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주언. ⓒ이은희

계절이 여름을 향해가면서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집에 가기 전에 반드시 들르는 곳이 생겼다. 그곳은 다름 아닌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

사실 그동안 놀이터는 주언이에게 ‘그림의 떡’ 같은 곳이었다. 걸을 수 없으니 그 곳에 있는 어떤 시설 하나라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발조차 디딜 수 없다.

실내 놀이터는 기어 다니며 이것저것 탐색을 할 수 있어서 그나마 좀 낫지만, 실외 놀이터는 가봐야 눈으로 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데다 가끔씩 거친 아이들에게 밀려 다칠 뻔 한 적이 있어서인지, 주언이에게 놀이터는 그다지 매력 없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주언이가 요즘 놀이터에 푹 빠져있다. 주언이나 동생처럼 어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낮은 놀이터를 단지 내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키가 큰 초등학교 형아들은 오지 않는데다 무엇보다 미끄럼틀 높이가 매우 낮아서 완전 겁쟁이인 우리 아이들이 마음 놓고 미끄러져도 절대 다치지 않는다.

바로 그 곳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아이가 미끄럼틀에서 내려오려고 자세를 잡고 있는 주언이를 발로 밀어 미끄러뜨렸다.

사실 주언이는 겁도 많지만 내려오기 위해 상체의 균형을 잡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름대로는 제대로 내려오려고 자세를 잡고 있었는데, 미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밀려 내려오느라 많이 무서웠는지 한동안 엄마를 붙잡고 운다.

서럽게 아이의 우는 모습을 보니 조금 속이 상했다.

그렇지만 아이들 놀음이 늘 그러려니 하고 가만있었어야 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다 의도하지 않게 다치고 들어오는 일은 그맘때 아이들의 일상다반사가 아닌가.

내 아이에게도 그런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주언이를 밀어 넘어뜨린 그 아이도 이제 겨우 다섯 살 정도 밖에 안 되어 보이는, 아직 사리분별이 될 리가 없는 어린 아이였다.

그런데 그런 아이에게 “조심하지 그랬니”라며 한마디 싫은 소리를 하고 말았다.

대단한 얘기도 아니었고 그 아이 또한 내 말에 상처받아 울거나 전혀 위축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말을 내뱉고 돌아서자마자 내 얘기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내 아이가 신체가 건강한 아이라면 당연히 아무 말도 안 했을 거고, 설사 지금의 상황을 고려했더라도 굳이 안 해도 됐을 얘기를 다른 아이에게 뱉어놓고 나니 그 아이에게도 미안하고 지금까지도 내 자신에게 부끄러워지고 만 것이다.

몸이 불편한 내 아이에겐 다소 가혹할 수도 있지만 내 아이가 보통의 아이들과 똑같다고 가정하고 모든 상황에 대처해야 할 거 같다.

판단의 순간에 균형을 잃는다면 어떤 식으로든 상대방 아이 입장에서는 억울하다거나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일이 커진다면 이른바 ‘역차별’ 논란으로까지 발전될 수도 있겠고…

아이는 자라고 나 또한 나이를 먹어가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깨알같이 작은 일이었지만, 오늘 하나 또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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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칼럼리스트
주언이가 보통 아이처럼 건강했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사회의 여러 구석들과 만나면서 아이 덕분에 또 하나의 새로운 인생을 얻은 엄마 이은희. 가족들과 함께 낯선 땅 영국에서 제3의 인생을 펼쳐가고 있는데...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좌충우돌 일상사를, 영국에서 보내온 그녀의 편지를 통해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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