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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남자가 부모를 떠나는 예수님 이야기
카테고리 : ╁'성경강해 | 조회수 : 162020-11-23 오후 2:59:00

 

요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남자가 부모를 떠나는 예수님 이야기.-

-.정낙원 목사

 

 

 

지난 시간 아담이 부모를 떠난 것은 인류의 타락 이야기라는 것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아담이 부모를 떠난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이야기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앞선 시간 아담의 타락 이야기를 잠시 보충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였습니다.

그럼 아담의 부모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아담은 아들이고 하나님은 아버지인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한 집에서 살아갑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명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걸 예수님께서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온 것은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아버지에게 종속이 되어서 살아가셨습니다.

이걸 순종이라고 합니다.

아담은 예수님을 표상하고 있습니다.

그럼 아담은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그늘 아래 있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과 아버지의 구조가 아담과 하와의 구조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부모를 떠나고 맙니다.

부모를 떠났다는 것은 부모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았다는 뜻입니다.

자기 뜻대로 산 결과가 죽음이었습니다.

 

이것은 피조물이 창조주를 떠나면 어떻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떠나면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아담과 하와 이야기로 적용해 봅시다.

 

여자는 아담에게서 나왔습니다.

이러면 아담이 여자의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여자의 관계는 아담과 하나님의 관계와 같은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하와도 아담의 곁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아담의 권세 아래 있으면서 아담의 말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여자가 남자를 떠난다는 것은 아담이 부모를 떠남과 같은 것입니다.

 

부모를 떠나면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아담이 부모를 떠나서 죽은 것처럼 하와는 아담을 떠나서 뱀을 만나 죽고 말았습니다.

하와는 아담의 그늘을 벗어나 있다가 뱀에게 미혹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부모를 떠난 자들은 모두가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되고,

하와는 아담을 떠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떠나는 순간 뱀의 수중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부모를 떠난 결과 둘 다 죽고 맙니다.

 

최초에 일어난 천상에서의 타락도 천사들이 자기 지위를 떠나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지위를 떠난 천사들을 땅으로 쫓아냈습니다.

땅으로 쫓겨난 천사가 바로 세상 신인 것입니다.

이 놈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지위를 떠나게 합니다.

그것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미혹하여서 자기 지위를 떠나게 한 것입니다.

아담은 부모를 떠나고 여자는 남자를 떠난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죄가 뭐냐? 자기 지위를 떠나는 것입니다.

하와나 아담이나 모두가 자기 지위를 떠나 있었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하와는 아담을 떠나서 뱀에게 미혹 당하여서 선악과를 먹고 죽은 자가 되었고,

아담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여자가 주는 선악과를 먹고 죽은 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왜 부모를 떠나면 죽을까요?

이는 네페쉬 하야 라는 생령의 몸으로서는 뱀의 지혜를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뱀의 지혜를 이기려면 생명과를 먹고 영생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과를 먹기 전의 아담과 하와는 생령입니다.

그럼 부모를 떠나면 안 됩니다.

부모를 떠남이 되려면 생령의 사람에서 영생의 사람으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영생의 사람이라야 뱀의 미혹을 이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떠나도 뱀의 미혹을 이긴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부모를 떠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생명이 마귀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생명을 가진 사람은 부모를 떠남이 성립이 되지만 아담처럼 뱀을 이기지 못하는 자는 부모를 떠남이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생명을 소유한 사람이 부모를 떠남은 선이 되어도 아담과 같은 생령의 생명을 소유한 자가 부모를 떠나는 것은 악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 아래 머물러 있어야 할 때가 있고 부모를 떠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생의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모를 떠남은 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에서 부모를 떠나 이 세상에 오신 이야기는 자기 백성들을 살리는 구원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아담이 부모를 떠나는 사건을 예수그리스도의 구원 이야기로 살펴봅니다.

 

구원은 창세전 언약을 근거로 주어집니다.

