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봄 그리고 느끼기
목록
교황청을 향한 교황의 돌직구, 한국교회도 새겨들어야
카테고리 : 듣봄 그리고 느끼기 | 조회수 : 19682014-12-28 오전 10:11:00
오마이뉴스 메인 가기


교회 개혁을 향한 교황의 돌직구

교황청을 향한 질타, 한국교회도 새겨들어야


14.12.27

정중규(mugeoul)            



기사 관련 사진
▲ 교황이 질타한 교황청의 15가지 질병 지난 12월 22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 최고성직자 기구 쿠리아와의 연례모임에서 관료주의를 질타하고 있다.
ⓒ JTBC 뉴스화면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이 왜 로마로 불리움 받았는지를 다시금 각인시켰다. 지난 12월 22일 교황청 최고위 성직자 기구 쿠리아(curia) 소속 추기경, 주교, 원로 사제들과의 크리스마스를 앞둔 연례모임에서 '개혁의 연두교서' 방식의 연설을 통해서다.

교황은 '영적 치매' '실존적 정신분열' '위선적인 이중생활' '권력과 욕망의 화신' '뒷담화의 저격수' '장례식에 간 듯한 얼굴' 등의 신랄한 표현으로 그들을 '15가지 고질병'에 걸린 중증환자라고 준엄하게 질타했다. 마치 2천 년 전 그 시대의 종교지도자들을 '회칠한 무덤'으로 꾸짖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마태복음 23장)을 다시 듣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장광설도 아니었다. 30분 정도의 그리 길지 않는 연설 시간에 교황은 지금 교회가 고쳐야할 것들을 차분하게 짚어나갔다.

개혁에 저항하는 보수파들의 조직적 저항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어느 개혁이나 걸림돌은 늘 완고한 기득권 세력의 조직적 저항이다. 그들을 설득하고 개혁의 길로 끌어내는 것이 모든 개혁의 관건이다. 이혼자와 동성애자 같은 교회법적 혼인의 테두리 밖에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수용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보수파에 의해 거부당한 지난 주교시노드에서 드러났듯이 개혁을 못마땅하게 보는 그들은 교황의 생물학적 한계까지 공공연히 언급하면서 복지부동의 어정쩡한 자세로 시늉만 내며 버티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렇잖아도 급변침이 어려운 보수적인 가톨릭교회, 개혁을 위한 궤도 수정이 그리 용이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티칸시국이야 1929년 라테란 조약에 의해 세워졌지만, 교황령 역사까지 치면 천년 넘게 굳어온 제도 권력이 그리 쉽게 움직일리 만무하다. 현대교회에 훈풍이 됐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폐회된지도 어느덧 반세기가 지났고, 그 후반기 26년은 그마저 보수적 교황시대였으니, 개혁에 대한 시큰둥하고 냉랭한 반응은 당연할 것이었다. 이번에 지적된 질병 가운데, 관료주의, 가십의 테러리즘, 이너서클 폐단, 로마중심주의 등은 그런 시대의 낳은 적폐들이다. 교황이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과격한 교황청 구조 개혁은 반드시 그보다 더 혹독한 관련 인사들의 정신적 개혁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다. 성탄절을 계기로 성직자들이 크게 회개하고 2015년부터는 더 건강한 교회를 만들자고 주문했는데, '건강한'이란 표현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런 척박한 여건에서 교황이 원맨쇼하듯 개혁을 주도해야하는 현실이 어느 정도 이해되지만, 궁극적으로 개혁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려면 시스템을 바꾸어야 하고 제도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교황 역시 취임하자마자 8인의 추기경으로 구성된 교회개혁위원회를 꾸리고, 돈세탁 의혹을 받아온 바티칸은행 조사특위로 금융감독기구인 경제사무국을 창설했지만, 아직은 시작에 불과한 느낌이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기존조직의 반발을 극복하고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낼 제도개혁기구를 만들고 활성화시켜야 한다. 특히 교회 내 권력 비리와 부패를 감시할 상설기관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개혁의 우군이 필요하다

어쨌든 교황 한 사람의 인기로 버티어내고 교황 홀로 상대하기엔 그 벽이 견고하게만 느껴지고 버겁게만 보인다. 개혁의 우군이 필요하다. 교회 안팎의 개혁세력들이 힘을 모아 개혁을 조직적으로 응원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교회 내 개혁세력 육성도 필요하다. 개혁이 반대세력의 조직적 저항으로 인해 제대로 추진할 수 없게 된다면, 이번처럼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12억 신자들께 직접 호소하는 충격요법도 괜찮은 방법이다. 울타리 밖의 개혁이 울타리 안으로부터 모멘텀을 얻는다면, 울타리 안의 개혁은 울타리 밖의 지원이 필요하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기 전에 평신도들도 대거 참여하는 전세계적인 개혁 지지 움직임이 일어나야 한다.

