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붉은 화상 흉터가 이 붉은 꽃처럼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 사랑은 마음도, 생각도, 보는 눈까지도 아름답게 만들어 버리나 보다. ⓒ한옥선

내가 뭐라고 뭐 그리 대단한 여자라고 이 사람을 이리 애타게 하지. 그래 한 번 다시 만나서 내가 어떤 여자인지 보여주어야지 그래도 괜찮다면 그래도 날 사랑할 수 있다면, 정말 내 외모가 아닌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을 알아준다면 그때 내 마음을 열어도 늦지 않겠지 하며 더 길어질 이야기를 서둘러 마쳤다.

갑작스런 상황이 벌어지자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거미줄을 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내 머리 속이 터져버리겠다. 그래 가자 가서 만나자 만나서 내 본 모습을 보여줘야지 아니든 기든 간에 가자 난 기대도 설렘도 아닌 내 머리 속을 정리하고자 강원도로 향하기로 결심했다.

가르쳐준 주소를 들고 버스노선을 검색해서 인천 터미널로 향하는데 내가 나선 혼자만의 겁 없는 나들이가 드디어 두 번째다. 공교롭게도 이 사람 때문에 첫 홀로 나들이를 했고 두 번째도 이 사람 때문이다. 모든 것 다 떠나서 두고두고 내가 고마워해야 할 사람이다.

그 사람은 내가 그냥 여행 삼아 답답한 집안을 벗어나 오는 줄 알고 있고 난 내 보여주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가는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계속 어디쯤 왔냐고 중간 중간 문자가 온다. 아 참 멀다~ 강원도 철원! TV광고 속 쌀인가 뭔가 나올 때 본 것이 다인데 그 곳엘 가다니 참 내가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는 일들의 연속이다.

가는 내내 그냥 우리 시골 이모네 가는 듯 편안하게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그저 넋을 놓고 있으려니 거의 다 왔다고 기사 아저씨가 그런다. 문자를 보니 다 와가면 마중을 나온다고 하길래 문자를 서둘러 하고 도착해 차에서 내리니 맞은편에서 산악 오토바이를 타고 앉아 어린아이처럼 해 맑게 웃으면서 손짓을 한다. 아 저 얼굴이 얼마 후면 일그러질 텐데 어쩌나 마음속에 잔뜩 비구름 안고 집에 연세 많은 어머니가 같이 살고 계시기에 어머니 드릴 거 오토바이 앞에 바구니에 놓고 가니 먼 길 오느라고 고생 많았다고 내 손을 꼭 잡아 준다. 이렇게 반가워하는 사람에게 나의 감춰진 모습을 보여 줘야하나 갑자기 더 복잡해진다.

오토바이 뒤에 타고 집으로 향하는데 무섭다. 처음 오토바이 뒤에 타보는데 금방이라도 떨어질 거 같고 붙잡아야하는데 팔이 안 펴지니 엉거주춤한 자세에 아~엉덩이는 또 왜 이렇게 덜컹거려 아픈지 이러다가 떨어지겠다 싶은 찰라 왼손을 뒤로해서 내 손을 붙잡아 당겨준다. 등 뒤로 바짝 당겨지고 보니 조금은 편하다. 헉 근데 등이 어찌나 넓던지 하하 거짓말 쪼매 보태서 진짜 운동장만하다. 이렇게 날 배려해주는 작은 마음들이 하나씩 보이는 게 아~ 슬슬 예사롭지가 않다.

집으로 가는 내내 오토바이 거울로 뒤에 앉은 날 쳐다보며 싱글벙글 거리는 이 사람 꼭 소풍가는 아이 얼굴 같다. 집에 도착하니 그 분 어머니가 반갑게 나오셔서 맞아주시고 들어가서 잠시 이야기를 하고 저녁이 되어 저녁 식사를 했다. 내 손이 불편하여 숟가락질도 제대로 못하다 보니 어디 가서 밥 먹는 게 좀 그래서 반찬은 먹는 둥 마는 둥 밥만 퍼 먹는데 그런 날 보고 이 사람이 반찬을 집어 내 숟가락 위에 얼른 올려주는 게 아닌 가 어머니 보는데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한편 그거 봐요 나 이렇게 살아요. 살아보면 불편한 게 얼마나 많을지 알겠죠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이것도 먹어보라고 주신다. 순간 감사하고 미안했다.

어머니는 내가 어떤 자격으로 그곳에 간지 모르셨고 그냥 카페 분들이 가끔씩 놀러가니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인줄 만 알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치우려고 하니 그냥 두라고 하신다. 그 손으로 뭘 하냐고 또 다시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고 그 분에게 더 자세히 나의 생활을 보여주니 차라리 잘되었다란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밥값은 해야지 싶어서 식탁을 닦고 차를 마시고 밤이 되었다. 어머니는 코를 심하게 고셔서 같이 자면 잠 못 잔다고 거실에 자리를 펴주시는데 나는 다치고 바닥에 앉아 보질 못해서 거기서 잘 수가 없어 소파에 이불을 펴고 앉았다.

잠시 이야기를 하자고해서 그 사람 방에 들어가 이런저런 오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는 내 모습에 못 본 부분이 있다고 하고는 뒤 돌아서 셔츠를 풀었다. 그때 그 사람 뭔 생각을 했을까 아니 이 여자가 왜 이래 하면서 뭔 상상을…. 하하 꿈도 야무지셔.

아 물론 나시 티를 입고 있었지만 내려가는 셔츠 위로 붉고 우둘투둘한 나의 가려진 화상부위들이 내 보여지기 시작했고 난 그 사람에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뒤 돌은 채 눈을 감고 숨죽이고 있는데 그 순간 그 사람에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보통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면 ‘으헉! 아이구!’가 보통 나오는 소리인데 그 사람은,

“혼자서 얼마나 많이 아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요. 내게 와줘서 고마워요.”

단단하게 맘먹고 왔었는데 그 순간 와장창 무너지면서 내 가슴에 눈물이 폭우가 되어 내려버렸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2004년 9월 타인의 가스 폭발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선물 받고 다른 사람들보다 이름표 하나 더 가진 욕심 많은 사람. 장애인이 된 후 고통이라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불평이나 원망보다 감사라는 단어를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여자. 얼굴부터 온 몸에 58%의 중증 화상에 흉터들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용감하게 내놓고 다니는 강도가 만나면 도망 갈 무서운 여자. 오프라인 상에서 장애인들을 만난다는 것이 어려워 온라인상의 장애인 카페를 통해서 글을 올리면서부터 다른 장애인들과 소통을 하게 되었고 그들의 삶이 사소한 나의 글 하나에도 웃는 것이 좋아 글 쓰는 것이 취미가 된 행복한 여자입니다. 제가 내세울 학력은 없습니다. 다만 장애인으로 살아온 6년이 가장 소중한 배움에 시간이었고 그 기간 동안에 믿음과 감사와 사랑이 제게 큰 재산이 되었습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