창세전 언약에 의하면 죄 아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구속함을 입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참 하나님의 아들이 죽어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뱀의 미혹으로 죄와 사망에 떨어진 것을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서 피 흘리게 하여서 구원을 이루어 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부모를 떠나 온 것입니다.

이는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말씀이신 하나님으로 계셨습니다.

 

요 1:1-3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태초에 말씀으로 계시던 하나님이 이 세상으로 오셨습니다.

태초는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사시는 하나님이 왜 피조 세계에 오셨나요?

 

이는 그 이름 속에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이 세상에 오실 때 “예수” 라는 이름으로 오셨습니다.

 

마 1:18-23.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라는 이름이 뭔가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자” 입니다.

 

어떻게 죄에서 구원을 합니까?

이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합니다.

죄 없는 분이 죽어서 죄인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일컬어 대속제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말씀으로 계시던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육신의 몸을 입고 피조 세계에 오심을 지기를 비웠다고 합니다.

이것은 죽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고 자기를 비워서 종의 형체로 오셨습니다.

이를 신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빌 2:6-8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를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다고 합니다.

종의 형체로 오셨다는 것은 종이 되어 오셨다는 뜻입니다

 

종이란? 주인에게 종속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역사 속에서 철저하게 아버지에게 종속된 삶을 사신 것입니다.

종으로 사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에서 기도 하실 때 이 잔을 옮겨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십자가를 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서 예수님을 수종 들게 하였습니다.

 

천사들이 어떻게 수종을 들었는가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도록 수종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하면서 자신의 뜻을 철회를 하십니다.

그리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떠나와서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을 가지고 자기 백성들을 살려내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부모를 떠나온 것은 구원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만물 속에서 새로운 창조의 일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역사 속에서 하시는 창조는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의하여 구원을 받은 성도를 일컬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 새로운 형상으로 창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창조란 죽은 자를 살려내는 것입니다.

죄인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창조와 구원을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죄 아래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 아래 있는 이 세상은 죽은 세상입니다.

 

죄인이 스스로 살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죄인이 살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창조주가 오셔서 살려주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죽은 자를 살려내기 위함입니다.

 

죽은 자가 어떻게 살아나는가 하면 산 자의 죽음으로 주어집니다.

예수님은 산 자입니다.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끄집어내고자 죽음에 넘겨주신 것입니다.

이를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안에 있는 생명을 낳고자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으로 낳아진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담아 놓은 생명의 법칙은 씨가 죽어서 열매를 맺도록 해 놓았습니다.

생명이 죽어서 생명을 낳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피조 세계의 모든 생명은 죽음을 바탕으로 낳아지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안에 있는 백성들을 낳기 위하여 부모를 떠나 이 세상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하나 되는 아담과 하와 이야기를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이라고 하였습니다.

 

엡 5:30-32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바울은 아담과 하와 이야기를 그리스도와 교회 이야기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비밀이라고 합니다.

이건 단순하게 남자와 여자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밀이란? 감추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숨은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아담과 하와 이야기를 겉으로 드러난 아담의 타락이야기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사건은 인간의 타락이야기이지만,

그 속에 담겨진 이야기는 죄인이 구원 받는 사건인 것입니다.

아담이 부모를 떠난 사건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구속하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것을 이중계시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담과 여자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비밀을 안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이 되는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떠나(성육신) 우리와 연합하여 교회를 이루는 사건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는 것을 예수님이 자기를 비워 “종(肉身)”의 형체로 오셔서 성도를 구원한 사건으로 정의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 창조주의 위치를 버리고 피조물의 모습으로 오셨나요?

이는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기 백성들의 죄를 속량하기 위함입니다.

세상에는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나온 자들입니다.

 

이것은 마치 아담 속에서 하와가 나온 것과 같습니다.

