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하고 1~2년은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토록 바라던 이동의 자유로움을 얻었기에 더는 외출한다고 했을 때 눈치를 보거나 싸울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만으로 나는 너무 행복했다. 활동보조인만 있으면 언제라도 외출준비를 하면 되고, 짐처럼 업어서 계단을 내려오거나 올라가지 않아도 되며 집에 업고 올라갈 사람이 없어서 몇 시간 동안 동네를 서성거리는 일을 이제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식구들이 많은 우리 집은 방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는데 방 차지에서 항상 서열 순서로 꼴찌인 나는 한 번도 방을 가져 본적이 없다. 떠돌이처럼 하루는 춥고 좁은 거실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하고 또 하루는 부모님과 함께 자야만 했다. 그때 내 방과 책상을 가져 보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일 정도로 정말 절실했었다. 그런 나에게 비싸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직접 고른 가구와 물건들로 채워진 독립된 공간이 생겼다는 것은 내생에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이 조금 더 이어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1~2년은 독립을 유지하기 바빴고, 가족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나에 힘듦을 제대로 보기 어려웠다. 독립을 한 지 3년이 되던 해부터 독립에 대한 환상이 견디기 어려운 일상이 되어가면서 또 다른 괴로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괴로움이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제한적인 언어와 글로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는, 그렇지만 표면적으로나마 말할 수 있는 것은 불안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혼자 있으면서 겪어야 했던 위험한 상황들은 문득 문득 떠올리며 불안하고, 간혹 책임성 없는 활동보조인이 걸릴 때도 있어서 약속을 어길까봐 불안하다.

물론 독립 6년째인 지금은 그 불안함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요령이 생겼다. 활동보조인은 언제든 약속을 어길 수도 있고 위험한 상황은 어차피 스스로 제어가 안 된다.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스스로 통제 혹은 방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놓아버리면서 불안한 내 삶을 인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인정하려고 해도 인정이 안 되는 것도 있다. 그것은 건강문제이다. 어릴 적부터 잔병치레가 많은 나는 한 번 아프면 죽을 만큼 아파서 옆에 간호할 사람이 꼭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픈 것이 싫다. 안 그래도 활동보조인이 안 오면 주변사람한데 부탁을 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부담스러워 하는 나다. 가족에게 더는 부담주기 싫어서 독립하였는데 독립을 하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다. 그래서 조금만 아파도 병원을 달려간다. 그런 나에게 가끔 사람들은 보신주의자라고 놀리기도 한다.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간혹 그 말에 울컥할 때도 있다, 내가 정말 보신주의자였다면 이렇게 나와 살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솔직히 요즘 몇 년 전부터 점점 나빠지는 건강 때문에 걱정이 많다. 비수급자라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있지만 보험 혜택을 제외하고도 엄청난 의료비는 한 숨만 나오곤 한다. 중증장애여성인 내가 내 삶을 책임진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사실 이렇게 힘든 독립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요즘 자주 든다. 그럼에도 내가 독립을 놓지 못 하는 것은 독립은 이제 내 삶이기 때문이다. 나는 중증장애인 독립이 비장애인 삶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닌, 좀 더 대안적이고 상상력이 있는 제도와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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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 나이는 서른 살에 접어들었습니다. 가족들 곁을 떠나서 혼자 독립을 시작한지 6년째 되어갑니다. 남들은 저한데 ‘너 참 까칠하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그럼 저는 ‘이 까칠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까칠해질 수밖에 없다고!’라고 답합니다. 이 칼럼을 통해 중증장애여성으로 까칠하게 살아오면서 겪었던 경험과 삶의 대한 고민을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앞으로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과 함께 공감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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