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어린이집의 졸업식이 무에 그리 대단할꼬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발성도, 발음도 미처 완성되지 않은 일곱 살 아이가 또박또박 힘들게 읽어 내려가는 답사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아이들과 오랜 시간을 보낸 선생님도, 아이들의 부모도, 너나 할 것 없이 눈물로 뒤범벅이 된 이들의 졸업식은 다른 졸업식과 분명 달랐다.

중증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각자의 보조기구에 눕거나 앉아서 친구들의 졸업을 축하해(?) 주었고, 지적장애나 발달장애를 가진 친구들도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뒤쪽에 자리잡고 앉아 때로는 풀쩍풀쩍 뛰면서, 때로는 놀랄만한 환호성으로, 때로는 갑작스러운 행사장 난입으로 친구들과의 이별을 아쉬워(?) 하였다.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님들의 표정은 한없이 자애롭고, 그 모든 상황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심지어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4살 아이의 귀여운 송사가 끝나고 답사를 맡은 친구는 7살 윤지였다. 같은 반이었던 주언이의 말에 의하면 윤지 누나는 말을 “떼떼떼~” 이렇게 한다고 말하곤 했었는데, 생각보다 정말 또박또박하고 훌륭한 답사였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는 한없이 마음 아플 일이 많았을 텐데 어쩜 저렇게 잘 자랐는지…’ 이런저런 감정이 이입되면서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처럼 눈물을 훔치는 분들이 꽤 있었던 것으로 보아, 아이의 답사를 통해 모두 같은 마음으로 감동받은 모양이었다.

정작 이별의 아쉬움을 잘 모르는 아이들은 자신들을 위한 이벤트에 그저 신나는 모습이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어른들에게는 참으로 찡한 졸업식이었다. 특히 더 넓고 망망한 곳에 아이를 보내려고 마음먹은 이 엄마로서는 더욱 만감이 교차하는 졸업식이었다.

아직은 산만한, 어린 졸업생 친구들. ⓒ이은희

주언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했다. 만으로 두 살이 되기도 전부터 다니던 곳이니 3년 3개월 정도 다닌 셈이다. 오랜 기간 머무르기도 했지만 어린이집은 우리 가족과 주언이에게 상당한 의미를 가진 곳이었다.

4년 전 서울에서 순천에 내려와 정착한 이후, 주언이에게 맞는 어떤 공간이나 프로그램을 찾는 일은 그 무엇도 쉽지 않았다. 적절한 치료 프로그램을 찾는 일뿐 아니라 바우처를 이용한 프로그램, 하다못해 아이를 위한 감성고양 프로그램마저도 뭔가 어설프고 2프로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주언이가 다녔던 어린이집을 만난 건, 다소 구태의연한 비유이지만,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만큼이나 반가운 일이었다.

통합이 가능한 장애아이와 일반 아이들이 한데 모여서 생활하는 ‘통합어린이집’이 지방 소도시에 존재하기도 어려운 일인데, 무엇보다 잘 운영되고 있는 어린이집이 근거리에 있다는 것은 내 아이에겐 축복일 수도 있었다. 아니 실제로, 순천에서 지낸 4년 동안 만난 어떤 기관이나 시설보다도 가장 만족도가 높았을 정도로 내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모두 너무나 고마운 곳이었다.

어린이집에서의 달리기 경주. 비장애 친구들도 인내심을 갖고 몸이 불편한 친구들이 경주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의젓하게 기다리고 있다. ⓒ이은희

그랬기에 아이에게 더없이 훌륭한 보금자리를 과감히 떠나기로 한 것은 고통스러운 결정이었다. 그러나 아이에게도 더 넓은 공간에서 본인 스스로에게 맞는 자리와 생활방식을 찾아나가는 적응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어린이집을 떠나기로 결정하였다. 오늘 3월부터 주언이는 비장애 친구들이 대부분인 유치원에서 생활하게 될 예정이다.

아이는 유치원을 가게 되었다며 신나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혹시 거친 아이들에게 밟혀 다치지나 않을까, 아이들의 활동에서 소외되어 구석에서 속상해하진 않을까, 걷지 못한다고, 아직도 기저귀를 못 떼었다고 아이들에게 놀림 받지나 않을까… 그런 점에서 어린이집은 그동안 주언이에게 참으로 좋은 보호막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린이집을 떠나 더 넓은 곳으로 가야 한다. 다소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작은 아이에게 인생의 1막2장이 열린 것이다. 따뜻한 어린이집을 떠난다는 것은 안타깝고도 아쉬운 일이지만, 이럴수록 냉정해야 하는 부모는 더욱 굳건하고 긴 호흡으로 아이를 지켜보려고 한다.

졸업하는 주언이. ⓒ이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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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칼럼리스트
주언이가 보통 아이처럼 건강했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사회의 여러 구석들과 만나면서 아이 덕분에 또 하나의 새로운 인생을 얻은 엄마 이은희. 가족들과 함께 낯선 땅 영국에서 제3의 인생을 펼쳐가고 있는데...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좌충우돌 일상사를, 영국에서 보내온 그녀의 편지를 통해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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