아담이 여자의 죽음에 동참한 것은 곧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죽음에 넘겨주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에 넘겨준 것은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자신을 죽음에 넘겨준 것은 자기 백성들이 예수님 안에서 나온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아담이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한 몸을 이룬 것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자와 한 몸을 이룬 것은 여자의 운명에 동참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담이 여자와 함께 죽음에 떨어진 것은 그 여자는 자기 안에서 나온 자기의 분신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내 뼈 중에 뼈요 내 살 중에 살이라고 합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뼈요 살입니다.

그래서 성도를 일컬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몸은 여러 가지 지체와 지체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성도는 예수그리스도의 뼈 중에 뼈요 살 중의 살입니다.

 

구원이 뭐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원래 있던 자리를 찾아 가는 것입니다.

 

성도의 원래 자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 입니다.

 

롬 11:36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만물이 주에게로 나왔다고 합니다.

이는 성도가 예수 안에서 나온 것을 말합니다.

‘주로 말미암고’ 라는 말은 예수의 생명을 산다는 뜻입니다.

‘주에게도 돌아감’이라는 말은 예수 안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이게 구원입니다.

 

구원이란? 예수 안에서 나와서 예수로 살다가 예수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나온 것은 창세전에 영생 얻기로 작정이 된 자가 되어서 이 세상으로 보내심을 입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생 얻기로 작정이 된 자들을 그 아들을 보내서 찾아내서 죄에서 구원을 하여서 생명을 주게 하셨습니다.

 

이건 마치 구약의 이스라엘이 아브라함 언약을 안고 애굽에 버려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과 하신 언약의 때까지 죄 아래서 종노릇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때가 차매 하나님이 구원자를 보내서 어린 양의 피로 찾아 오셨습니다.

 

성도는 비록 창세전에 영생을 받기로 작정이 되었지만 죄 아래서 종노릇 하는 기간을 겪게 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을 봅시다.

 

갈 4:1-5절.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하나님에게는 유업을 이를 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유업은 천국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일시동안 종으로 살게 하였습니다.

 

이를 율법 아래 두었다고 합니다.

율법 아래 두셨다는 것은 죄와 사망 가운데 두었다는 뜻입니다.

이를 종이라고 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일정 기간 동안 죄와 사망 안에서 종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한 때까지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율법 아래 나게 하셨습니다.

이는 태초에 말씀으로 계시던 하나님의 아들을 예수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오셨나요?

자기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죽으러 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죽은 자가 된 하와가 주는 선악과를 먹고 함께 죽음에 동참 한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은 죄와 사망 아래 있습니다.

이를 율법 아래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율법 아래 오신 것은 죽음에 뛰어든 것입니다.

이는 죽음 안에 있는 자기 백성들을 구원코자 함입니다.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 담당키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안에서 나온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자기 몸을 죽음에 넘겨준 것입니다.

이를 대속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대신 죽어 주심으로서 죄에서 속량을 받은 것입니다.

 

사 53: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입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우리를 바꾸신 것입니다.

그를 우리 대신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이 부모를 떠나 왔기 때문에 주어진 것입니다.

 

고전 15:45절.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예수님이 “종(肉身)”의 형체로 오실 수 있는 것은 부모를 떠나서 독립할 수 있는 건강한 남자로서 살려주는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한 몸을 이루는 것은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지 아담이 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잘 보시면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옆구리에서 갈비뼈를 취하여서 여자를 만드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여자를 아담에게로 인도합니다.

일을 행하시는 주체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빼내시고 하나님이 한 몸이 되도록 하십니다.

 

한 몸이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시계를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 성도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믿어지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믿어지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이끌고 온 자들을 자기에게로 끌어당기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도를 끌어당겨 줄 때 성도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을 봅시다.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예수는 아무나 믿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믿어지게 해 주는 자들만이 믿을 수가 있습니다.

이를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이끌어 주신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이끌고 온 자들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성도를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자들이라고 합니다.

아버지께서 성도들을 예수님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맡긴 자들을 끝까지 지켜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주체가 하나님이지 우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어지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에게서 나와서 예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것을 아담 속에서 여자를 꺼냈다가 다시 아담에게로 데려다 주는 것으로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창세전 언약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펼쳐질지를 보여주고 있는 모형적인 그림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 안에서 나온 여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영생 주시기로 작정이 된 언약의 후손들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들을 자기 안으로 끌어 당겨서 한 몸을 이루십니다.

