시건축은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 생활이 문화가 되고 문화가 생활이 되기를 바란다. 사람의 온기로 삶의 언어를 노래하는 시인이자, 사각 프레임을 통해 세상살이의 오감을 바라보는 사진작가, 도시건축 속의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통하고자하는 건축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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