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도 투표한다!

20살이 넘은 이후 내게 많은 것들이 부여되었다. 가족과 다투어야만 했지만 외출도 잦아지기도 하고 쓴 술도 마실 수 있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투표권이 생겼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립 전에는 그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할 수가 없었다. 5분을 소비하기 위해 한 시간을 준비해서…. 그것도 누군가 낑낑거리며 계단을 업고 내려오기엔 무리였다, 그리고 내가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 가족에겐 관심거리도 못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독립하고 내게 주어진 선택권 중에 가장 중요한 권리는 투표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국가정책에 불만이 많은 사람인데 그동안은 정치가들의 영향력보다 사회 전반이 바뀌어야 정치도 바뀐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법과 정책은 가진 자들에게 유일하고 가진 자들은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으니까…. 그런데 요즘 들어 한 사람에 정치권력이 얼마나 무서운 일을 초래하는지 온몸으로 느끼고 있어서 투표의 중요성을 스스로 되새김 하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내게 투표를 하러 가는 과정은 매우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겠지만 (역시) 투표하는 그 5분 소비하려고 나는 7시간동안 멍하니 전동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한다. 부족한 활동보조 시간 때문에 아침에 외출을 위한 활동보조를 받고 활동보조인은 갈 길 가시고 투표하고 돌아오면 멍 때리며 저녁 활동보조인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허리와 목 상태가 안 좋은 내게 아무 일 없이 전동휠체어에 앉아 눕지도 서지도 못 하는 일은 고통 그 자체이다. 따라서 투표하는 날인 쉬는 날이기도 하는 날에 투표를 하러 가는 것은 누가 뭐래도 내겐 투쟁이다. 그럼에도 나는 투표를 한다.

2. 겉치레만 요란한 장애인 유권자의 향한 배려

오늘도 투표를 하고 왔다. 며칠 전부터 투표 꼭 할 것이란 결심을 하면서 활동보조인과도 선거 얘기를 화제로 삼고 있었다. 어느 날 활동보조인이 선거 때 장애인들을 투표소까지 차량으로 이동시켜 준다는 현수막을 보았다며 신청하자고 했다. 차량으로 이동하면 빨리 도착할 수도 있고 투표를 하고나서 집으로 온 다음에 전동휠체어에서 내려주고 가기로 계획을 잡았다. 그리고 활동보조인은 다음 이용자한테 가야 돼서 계획한 대로 진행이 됐어야 했다. 선거 이틀 전에 차량 신청을 했고 전화를 주기로 하여 다음날 오후까지 기다렸으나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결국 오늘 아침에 전화를 했고 약속시간을 잡아서 다시 전화를 주기로 했는데 역시 오지 않았다.

투표장소가 우리 집에서 얼마나 걸리지 모르는 상태인지라 차량 지원이 절실했다.(장애인 콜택시가 있지만 이 것 역시 언제 올지 모른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전화를 했고, 약속시간을 잡았다. 초스피드로 외출 준비를 하여 헐레벌떡 약속장소로 나갔다. 그러나 차량은 보이지 않았고, 다시 전화를 했더니 출발했다고 기다리라고 했다. 그런데 몇 십 분이 지나도록 차량은 오지 않아서 전화를 해서 따졌더니 금방 도착 한다고 하였다. 활동보조인은 다른 이용자에게 가야 하는데 차량은 오지 않으니 속만 탔다. 그리고 몇 분 후 차량이 왔다. 하지만! 그 차량엔 전동휠체어가 탈 수가 없는 구조였다.

분명히 차량 신청할 때 전동휠체어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는데 말이다. 얼마나 하찮게 생각했으면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걸까란 생각을 하니 울컥하는 심정이 들었다. 차량을 기다리며 ‘선거 날 장애인 차량 이동지원’이란 큰 문구가 적힌 현수막은 가장 눈에 띄게 걸어 놓은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그 현수막을 째려보며 차량을 돌려보내고 활동보조인과 나는 투표소의 향해 달리기를 해야만 했다. 길도 몰라서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가며 땡볕에 활동보조인은 나와 함께 달렸다. 마치 활동보조인은 달리기 선수가 되고 나는 트레이너가 된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투표소는 접근은 순조로웠으나 투표를 하는 과정에서 중증장애를 가진 유권자로서의 불편함을 또 한 번 느껴야 했었다. 도장 찍는 공간이 너무 좁아서 내가 찍는 모습이 환히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또 느낀 것인데 손에 장애가 심하면 투표를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도장을 찍는 칸도 좁고 종이를 접는 것도 쉽지 않다. 투표율이 저조하다며 이런 저런 광고만 하지 말고 다양한 유권자들이 투표를 참여할 수 있도록 고민이나 했으면 좋겠다. 특히 곳곳에 선거 광고지는 쉽게 볼 수 있지만 시·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얼마만큼 정보수집이 가능할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이처럼 장애유권자들이 자유롭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바꿔야 할 것들이 많은 것 같다. 장애유형별로도 투표공간과 도구들이 개발해서 장애유권자들에 투표율이 높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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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 나이는 서른 살에 접어들었습니다. 가족들 곁을 떠나서 혼자 독립을 시작한지 6년째 되어갑니다. 남들은 저한데 ‘너 참 까칠하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그럼 저는 ‘이 까칠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까칠해질 수밖에 없다고!’라고 답합니다. 이 칼럼을 통해 중증장애여성으로 까칠하게 살아오면서 겪었던 경험과 삶의 대한 고민을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앞으로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과 함께 공감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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