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옥선씨 마음 하나면 됩니다. 다른 건 상관없습니다.”

어머 나 같이 철딱서니 없는 사람이 여기도 있었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었지 근데 살아보니 내가 틀렸다고 하더군. 마음은 잠시고 살아가는데 몸이 먼저라고 몸이 편해야 사는 것도 좋은 거라고 그런 바보 같은 소리 집어치우라고 내가 지금 그 고생하는 것도 다 그 사랑인지 마음인지만 보고 살아서 그런 거라고….

정말 내가 틀린 생각을 하고 살았던 것일까? 그럼 이 사람에게도 지금 생각을 바꾸고 조건을 보고 사람을 만나라고 해야 하나? 그건 아닌데 그건 정말 아닌데 나보고 아는 장애인 동생이 골동품이니 천연기념물이니 그러던데 아무래도 그건 내가 아니라 이 사람에게 어울리는 말 같다. 그래도 내 마음은 ‘안돼’라고 외치고 있다.

내가 주부로서 살림을 해보아서 얼마나 여자의 손이 집안에 많이 필요한지 알기에 난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그때로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고작 내 밥 먹는 거 정도고 다른 건 다 엄마가 해주셨기에 그런 내가 한 집에 집안일을 해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죄송하지만 상관있어요. 살다보면 제가 할 일이 더 많은데 그렇게 못하거든요. 그리고 왜 그렇게 힘든 저를 만나려고 그러세요. 어머니나 식구들 모두 반대하실 거예요. 그건 안 봐도 뻔해요. 다른 좋은 분 저보다 더 잘해줄 분 만나세요. 어려운 길 가지 마시고요.”

“그럼 제가 할게요. 제 손은 멀쩡하거든요. 제 손이 옥선씨 손이 되어주면 되잖아요. 그리고 이 나이에 다른 가족들이 무슨 소용이에요. 다 출가했는데 제가 좋다면 다 괜찮다고 할 거에요.”

“네? 아닐걸요. 그건 가족이면 당연한 반응일거에요. 좋은 사람을 만나길 바라거든요. 저라도 그럴 거예요.”

“나 같은 사람에게 와주는 것만도 고맙지 누가 뭐래요. 내가 뭐 잘났다고요. 나 보다 옥선 씨가 걸으니 더 낫죠. 대신 그럼 옥선 씨 발이 내 발이 되어주면 되잖아요.”

아니 이 사람 도대체 나의 뭘 보고 콩깍지를 쓴 겨 참 내? 아무리 봐도 잘난 거 하나 없고 예쁜 구석도 눈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이는구만 말야 그 동네 여자들이 다 어디로 이민 갔나? 우째 이런 일이 참 오래 살고 볼일이다. 누군가 나에 이런 모습을 좋아하다니 날 사랑하게 되었다니 천사거나 아님 사기꾼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런데 말야 내게 사기 칠 게 뭐 있어? 가진 것도 없구만. 그럼 천사라구? 그래서 날보고 첨에 천사라고 했나 하긴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고 사는대로 다른 사람도 자기처럼 본다던데 정말 그런 건가.

참 우습지? 다른 장애인들에 사랑은 너무도 예뻐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는데 내게 이런 일이 생기니 왜 믿어지지가 않지 사랑엔 국경도 나이도 없다고 생각하던 내가 장애인이 되고 보니 그 벽 앞에선 왜 그 생각을 초월하지 못하고 주춤 거리고 초라해지는지 강 건너 구경하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 그런가? 그만큼 장애란 벽이 나에 생각의 키도 조금씩 돌려 버리고 있었다. 참 무서운 녀석이다 장애란 녀석….

다른 건 하나도 겁이 안 나는데 왜 다가오는 이 사람에 마음은 겁이 나는 것일까? 남들이 보면 여자인지 남자인지 성별도 나이도 분간 할 수 없는 상태의 나로 그렇게 몇 년을 성별도 없이 살았는데 엄마조차도 날 여자이기 보다 그냥 장애인 자식으로만 여겨 누가 많이 다쳤냐고 물으면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윗옷을 휙 거둬 등과 옆구리, 어깨를 마구 보여주어 나의 여자로서의 존재는 완전히 잃어버렸었다. 그런 날 지금 이 사람이 여자로 보고 있다.

사람들의 그 따가운 시선과 수근거림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용감하게 지내던 내가 이 사람 앞에서 도망가고 싶어지다니 도대체 왜 숨어 버리고 싶어지는 거야? 그래 나도 여자였지. 아니 지금도 여자이지 나도 잊어먹고 산 시간을 이 사람이 돌려주는 바람에 난 그만 어느새 한 남자 앞에 한 여자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난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어쩌자고 날 여자로 돌려놓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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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타인의 가스 폭발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선물 받고 다른 사람들보다 이름표 하나 더 가진 욕심 많은 사람. 장애인이 된 후 고통이라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불평이나 원망보다 감사라는 단어를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여자. 얼굴부터 온 몸에 58%의 중증 화상에 흉터들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용감하게 내놓고 다니는 강도가 만나면 도망 갈 무서운 여자. 오프라인 상에서 장애인들을 만난다는 것이 어려워 온라인상의 장애인 카페를 통해서 글을 올리면서부터 다른 장애인들과 소통을 하게 되었고 그들의 삶이 사소한 나의 글 하나에도 웃는 것이 좋아 글 쓰는 것이 취미가 된 행복한 여자입니다. 제가 내세울 학력은 없습니다. 다만 장애인으로 살아온 6년이 가장 소중한 배움에 시간이었고 그 기간 동안에 믿음과 감사와 사랑이 제게 큰 재산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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