 

아버지로부터 떠나옴을 입은 예수님은 이 땅에서 자기 안에서 나온 자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이는 언약의 후손들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건져내고자 함입니다.

 

예수님이 죄인의 운명으로 뛰어든 것입니다.

이 모습이 아담이 여자가 주는 선악과를 먹고 함께 죽음의 운명에 동참하는 것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아담은 선악과의 본질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자기 몸에서 나온 여자가 들고 온 선악과를 먹은 것은 여자와 운명을 함께하고자 함입니다.

  

이 모습이 예수님께서 죄인을 상징하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례는 연합을 의미합니다.

세례를 받는 자가 세례를 주는 자와 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알다시피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신 죄가 없는 분이고, 세례 요한은 죄 아래서 태어난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 죄가 없는 분이 죄인과 연합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세례 요한의 때까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을 일컬어 율법과 선지자라고 합니다.

이는 세례 요한은 구약을 대표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은 율법을 상징합니다.

율법은 죄와 사망을 말합니다.

그럼 세례 요한은 죄와 사망 아래 있는 자를 대표하는 자가 됩니다.

 

죄와 사망에 가두어진 자가 죄가 없는 예수님을 세례를 베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막에서 드려지는 제사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죄인이 흠 없는 제물에게 안수하는 것은 자신의 죄를 흠 없는 제물에게 전가를 시키는 것입니다.

흠 없는 제물은 죄인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는 것입니다.

 

이 일을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흠 없는 제물이고 세례 요한은 죄인입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구약의 성도들이 자신들의 죄를 예수님에게 전가 시키고 있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언약 백성들의 죄를 그 몸에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어주심으로 언약의 후손들이 죄와 사망에서 건져냄을 당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마 27:50-52절.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자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고 무덤이 열립니다.

그러자 자던 성도들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을 하신 후에 이들을 무덤에서 빼내서 거룩한 성으로 데리고 가십니다.

 

성소의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커튼입니다.

이 커튼은 단 한 번도 열려진 적이 없습니다.

다만 일 년에 단 한번 7월 10일 대 속죄일에 대 제사장이 흠 없는 피를 앞세우고 들어갔습니다.

 

속죄일이 되면 온 민족이 죄를 벗는 제사를 드립니다.

이 때는 대 제사장이 홀로 제사를 지냅니다.

속죄일이 드려지는 제사는 대 제사장 자신을 위한 제사입니다.

이 때 흠 없는 제물을 잡는 것은 대 제사장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이는 대 제사장 자신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대 제사장은 온 백성을 대표합니다.

그럼 대 제사장의 죽음은 온 백성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는 죽음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대 제사장이 들고 들어가는 흠 없는 제물의 피는 곧 자신의 죽음을 예표하기도 하지만 온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죽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대 제사장은 그 피를 들고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기 피를 앞세우고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들고 가는 자기 피는 자기 백성들을 대속하는 피입니다.

그럼 예수님의 죽음은 자기 백성들의 죄를 위한 죽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어 주심으로서 자기 백성들이 죄사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은 자들은 더 이상 죄와 사망이 붙잡아 둘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무덤이 열리고 사망이 붙잡고 있던 성도들을 내어주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하신 후에 이들을 데리고 아버지에게로 나아간 것입니다.

 

이것을 구약에서는 대 제사장이 속죄일에 피를 앞세우고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 제사장이 되어서 십자가에서 속죄일에 드려지는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를 히브리서 기자는 정확하게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히 9:11-12절.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 10:19-20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예수님께서 아버지에게 나아가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그것이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를 새롭고 산 길이라고 합니다.

