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는 의식주의 하나로 사람이 생활을 하기 위한 기본적 요소이다. 장애인이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거나 돌봄이 부담이 되어 시설에 맡겨지면 시설은 주거 서비스를 한다고 한다.

시설은 그런 의미에서 장애인의 주거시설임에 분명하다. 수용시설이란 부정적 용어를 벗어나 생활시설이라고 했다가, 지금은 주거시설이라고 부른다.

주거에 시설이란 단어가 붙어 주거시설이란 단어를 만든 것인데, 주거가 시설일 수도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한다.

가정은 왜 주거시설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가정의 기능이 없는 주거시설이 누군가가 거주한다는 사실만으로 시설로는 인정될 수는 있겠지만 과연 주거로 인정될 수 있는가?

시설 이름에 대부분 ‘평화의 집’, ‘행복의 집’, ‘천사의 집’, ‘사랑의 집’과 같이 ‘집’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은 시설이 집이며 주거시설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시설도 사실 집은 아니다.

집은 국어사전에 의하면, 풍우와 한서를 막고 사람이 살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그렇다면 시설은 그러한 것을 잘 막아주는 안정된 집인가? 그러한 집 중의 하나이기는 하나, 홍수나 화재 등으로 자주 시설의 피해가 보도되는 것을 보거나 시설의 질을 감안하더라도 별로 좋은 집은 아닌 것이다.

집이란 보금자리이다. 보금자리란 포근하고 아늑한 둥지를 말한다. 시설은 보금자리가 아니다. 포근하지도 않고 아늑하지도 않다. 그리고 항상 저녁에 돌아가 쉬는 곳이 아니라 그냥 그 곳에 항상 머무는 수용시설임에 불과하다.

집은 ‘칼집’과 같이 보호하는 것이라야 한다. 그러나 시설은 보호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잃게 하고 자립을 방해하며, 성장을 멈추게 한다. 칼을 녹슬게 하는 집은 필요하지 않은 집이다.

집은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집안을 말한다. 시설은 집안도 아니고 가정도 아니다. 특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사는 것 또는 그러한 집을 주거라고 하는데, 시설은 가정은 아니며, 특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곳이니 주거공간은 분명하며, 그러한 것을 제공하는 시설이니 주거시설이라 할 수 있다.

탈시설 운동이 전개되자 시설들도 주거공간으로서 필요한 존재임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주거시설이면 가정과 같은 동등한 자격을 갖는 것인가? 주거시설이면 생활시설이나 수용시설과 다른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는가? 주거시설로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그 정체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가.

주민등록법상 분명 주소를 이전할 수 있으므로 그렇게 보자면 시설도 주거인 셈이다. 그러나 사회의 가장 최소 구성단위가 가족인만큼 가족이 아닌 구성원의 모임을 가정이라고는 할 수 없다.

모텔이나 여관을 잠을 잔다고 주거시설이라고 하지 않는다. 상업시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시설은 비영리 시설, 또는 공동생활시설이기는 하나 주거시설로 부르는 것은 너무나 미화된, 왜곡된 용어가 아닐까?

주거시설은 개인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은밀한 개인 공간이다. 기숙사와 같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시설이라고 하더라도 사생활은 보장된다.

시설에서는 과연 사생활이 보장되는가?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자기결정권도 개인 프라이버시도 없는, 종사자에게 개방된 시설에서는 오직 이불을 뒤집어 쓴 공간 내에서만 사생활이 보장된다. 그러한 사생활의 공간이 없는 주거는 주거가 아니다.

의식을 해결하는 공간이 주거이며, 전문 영양사와 요리사가 제공하는 식사를 할 수 있어 고급 주거시설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집사가 있고 관리사가 있으니 주거시설 중 저택과 같은 공동 주거시설이 아닌가?

친구가 전화를 하다가 상대방이 현재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집이 아니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사람이 너희 집만 집이고 우리 집은 집도 아니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집이라고 다 같은 집이 아니다. 세상에서 자신만의 공간이 집이다. 그러나 시설은 자기만의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다.

집단생활을 하고 규칙 생활을 하는 시설에서는 식사 시간과 취침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주거는 외부와 단절되어 있고 거리상으로도 격리돼 있다. 기능적으로도, 지리적 위치적으로도, 시설의 수준으로도 결코 시설은 좋은 주거가 아니다.

주거는 보금자리이다. 바깥에서의 피로를 풀고 혼자만의 보금자리로 돌아가 다시 재충전하는 공간인데, 시설은 바깥으로 나아가지도 않고, 항상 그 자리에 있어야 하고, 밖으로 나갈 길 자체가 단절돼 있다.

주거는 편리함이 있어야 한다. 가장 안락하고, 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시설에서는 장애로 인해 서비스를 받는 자이며, 주인이 아니다.

세를 얻어 사는 주거 형태의 거주자도 물론 주인은 아니다. 그러나 비록 건물의 주인은 아니지만 사용에 있어서는 주인이다. 반면 시설 이용자는 사용상 주인도 아니다. 주거는 자신이 결정하는 공간이다. 반면, 시설에서 모든 결정은 종사자에 의해 결정된다.

사고 팔 수도 없는 주거는 유일하게 시설뿐이다. 단지 입퇴소의 절차만 있을 뿐이다. 시설에서는 개인 소유물의 보관 공간이 극히 제한적이다. 그리고 건물은 있으나 격리돼 있으며, 친구를 마음대로 불러 올 수도 없고, 친구가 함부로 찾아오지도 않는다. 식사도 내 마음대로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먹지 못하고 모든 사람이 같은 메뉴로 주어지는 대로 먹어야 한다. 그러므로 시설은 주거라기보다는 수용소에 더 가깝다.

그런데도 시설이 주거형태의 하나라는 의미로 주거시설이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최악의 주거시설임이 틀림없다. 스스로가 최악임을 인정해야 하는 주거시설이란 말을 굳이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시설에서 사회로 돌아온 사람을 생환자라고 한단다. 주거시설이라고 불러 당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최악의 주거시설임을 인정해야만 하는 시설은 그 어떤 용어로도 존재의 정당성을 찾기가 어렵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