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기 바이러스 전염병의 일종인 신종 인플루엔자(신종플루) 발생이 하루 수천명에 육박하는 등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사망자가 거의 없었던 지난 여름까지는 주변에서 환자가 발생했을 때는 웃고 넘기는 가십거리에 불과했었다. 이제 집단발병과 사망자가 속출하자 가족들에게 전염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확진을 받은 경우 잘 치료받을 수 있을까 불안해 한다.

발달장애인 가족들은 좀 더 불안한 마음일 것이다. 아무래도 장애아동 중에는 어떤 질환을 가졌거나 신경계 약물치료를 하는 고위험군 아동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사망사례 48건 중에서 고위험군 장애아동 사망 사례가 3~4건 정도 있었고 장애학생이 다니는 특수학교 등에서 신종 플루 환자가 급증해 휴교하는 학교들이 늘어나면서 막연했던 불안감이 예방 접종과 치료약 투약 기회 등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바이러스에 의한 유행 전염병이 되어버린 지금, 몇 명의 환자가 발생했는지는 큰 의미가 없어졌고 잘 대처하는게 중요해졌다. 하지만 신종플루를 둘러싸고 사람들과 계층 간에 미묘한 이해관계가 나타나고 있는게 아닌가 마음이 심란해진다. 질병관리본부를 통해 국가가 질병을 관리하고 백신과 치료제 투약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하나, 꽤 큰 비용이 들어가는 백신을 돈 없는 사람들도 공급받을 수 있는지, 백신을 공급받을 수 있는 고위험군 중에서도 한정된 백신을 누가 먼저 받는냐 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치명율이 0.03%로 계절 인플루엔자 수준으로 낮고 48명 사망자중 41명이 고위험군이므로 너무 불안해 하지 말라고 하면서 지난 11월 3일 ‘심각단계’로 격상하고 집단 발병이 늘어나고 있는 학교에 대한 예방접종을 조기에 마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고위험군 비율이 높은 특수학교나 특수학급 재학생, 사회복지시설 장애아동들에 대한 우선 예방 접종을 왜 미뤄왔는지 발달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로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이의 건강을 염려하는 학부모라면 누구나 아이가 나니는 학교에서 얼마나 발병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최근 학교 집단발병이 늘어나고 있으므로 정확한 발병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아이의 감염가능성과 건강상태를 체크하여 관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학교에 감염자가 많은 경우, 면역력이 떨어진 아이를 위해 등교를 보류한다든지, 체온이나 몸 상태 등에 주의하여 전염 가능성을 보다 기민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학부모들 사이에는 학교가 학생들의 건강 보다는 학교이미지를 고려해 그런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주변 어떤 학교는 감염자가 얼마인지 알리지도 않다가 갑자기 휴교에 들어갔는데, 감염자가 매우 많았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어떤 특수학교는 과반수 이상이 감염인데도 학교이미지를 고려해 휴교를 보류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아무튼 신종플루를 통해서 학교가 학생들의 건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면을 보여주었는데, 불안해 하는 학부모들에게 기본적인 신뢰감을 보여주지 못한 게 아닌가.

지적장애 1급인 딸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에서는 고위험군 학생이든 일반 학생이든 몇 달 동안 교문 앞에서 체온을 재는 게 전부였다. 20명이 넘는 특수학급 장애학생들이나 질환 경력이 있는 학생들 가운데 고위험군 학생이 얼마인지 파악하고, 그 학생들에게 우선 예방 접종을 할 것인지를 의논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학교 교실에서 매일 체온을 재다가 지금은 부모가 체온을 재서 확인 서명하여 아이 편으로 학교에 보내라고 한다. 체온이 이상이면 즉시 병원에 갈 일을 제쳐두고, 학교는 발병 책임에 대해서만 급급한 것이다. 학교에서는 그저 아이들 체온 재느라 시간만 낭비해온 게 아닌가 지적하고 싶다.

우리 가족 중에서는 신종플루에 대해 발달장애를 가진 딸아이에게 좀더 신경쓰는 편이지만, 고위험군도 아니고 약물치료를 받는 것도 없이 건강한 편이므로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단, 3년전 아이가 간질 발작을 했을 때, 무조건 신경계 약물치료를 해야 한다는 유명 대학병원 의사의 처방 대신에 우리 부부는 적절한 요법을 병행하며 아이의 건강관리에 좀 더 노력하였는데 다행히 재발하지 않아 고위험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이들이 건강한 편이므로 아직 예방 접종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대신 아이들 건강 관리에 좀 더 신경쓰게 된다. 건강 관리 라고 해 봤자, 많이 놀아 주고 잠을 충분히 재우고 잘 챙겨 먹이는 정도다. 장애아동을 교육하고 그 가족을 지원하는 게 직업인 우리 부부는 발달장애인에게 가장 중요한 게 건강이요 그 다음이 정서적 안정이라고 생각한다.

아내는 지난 주말에 이어 꽤 좋은 처방을 내놓는다.

“신종플루도 유행하니 오늘도 애들 고기나 구어 먹이자!”

발달장애 중학생 딸을 둔 아버지 활동가입니다. 아이들 돌보고 살림도 챙기는 주부이기도 합니다. 2003년 부모활동가로서 장애인교육권연대,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를 조직하였고, 장애인활동가들과 함께 진보정당 장애인위원회를 건설하는데 참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애어린이 희망찾기>, 위드뉴스 <새로운 부모운동을 위한 전국순회> 라는 연재 글을 썼고, 2007년 한신대에서 <한국사회 장애인 부모운동 연구> 이라는 논문을 썼습니다. 현재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 정책국장과 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조례운동본부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부모운동과 가족지원,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해방에 관심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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