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숲체험 장면. 무서워하면서도 고목에 깊히 손을 넣는 딸아이. ⓒ박인용

발달장애를 가진 열다섯 살 딸아이를 양육하면서 아이의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을 몇 차례 크게 바꾼 것 같다. 발달장애 자녀를 어떻게 양육하고 무엇을 도울 것인지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되었다. 우리 부부가 가진 양육관점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병원에서 아이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진단을 받게 된 두 돌 무렵에 딸아이는 독립적인 보행이 불가능했고 언어적인 표현이 거의 없었다. 보통 장애유아 부모들이 그렇듯이 소아신경과 의사의 진단과 권고에 따라 곧바로 아이의 조기치료 과정을 밟게 되었다. 유아기에 아이가 가진 장애를 조금이라도 완화시키고 발달을 촉진하기 위한 활동인데, 재활치료, 치료교육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개별적인 조기중재였다.

행복할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

아이의 장애를 처음 알게 된 후 갖게 된 가장 큰 고통은 과연 아이가 ‘엄마 아빠와 소통하면서 한 인간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비록 발달이 더디고 언어표현은 안되었지만 아이가 엄마 아빠에게 애착을 표현하며 감정을 나눌 수 있었다.

우리는 딸아이가 가족 안에서 인간으로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어획득과 지적 능력, 신변관리 능력에서 여전히 취약한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도움을 주면 행복하게 사는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무겁게 다가온 딸아이의 장애에 대한 비극적인 통념은 좀 더 가벼운 것으로, 충분히 긍정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두 돌 넘어서부터 아이의 발달을 위해 인지, 언어, 신변능력, 사회성, 대소근육 등 여러가지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고, 많은 비용을 들여 언어치료, 감각통합 활동, 인지교육 등 이른바 여러 재활치료 활동을 했던 기억이 난다. 발달장애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전무하던 시절에 아이의 장애로 인한 경제적이고 심리적 부담감이 컸지만, 그것은 우리가 함께 싸우고 국가사회를 변혁해서 이뤄야 할 또 다른 문제로 바라보게 해주었다. 약자중의 약자인 발달장애를 가진 딸아이로 인해서 궁극적인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네 돌이 지나 아빠, 엄마 순서로 첫 발화를 하면서 더 많은 희망을 갖게 되었다. 곧이어 독립 보행을 달성했고 달리기를 시도했다. 불가능할 것으로 여겼는데 아이의 두 발이 지면에서 도약하면서 달리는 모습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알아듣기 어려운 불완전한 발음이지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은유와 상징으로 다양하게 세상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부부는 장족의 발전을 느낀다.

그러나 아이의 발전이 미약하다고 느낄 때마다, 그것이 아이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을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믿었기에 조급함을 버릴 수 있었다. 오늘도 네발 자전거로 조금씩 움직여 나가는 아이의 모습으로 바라보며 더디지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배운다.

아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발전한다

우리 부부는 무엇이 아이의 발전을 가져왔을까 지금도 많은 대화를 하곤 하는데, 아동의 발달을 가져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지적 능력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가진 고유한 의지와 잠재능력이라고 확신한다. 자신감과 용기, 위험을 두려워 하지 않는 마음이 장애를 가졌건 아니건 아동을 발전시키는 궁극적인 힘이 아닐까?

두 번째는 자연과 사회 안에서 스스로 경험함으로써 발달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몸에 대한 경험, 가족이나 또래 안에서의 교감과 대화, 물질과 사물에 대한 경험이 아동을 발달하게 한다는 건 아동발달의 이론에 그치는 얘기가 아니었다. 재활치료 등 인위적인 프로그램과 전문가의 개입은 아동의 발달을 촉진하는 세 번째 요인이 될 것이다.

아동의 잠재능력에 대해 우리를 놀라게 했던 어릴 적 한 사례를 소개한다. 초등학교 1학년때 독립이동이 불가능해 늘 보호가 필요했고, 엄마와 같이 500미터 등하교가 전부였던 아이에게 어느날 적은 사고가 생겼다.

우리 가족은 1.5킬로미터 떨어진 북한산 자락에 있는 약수터에 자주 가곤했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린 어느날 저녁 딸아이가 잠든 사이에 차를 이용해 잠깐 다녀오기로 했다. 약수터에서 돌아와 보니 잠자던 딸아이가 사라져 있었다. 실종신고를 하고 동네 주변을 뒤졌으나 딸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두어시간 후 동네 파출소에서 연락이 와서 가보니 산자락에서 서성이는 상태로 주민에게 발견되었다고 했다. 우리가 놀란 것은 아이의 배낭에 약수물이 담긴 물병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보통 아이들도 상상하기 어려운 거리를 혼자 걷고 울퉁불퉁한 산길을 지나 아빠가 먼저 갔을 것으로 생각하고 배낭을 메고 험난한 약수터를 다녀온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지적 장애, 발달장애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가진 잠재 능력에 대해 놀라게 되었고, 아이의 자립능력에 대해 새롭게 사고하게 되었다. 이런 계기로 우리 부부는 대응능력이 취약한 발달장애 아동 부모들이 좀처럼 시도하지 않는 독립이동을 초등학교 5학년부터 시도하게 되었다. 교통신호 등에 대해 약간의 적응훈련을 거쳐 등하교를 독립해서 하도록 했다. 물론 동생과 같이 가기도 했고, 사거리에 있는 녹색어머니회원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교통신호에 맞춰 스스로 대로를 건너 독립해서 등하교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아이가 스쿨존에서 운전자의 부주의로 승용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난적도 있었지만, 발달장애 아이를 혼자 등하교시키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느냐 하는 주변 부모들의 우려를 뒤로 하고 우리 부부는 아이가 자립생활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그런 위험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아이가 구어적인 언어능력을 획득하게 된 과정도 되돌아보면 결코 실력있는 치료사에게 아이를 맡겨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부부는 가족 안에서의 교감과 일상 대화, 다양한 그림 동화가 아이의 언어발달을 비약적으로 촉진시켰다고 믿고 있다. 언어치료사인 아내의 말에 의하면 아이가 하나의 단어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수백 번, 수천 번 이야기하는 과정이 있었고, 집에서 아이에게 반복해서 읽어준 그림동화가 수 만 권에 이른다.

물론 유치원, 학교 등에서의 또래관계의 활성화도 아이의 언어발달을 촉진시켰을 것이다. 아무튼 아이가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를 스스로 시도하려는 아이 자신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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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중학생 딸을 둔 아버지 활동가입니다. 아이들 돌보고 살림도 챙기는 주부이기도 합니다. 2003년 부모활동가로서 장애인교육권연대,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를 조직하였고, 장애인활동가들과 함께 진보정당 장애인위원회를 건설하는데 참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애어린이 희망찾기>, 위드뉴스 <새로운 부모운동을 위한 전국순회> 라는 연재 글을 썼고, 2007년 한신대에서 <한국사회 장애인 부모운동 연구> 이라는 논문을 썼습니다. 현재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 정책국장과 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조례운동본부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부모운동과 가족지원,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해방에 관심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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