이제부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열어 놓은 길로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스스로를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모를 떠나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늘로 가는 길을 열어 주고자 함입니다.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자기 몸으로 열어 놓은 그 길을 따라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하나님 앞에 가로 막힌 담을 허물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창세전 언약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몸으로 창세전 언약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모를 떠나 온 것은 창세전 언약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아담이 부모를 떠나 자기 안에서 나온 여자를 위하여 죽음에 동참 한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부모를 떠나 자기 안에서 나온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영생 주시기로 작정이 된 언약의 후손들을 위하여 죽음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이를 사도 바울은 잘 알고 교회와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담과 하와가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루는 것으로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혼이란?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여자가 남자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자란? 남자를 떠나 있는 자를 말합니다.

남자에게서 나오면서 여자가 된 것입니다.

남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고 여자는 남자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유업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자에게 유업을 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아버지의 씨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아버지의 씨를 받으려면 남자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걸 결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한 몸이 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혼은 남자가 여자에게 씨를 주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아버지의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로부터 생명을 받으면 남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편으로부터 받은 씨를 키워가면서 남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로부터 씨를 받음으로서 자기 안에 남자의 생명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여자가 남자가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아버지의 유업을 얻을 수 있는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도들에게 씨를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씨를 받은 성도를 일컬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들이면 유업을 이을 자라고 합니다.

 

구원이 뭐냐?

여자가 남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여자가 남자가 되는가 하면 예수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것으로 됩니다.

 

남자인 예수님이 여자인 성도들에게 자기의 생명을 주어서 하나님의 아들(남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아들의 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마치 여인이 아이를 임신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증상이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자의 몸은 남자의 씨를 잉태하면 그 씨를 키우기 위하여 몸의 구조가 바뀌게 됩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연약한 여자에게서 강인한 엄마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여자가 아닙니다.

남자입니다.

아이를 위해서 엄마는 온 몸을 다하여서 남자가 되어서 희생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 것과 같습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자기의 생명을 주어서 여자에서 엄마(남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여자는 자기 안에 남자가 준 생명을 자기 몸을 다 하여서 길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여자는 아이를 잉태하는 순간부터 몸은 뱃속의 남자가 준 생명인 아이를 키워내는 구조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해산의 고통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여자의 해산의 수고를 구원을 이루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자는 남편 앞에서는 유약한 여자이지만 아이 앞에서는 강인한 남자입니다. 

 

남자란? 자기 몸에서 나온 자를 위하여 희생(죽음)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자기 씨를 가진 여자를 지켜내는 것입니다.

온 정성을 다하여서 지켜내는 것입니다.

이는 값을 주고 산 자신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성도들을 값을 주고 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생명을 가진 성도들을 끝까지 지켜내는 것입니다.

남자(예수, 아담)가 자기 몸에서 나온 여자(성도, 하와)를 지켜내듯이, 여자 또한 자기 몸에서 나온 아이를 지켜냅니다.

 

여자로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남자로 자라가야 합니다.

여자로 머물러 있게 되면 교회나 사람에게 거치는 자가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여자는 교회에서 종용히 하고 남편에게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딤전 2:11-15절 “11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12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하나님은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치 않았습니다.  

이는 생물학적 여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의 생명으로 강건하지 않은 사람은 가르치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르친다는 것은 예수의 생명을 나누어 주는 것과도 같습니다.

예수의 생명을 나누어 주려면 바울처럼 강건한 남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처럼 다메섹 경험이 있고 복음에 대하여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를 만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남을 가르칠 수 있으려면 강건한 남자가 되어야 합니다.

남자로 자라가야 합니다.

예수의 생명을 잉태 하였다고 하여서 남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남자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남자 구실을 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분명하게 남자로 태어났어도 여자에게 생명을 줄 수가 있으려면 남자 구실을 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강건한 남자로 자라야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남겨젼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이 부모를 떠나와서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죽어주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자를 남자로 만들어서 자기 몸인 교회를 위하여 제물이 되게 하십니다.

남자가 된 성도는 자기 몸으로 예수를 풀어내게 되어 있습니다.

