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손으로 떡이며 만두며 만드는 걸 보시고 놀라 넘어가시는 우리 엄마~. 이정도면 솜씨 괜찮은 건가? 떡과 만두 반죽을 하듯 남은 장애인으로서의 내 인생도 잘 반죽해야겠다. ⓒ한옥선

“옥선아~이리 좀 와봐~”

베란다에서 김치 냉장고가 어째 좀 시원찮은지 엄마가 부르신다. 다른 어르신들에 비해 혼자 사신 세월이 길어서인지 웬만한 것은 글을 모르셔도 눈치 구 백단은 되셔서, 어떻게든 해내시는 그런 엄마가 요즘 능력이 안 통하시는지 날 부르신다.

사실은 엄마의 능력은 몇 년 전부터 안 먹히셨다. 드럼 세탁기도 문짝을 억지로 여시다가 산지 얼마 안 되어 부서지고, 냉장고 역시 얼마 안 되었는데 문을 오래 열어놓고 뭘 찾으시다가 삐리리 울리니 그거 시끄럽다고 소리 나는 곳을 치셨는데, 센서가 울 엄마가 무서웠는지 그만 나가면서 냉장실 내부 불도 나가버렸다. 하하~.

노인이 무슨 힘이 있냐고 하겠지만 우리 엄마 호랑이도 맨손으로 때려잡으신 분이시다. 어젯밤 꿈에 새끼 호랑이 잡으시고, 어미 호랑이 잡다가 ‘으으~~’ 소리에 내가 악몽 꾸시는 줄 알고 깨웠더니 어미 호랑이 잡는 중이셨단다. 아주 무서운 할머니다.

빨리 안가면 나 때문에 어젯밤 못 잡은 어미 호랑이 대신 날 잡을지도 모르니 얼른 김치 냉장고로 갔다. 엄마가 온도가 시원하질 않아 보였는지 뭘 만져 놓으시고는 안 되겠는지 부르신 것이다. 물론 우리 엄마의 시침때기 필살기가 나왔다. 아무것도 건드린 것도 없고 만진 적도 절대 없다고.

“아유~냄새”

보통 냄새 그러면 미간을 찌푸리면서 눈은 거의 감다 시피하고 코를 찡긋하며 손가락으로 코를 막는 시늉을 하는데 내 얼굴은 그것과는 정반대의 반가운 님을 만난 표정에 입안은 금새 침이 스르르 고이는가 싶더니 꼴깍 넘어간다. 순간 냄새로 날 사로잡은 것은 바로 잘 익은 김장 김치 냄새다. 정말 김치 없이는 하루도 못사는 나에게 그런 맛난 냄새가 유혹을 하니 아흐~ 절대 그냥 지나갈 수 없다.

추운 겨울 돼지고기와 두부를 숭숭 썰어 넣은 뽀글 김치찌개며 들기름에 김치와 찬밥을 넣어 달달 볶아 먹는 김치 볶음밥도 맛있다. 하지만 한 번 만들어 놓으면 출출할 때 언제든 손쉽게 해먹을 수 있는 그것 바로 딩동 핸드폰에 문자가 오듯이 내 머리 속에 ‘만두’하고 뜬다. 하하.

어려서는 엄마가 일 다니시느라 만두를 해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 명절 때 큰 집에 가서 한 그릇 구경하는 게 고작이었기에 내가 어른 되면 만두 좀 실컷 해먹어야지 했는데 진짜 그 꿈은 이루었다고 본 다. 적어도 겨우내 몇 백 개는 해먹었었으니까. 호호

배운 적 한 번 없지만 들어간 것은 뭐가 들어갔는지 먹어보았으니 알거 같아 몇 번 해먹어 보니 노하우도 생기고 그래서 하다 보니 아이들도 좋아하는데 다양하게 만들어 먹어 보자고 천연 재료들을 반죽에 넣어 각양각색의 만두를 만들어 먹었다. 엄마도 음식은 한 솜씨 하시는데 엄마의 비법과 나의 비법은 역시 세대 차이를 느끼게 했다. 엄마는 일단 푸짐하면 되고 난 이왕 먹는 거 보기도 맛도 좋길 바라는 편이다.

엄마가 나랑 사시면서 만두며 송편을 만드실 때 천연 재료인 채소들을 가지고 색을 내는 법을 가르쳐드렸는데 한 날은 그 재료들도 없고 눈도 와서 나가기도 그렇고 해서 엄마가 수를 내셨다. 외출했다 들어왔는데 엄마가 만두를 만드시는데 아무리 봐도 천연색소 색이 아닌 거 같아서 물어보니 엄마도 비법이 있다면서 안 가르쳐 주셨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눈치 구 백단 엄마의 딸인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 엄마가 청소할 때 보셨던 것! 그래도 설마 하면서 넌지시 물어 봤더니 어떻게 알았냐고 하시면서 귀신 이란다~ 그러시면서 나보다 더 예쁜 색을 냈다며 자랑을 하시는데 헉~기절할 뻔 했다. 그건 바로 프린트기에 넣는 잉크다.