교회 외부로부터의 개혁 갈망조차 따르지 못하는 교회 내부 현실 보면 안타까움에 제3차 바티칸공의회를 열어야 하는가 싶기도 하지만, 바로 그 교회에서 요한 23세 교황이 뽑혔고, 다시 프란치스코 교황이 불리움 받았으니, 거기에다 보수적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개혁적 교황이 후임자가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전격 자진 사임한 것처럼, 성령의 바람이 어떻게 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2005년 콘클라베에서 교회 내부의 개혁 열망에 힘입어 다크호스로 급부상해 유력 후보 라칭거 추기경(베네딕토 16세 교황)과 각축을 벌였던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그 당시 265대 교황으로 선출됐더라면 교회 개혁이 얼마나 진척됐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 또한 하느님의 섭리를 살펴볼 수밖에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의지와 몸에 가득 배인 양의 냄새

온화해 보이는 외모에 반해 강한 내면을 지닌 프란치스코 개인의 개혁 의지와 정치력을 신뢰하고 싶다. "교회의 힘은 바티칸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민중들에 의해서 나온다"고 보는 교황의 예언적이고 복음적인 교회관은 개혁 의지의 진정성을 드러내주고 있다.

어떻게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를 알고 그것을 솜씨 있게 추진하는 것이 정치력이라면, 특히 미디어를 잘 다루는 교황의 정치력에도 기대한다. 착한 목자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이 정치력 부족으로 단명하고 말았다면 프란치스코는 그 점에 있어선 부족함이 없다. 더욱이 그 바탕이 '사람에게 존중받을 가치와 위대함이 있다는 것을 믿는' 인간에 대한 신뢰에 두고 있다면 그것은 개혁에 순풍의 돛을 될 크나큰 장점이자 자산이다. 교회 현안에 대해 원칙은 지키되 유연하게 대처하는 근본을 꿰뚫는 통찰력은 어떠한가. '지금 여기' 현장을 중시하는 교황에게는 교회마저도 전쟁터의 야전병원 같은 것. 그런 측은지심이 교회 개혁의 불씨로 지펴질 것으로 본다.

기사 관련 사진
 지난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염수정 추기경과 함께 서울 서소문 순교성지를 방문하고 있다. 교황의 옷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리본’ 배지가 달려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나는 그의 마음을 본다. 그의 몸에 가득 배어있는 양의 냄새를 맡는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에 앞서 가난한 이들에게 자연스레 끌리는 그의 발길을 본다.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땅을 품는 그의 넓은 가슴을 느낀다. 열정과 자비의 예언자 아모스와 예레미야가 하나로 만나는 그의 혼 울림을 듣는다. 언제나 세상 안으로 향하는 그의 따스한 손길을, 시대의 징표를 기쁜소식으로 체화시키는 그의 통찰력을, 가난한 이들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는 그의 밝은 귀를, 온화하고 겸손한 그의 맑은 눈을, 사랑이 담겼기에 그토록 부드러운 그의 음성을, 착한 목자 예수를 닮은 착한 목자를 나는 바라본다.

한국교회라고 피해갈 수 없는 15가지 질병

교황의 연설이 어찌 교황청만을 향한 것이겠는가. 성직자 특권의식, 권위주의, 자기비판력 부재, 관료주의, 동맥경화증, 공감력 상실, 사이비 '신비주의', 마피아적 이너서클 파벌권력, 형식주의, 세속주의 등의 고질병이 한국교회라고 피해갈리 없다. 독립영화 '쿼바디스'에 나온다는 "그리스도교가 로마에 가서 제도가 되고 유럽에 가서 문화가 되고 미국 가서 기업이 됐는데, 한국에 오니까 대기업이 됐다"는 말처럼 맘몬은 이미 우리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지난 방한 당시 한국천주교주교단과의 만남에서 교황이 사전 배포된 원고에 없던 아래 내용을 즉석에서 추가하면서까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주문한 까닭도 거기에 있었으리라. 교황은 한국교회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여러분의 교회는 번영하는 교회이고, 선교하는 훌륭한 교회이고, 커다란 교회입니다. 교회의 예언자적 구조에서 가난한 이들을 제거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마십시오. 부자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 하나의 웰빙 교회, 그런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황의 권고는 죽비소리처럼 매섭다. "이는 정신적 웰빙, 사목적 웰빙에 대한 유혹입니다. 곧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아니라 잘사는 자들을 위한 중산층의 교회가 되려는 유혹입니다." 그는 왜 이런 염려를 하는 것일까. 거기에서 첫사랑의 추억을 잊고서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교회가 안타까워 울컥하는 교황의 마음을 읽을 수 없는가.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한다'는 이 종교 위기 시대에 교회는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감시자가 되는 자기검열과 자기비판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역사적으로도 예언자는 모두 내부감시자요 고발자였다. 이번 교황 연설은 바로 교회 전체를 향한 예언자의 외침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중복 게재되었습니다.



                       

대구대학교 한국재활정보연구소 부소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 및 칼럼니스트, 안철수 정책네트워크 내일 장애인 행복포럼 대표

 
댓글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