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재의 가을 ⓒ정재은

민초들의 땀과 눈물, 길손들의 애환과 사연이 서려있는 문경새재 옛길은 이제 등산로, 오솔길, 산책길 등으로 남아 있으며 추억과 낭만으로 가득한 길로 단장하고 현세의 우리에겐 무겁고 조급한 마음은 버리고 공허하게 마음의 여유를 찾아오라며 손짓한다.

문경새재는 우리나라의 큰 산줄기인 백두대간(白頭大幹)이 태백산, 소백산을 거쳐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조선시대부터 영남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가장 큰길(영남대로)이었다.

과거보러 가던 선비와 괴나리봇짐을 멘 부보상, 세곡(稅穀)과 궁중 진상품 등 영남의 사람과 산물이 새재 길을 통해 충주의 남한강 뱃길과 연결되어 서울 한강 나루터에 닿았다. 더구나 6.25 전쟁 시에는 남한사람들의 피난길로서도 그 애환의 사연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날 문경새재라는 고갯길 자체를 선인들의 숨결과 자취가 서린 문화유적이자 역사적 현장이라 일컫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1920년대에 옛 새재 남서쪽으로 이화령이 뚫리면서 길의 구실을 잃고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조령산의 가을 산새. ⓒ정재은

문경새재 초입의 상가단지는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좀 번잡하고 어수선하다. 우선 매표소 뒤의 장애인용 화장실을 이용한다. 상가단지를 지나 제 1관문 앞에 이르면 여태껏 봐온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너른 들녘에 튼실하게 쌓인 성벽과 위풍당당한 관문 그 뒤로 병풍을 두른 듯한 백두대간의 산자락들이 눈앞에 우뚝 서 있다.

등산로라기보다는 산책로에 가까운 길은 포장이 잘되어 있고 매우 완만하다. ⓒ정재은

문 중 제 1관문인 주흘관에서 제 3관문인 조령관까지의 거리는 약 6.5㎞. 2~3시간은 족히 걸어야 되는 길이지만, 맑은 물소리와 아름다운 새소리를 벗삼아 걷노라면 그 시간이 오히려 아쉽게 느껴진다.

길은 혼자서 외로운 듯 골짜기 냇물과 나란히 함께 하고 그래서인지 길을 걸어도 외롭지가 않다. 길가에 꽃처럼 피어있는 붉은 단풍과 은행나무 가로수는 더욱더 가을의 정취를 풍성하게 한다. 백두대간의 줄기어서 그런지 산의 위풍도 만만치 않게 늠름한데 함께하는 개울과 단풍은 한결 잔잔하면서도 화려하다.

드라마 왕건의 쵤영지. ⓒ정재은

제1관문인 주흘관을 지나자마자 길 왼편의 용사골에는 '왕건', '무인시대' 등 TV 사극 촬영장이 설치돼 있다. 2만여 평 부지에 고려와 백제 궁궐을 비롯한 기와집 초가 등 90여 채의 건물이 빼곡히 들어앉아 있어 눈요기의 재미와 역사고찰의 의미도 함께 지닌다.

제2관문인 조곡관. ⓒ정재은

길게 이어지는 천연림 길을 따라 약 500여m를 걸으면 제 2관문인 조곡관이 나온다. 주변 산세를 보면 천연의 요새임을 알 수 있다. 조곡관 주변은 우뚝한 기암괴석과 늠름한 장송(長松), 그리고 맑은 계곡물이 한데 어우러진 풍광을 자랑한다. 그야말로 선경(仙境)이 따로 없다. 게다가 조곡관을 지나면 숲은 더욱 깊어지고 인적은 뜸해진다.

새재를 찾은 관광객들은 대부분 조곡관까지만 왔다가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조곡관(2관문)에서 조령관(3관문)으로 이어지는 길은 문경새재의 옛 길 중에서도 가장 호젓하고 옛 정취가 그윽한 구간이다.

가을 햇살은 산넘어 그윽하고 단품은 화려하기 그지 없다. ⓒ정재은

가을 햇살은 산넘어 그윽하고 단품은 화려하기 그지 없다. ⓒ정재은

조곡관에서 조령관까지는 오르막 길이다. 이전보다 조금 더 가파르지만 숨가쁠 정도는 아니다. 3.5km. 새재길 사이사이에 만들어놓은 금의환향길, 장원급제길 등의 숲속 샛길은 나그네의 정취를 더해준다. 마침내 시오리 오솔길 종점인 조령관을 나서면 충청도 땅이다. 꿈결인 듯,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 오붓하고 예스러운 숲길은 여기서 끝난다.

가을 햇살은 산넘어 그윽하고 단품은 화려하기 그지 없다. ⓒ정재은

문경새재 산길을 추천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경치도 아름답지마는 잘 단장된 흙길과 완만한 코스다. 물론 휠체어의 이동도 가능할 정도이다. 고운 흙길을 따라 걸으면 우거진 숲의 향기와 산자락의 고요가 길동무가 되어준다. 더구나 산길을 따라 이어지는 아름다운 단풍과 은행잎의 노오란 영상(映像)은 가을 산행의 기쁨을 한층 높게 한다.

옛길의 역사와 나들이의 낭만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문경새재 옛길이다. 세 개의 관문엔 역사가 숨쉬고…우리네의 인생사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었다. 현대의 문명생활이 그곳에 훤한 터널과 도로를 만든다 하여도 결코 끊길 수 없는 새재의 길은 우리의 역사와 인생사를 대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가는길=버스 동서울터미널 → 문경(2시간 30분), 대구북부터미널 → 문경(2시간), 현지교통 : 문경읍에서 새재까지 시내버스 1일 12회 운행(10분 소요) 승용차 서울 중부고속도로 → 호법분기점 영동고속도로 → 여주분기점 → 중부내륙고속도로 → 충주IC → 국도3번 → 수안보 → 연풍 → 이화령터널 → 문경새재도립공원.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경기지사에 재직 중이다. 틈틈이 다녀오는 여행을 통해 공단 월간지인 장애인과 일터에 ‘함께 떠나는 여행’ 코너를 7년여 동안 연재해 왔다. 여행은 그 자체를 즐기는 아름답고 역동적인 심리활동이다. 여행을 통해서 아름답고 새로운 것들을 만난다는 설렘과 우리네 산하의 아름다움을 접하는 기쁨을 갖는다. 특히 자연은 심미적(審美的) 효과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정화시켜 주는 심미적(心美的) 혜택을 주고 있다. 덕분에 난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장애라는 것을 잠시 접고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받아온 자연의 많은 혜택과 우리네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함께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