강건하게 자라면 남자로서의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를 해산의 수고라고 합니다.

 

해산의 수고가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버려짐을 당하는 삶을 사셨듯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일컬어 예수의 증인이라고 합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자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자기 안에 예수라는 생명을 세상에 퍼뜨리는 남자로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언약의 후손들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동참하는 것으로 증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남자가 부모를 떠남입니다.

부모를 떠난 남자의 삶은 예수님처럼 이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예수의 생명을 위해 버림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성도의 몸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몸인 지체들을 위하여 예수님처럼 섬김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섬김이란?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짐을 대신 짊어지는 것입니다.

섬김은 남자만이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을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이렇게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교회를 돌보고 성도들을 섬기는 것을 일컬어 남자의 삶이라고 합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이러한 남자로서의 삶을 일컬어 산 제사라고 합니다.

산 제사를 영적 예배라고 합니다.

 

롬 12:1-2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권위 하는 자면 권위 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9.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예배란? 교제하는 것입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아래로는 하나님께 받은 사랑으로 이웃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를 교회에서 섬김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섬기게 됩니다.

그래서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영적 예배가 드려집니다.

자기 몸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드려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을 영적 예배라고 하고 하나님은 이렇게 영적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예수의 생명으로 사는 것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서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은사로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자기 인생을 살던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자기 인생은 차압당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는 인생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천국이 침노해 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침노해 오셔서 자신의 나라를 확장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원주민인 옛 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이를 가나안 전쟁이라고 합니다.

 

성령은 예수의 생명으로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케 하는 일을 하십니다.

이를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으로 자라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품에 안고 살아가는 성도의 삶을 날마다 겉 사람은 후패해져 가고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져 가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쇠하고 예수가 흥하게 됩니다.

율법의 사람은 죽임당하고, 은혜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나는 날마다 죽고 예수 안에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이 모두가 예수님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한 몸을 이룬 결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린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는 아내로 살아가고 세상 속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영적 예배라고 합니다.

영적 예배는 남자라야 드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자의 예배는 받지 않으십니다.

그 속에 예수의 생명이 없는 자들의 예배는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남자의 예배만 받으십니다.

그 속에 예수의 생명이 있는 자들의 예배만 받으십니다.

 

이를 가인과 아벨의 제사로 말해주었습니다.

가인의 제사는 아들의 생명이 없는 제사였습니다.

피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안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벨의 제사는 피가 있었습니다.

그 피가 바로 아들의 생명인 것입니다.

이를 히브리서 기자는 아벨은 더 좋은 예물로 하나님께 드렸다고 합니다.

더 좋은 예물이란? 가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성도를 강건한 아들로 자라가게 하십니다.

예수님처럼 생명을 줄 수 있는 자로 자라가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으로 자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답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대신 하는 부모를 떠나는 삶입니다.

 

부모를 떠나는 것은 여자에게 생명을 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예수의 생명을 가진 자들을 세상에 씨로 뿌리십니다.

그것이 세상에서 죽임 당하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복음은 항상 예수의 증인들의 피 뿌림을 통해서 증거가 되어져 왔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진 자들은 형제라고 하는 자들로부터 이단이라는 말로 죽임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죽은 자리에서 스데반이 나왔고,

스데반이 죽은 자리에서 바울이 나왔고,

바울이 죽은 자리에서 이방인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예수의 피로 세워진 교회는 예수 증인들의 피로 지켜져 왔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의 피로서만 우리의 신앙이 지켜집니다.

그 예수의 피가 유업을 얻게 하는 약속이기 때문에 그 피로 신앙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하여 목베임을 받은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예수의 증거로 죽임당하는 것은 곧 천국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유업을 얻게 되는 축복인 것입니다.

 

그 피 안에서 강한 남자로 자라가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강한 남자가 되어서 그 피의 복음을 끝까지 지켜내시길 바랍니다.

전쟁은 곧 끝이 납니다.

그 날을 소망하면서 마라나타 신앙으로 살아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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