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끝낼까 생각중이다. 너라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이런 애기는 만나서 해야 하는데 나도 이제 집에와서 힘들고, 너도 바쁘니 문자만 보낸다. 답장 줘."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재활병원에서 알게 된 동갑내기 친구 녀석이 문자를 보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준비하던 중 오토바이 사고로 지체 장애를 갖게 된 그는 “내가 왜 장애인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건 꿈이다.”라며 몇 년 동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녀석이었다.

그러다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회로 나왔고, 그러던 중 장애인 선교단체에서 지금의 여자친구를 만나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혜어져야 하는 지를 고민한다니 무슨 일일까 싶어 전화를 걸어 연유를 물어보았다.

자신의 여자친구 앞으로 복지카드가 나왔는데 장애 유형이 '간질' 로 나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달에 2-3 번 데이트를 할 때도 잠깐씩 머리가 아파 근처 의자에 앉아 쉬는 경우가 많았기에 단순한 빈혈인 줄 알았는데, 장애 유형을 알게 된 이후 마음 속으로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또한 녀석은 '간질'하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입에 거품을 물거나 경기를 하고, 대소변을 보거나 경련 증상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자신도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 여자친구까지 불편함을 갖고 있는 것이 싫다며 더 이상 오래 끌지 않고 사이를 정리하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른 장애 유형에 대한 편견,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아.

고등학교 2학년 무렵으로 기억한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도 간질 장애를 않고 있던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아이는 가끔 정신을 잃는 것을 제외하고는 학교 생활이나 학업에 어려움은 없었으며, 특별 활동으로 기타부에 들어가 학내 공연도 여러 번 나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적어도 그 아이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발작'은 없었던 것이다.

그 때 나는 간질 역시 다른 장애와 마찬가지로 진행 정도와 증상 등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휠체어를 타고 있다고 해서 모두 다 걸을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시각장애인들 중에서도 급수나 정도에 따라 약간이나마 시력이 남아 있는 이들이 있는 것과 같이 간질 역시 마찬가지였다.

'발작, 경련 등으로 알고 있는 것 역시 간질의 증상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지만 우리가 주변에서 그러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적었으며, 인터넷과 텔레비전에 나타나는 내용 정도가 우리가 아는 지식의 전부이기에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녀석이 이별을 생각하게 된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장애에 대한 전부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자신은 간질 장애가 아닌 다른 장애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도 의문점이 생겼다.

만약 다음에 만나는 사람이 신장장애를 가지고 있어 투석 등으로 병원에 자주 다녀야 한다면 그는 “그래 너는 병원에 자주 다녀도 간질 장애가 아니니 괜찮아.”라며 투석 후 떨어질 수밖에 없는 여자친구의 체력을 고려해 데이트 날짜를 조정해 줄 수 있을까?

긴 시간의 통화를 끝내면서 내 의견을 묻는 녀석에게 나는 “그 애가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한 번 진지하게 물어보고 결정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후 녀석은 여자친구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남남이 되고 말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이 있다. 장애인 역시 다른 유형의 장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비장애인에게도 “장애는 장애가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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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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