전에 오래 된 것을 쓰고 남아 처리 하려다 책상에 두었던 것인데 세상에나~ 절대 먹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설명을 드리고 아깝지만 사정없이 버렸던 웃지 못 할 사건이 생각난다. 아무래도 우리 엄마가 나를 음식에서는 경쟁상대로 보시는 거 같다. 푸하하

엄마가 냉장고에서 신 김장 김치를 꺼내 썰고 마트에서 사온 재료들과 만두피를 만들 준비를 했다. 매콤하고 시큼한 김치며 고소한 두부, 양념을 가미하지 않으면 아무 맛도 없는 당면, 아삭한 숙주 이모든 재료들을 잘게 다지고 돼지고기 간 것을 넣고 고소한 참기름과 소금 계란 등이 한데 버무려지면서 어느 것 하나 모나지 않고 잘 어우러진 것이 얼마 살진 않았지만 마치 인생에 희로애락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만두 피 반죽을 할 차례다. 반죽을 몇 가지 색으로 나눠하려니 반죽을 따로 하게 되었다. 그중 비트 보라색 반죽은 질었고 단 호박 반죽은 너무 되고 시금치 반죽이 제일 잘 되었다.

반죽대로 만두를 만들다보니 우리네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죽이 질면 아무리 만두 모양을 잘 만들려 해도 질척거리고 손에 붙어 모양이 예쁘지 않고 끓는 물에 데쳐내면 다 터져 버리거나 다른 것과 붙어 엉망이 되어 버린다. 진 반죽 그것은 눈물 즉 슬픔을 너무 많이 가지고 살면 자신의 삶도 우울해지고 곁에 있는 사람들까지 같이 우울해져 그 생활도 제 모양을 갖추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된 반죽은 만들다 보면 잘 붙지 않고 시간이 좀 지나면 사방이 갈라지고 터져 삶아 내기 전부터 터지고 역시나 삶아내면 거의 다 터져 버리고 먹을 때 식감도 퍽퍽하니 안 좋다. 고난 눈물 그런 것이 삶에서 부족하면 그 삶은 자신도 남도 감싸주지 못하는 인생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겪어 보지 않았기에 내가 부족한 것이 없기에 남이 얼마나 힘든지 아픈지 머리로만 눈으로만 알뿐 마음 내면에 울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반죽은 어떨까? 밀가루와 소금 그리고 물의 양도 잘 맞아야하고 반죽하는데 힘도 더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하지만 그만큼 수분과 탄력이 잘 조화 되어 만들 때 모양내기도 수월하고 만든 모양도 예뻐서 삶아내도 그 모양에서 별반 달라지지 않고 먹을 때 쫄깃해 맛있다.

우리에 장애로 인해 흘린 눈물들, 들려온 아픈 말들 서러움 몽땅 털어 넣고 잘 반죽해서 더 값진 것들이 아니 설령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더라도 물러지거나 갈라져 버렸던 삶이 아닌 모양 예쁜 삶으로 스스로가 반죽해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보니 마음은 우리 안에 있는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 몸을 감싸고 있는 만두 피 같다. 호호~

가만 보니 마음은 우리 안에 있는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 몸을 감싸고 있는 만두 피 같다. ⓒ한옥선

달콤한 속을 넣은 떡과 각양각색의 만두를 만들어 뜨끈한 만둣국 한 그릇씩 함께 해주신 여러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고명으로 담아 대접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너무 많은 분들이라 하하 마음만 보내드립니다.

한해 동안 에이블뉴스를 통해 겨울 칼바람 부는 찬 도시의 거리에서 쇠도 녹아내리게 할 한 여름 땡볕에서 외롭게 장애인들의 복지를 위해서 외치는 장애인 여러분들을 알게 되어 너무도 존경스럽고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사방으로 지역을 가리지 않고 몸소 뛰시면서 장애인들에 억울함과 불편함 그리고 기쁨과 슬픔을 알려주신 많은 분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일지는 모르나 누구나 하지는 않는 다는 것 정보를 올려주시느라 수고하신 여러분들 정말 멋진 분들이라 느꼈습니다. 또 짧든 길든 마음을 담아 써주신 댓글과 응원의 메일을 보내주신 분들께도 이 자리를 내어 감사드립니다.

에이블뉴스와 함께 해주시는 수많은 장애인 비장애인 여러분 여러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즐거운 2010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어느 곳에서나 건강하시고 모두 행복하세요. 더 나은 모습으로 더 좋은 글로 다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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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타인의 가스 폭발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선물 받고 다른 사람들보다 이름표 하나 더 가진 욕심 많은 사람. 장애인이 된 후 고통이라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불평이나 원망보다 감사라는 단어를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여자. 얼굴부터 온 몸에 58%의 중증 화상에 흉터들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용감하게 내놓고 다니는 강도가 만나면 도망 갈 무서운 여자. 오프라인 상에서 장애인들을 만난다는 것이 어려워 온라인상의 장애인 카페를 통해서 글을 올리면서부터 다른 장애인들과 소통을 하게 되었고 그들의 삶이 사소한 나의 글 하나에도 웃는 것이 좋아 글 쓰는 것이 취미가 된 행복한 여자입니다. 제가 내세울 학력은 없습니다. 다만 장애인으로 살아온 6년이 가장 소중한 배움에 시간이었고 그 기간 동안에 믿음과 감사와 사랑이 제게 큰 재산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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