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보 「 디딤돌 」 디딤돌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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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돌 11월호]삶의 향기_ 디딤돌 이벤트
카테고리 : 사외보 「 디딤돌 」 디딤돌이벤트 | 조회수 : 13662008-11-17 오전 9: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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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보다

 

“지금의 인연 만들어준 내 장애는 차라리 축복이다”

7년지기 친구, 홍현승·윤지준 군와 함께 비가 오락가락 했다. 해도 떴다졌다 했다. 대학로에서는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차가 많이 막혔다. 약속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기자는 마로니에 광장에 서서 두 친구를 멋지게 잡아낼 앵글을 구상하고 있었다. 이때 현승(홍현승, 18세, 뇌성마비)군이 엄마의 손을 잡고 쌍둥이 누나와 함께 나타났다. 지준(윤지준, 18세, 뇌성마비)군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맥도날드 가게 앞이란다. 다소 늦어진 시간을 고려해 우린 그냥 공연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친구들과 함께 카메라에 담으려 했던, 눈부시게 물든 황금빛 은행잎들이 뒤에서 기자를 연신 불러댔지만 소용이 없었다.


‘수다’로 통한 비밀 없는 동갑내기

지준 군과 현승 군은 열여덟 살 동갑내기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복지관에서 처음 만나 7년 동안 꾸준히 우정을 키워오고 있는 지기(知己)이다. 쉽게 낯선 이와 친해지지 않는 성격인 현승 군이 먼저 ‘추파’를 던져 만든 유일한 친구가 바로 지준 군이다. 물리치료선생님과 재미있게 담소하는 지준 군의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대화하려는 욕구가 강했던 현승 군은 지준 군과 뭔가 통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 느낌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둘은 만나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해 조금씩조금씩 알아가게 됐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자주 만나고 있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서로가 서로에게 ‘No.1’ 친구인 것만은 확실하다고 한다.

지준 군은 고관절 수술로 인해 크러치를 사용해야 하고 현승 군은 누군가 손을 잡아줘야만 이동이 가능하기에 이 두 친구가 자의로 자주 만날 기회는 많지 않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두 친구의 우정이 지속되는 비결은 바로 ‘전화’에 있다. 굳이 만나지 않아도 서로의 의사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전화는 이 두 친구의 우정을 지켜주는 일등공신인 셈이다. 짧게는 10분에서 20분 정도 이뤄지는 통화지만 특별한(?) 일이 있을 땐 1시간 내내 통화를 하기도 한다. 이런 땐 거의 부모님께 하지 못하는 얘기들이 오간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전화를 하는 이들에게 비밀이 있을 리 만무하다. 둘은 자신있게 “우린 비밀이 없다”고 말한다.

대화하는 것을 즐기는 이들은 친구에 대한 욕심이 많다. 복지관을 다닐 때에도 둘이서 주도해 ‘희망회’라는 친목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그렇게라도 모임을 만들지 않으면 서로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고 한다.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복지관 친구들과 함께 모여 담소를 나누는 일은 정말 즐거웠다고 한다.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장애인 친구들에게 이 ‘희망회’는 뜻깊은 모임이 되었다.


지준이는 현실파, 현승이는 이상파

성향은 좀 다르지만 사교적인 면이 서로 통하는 이 두 친구의 공통적인 꿈은 사회복지사. 하지만 사회복지사가 되려는 이유는 서로 다르다. 지준 군은 예전에 짝사랑했던 사회복지사선생님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 꿈을 갖게 됐지만 지금은 자신의 경제적 독립을 위한 현실적 수단으로 사회복지사를 지망한다고 한다.

현승 군의 경우엔 자신이 지금까지 여러 사람들에게 받아온 사랑을 다시 누군가에게 나눠줘야겠다는 생각에서 사회복지사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만큼이나 포기할 수 없는 꿈이 현승 군에겐 또 있다. 바로 시인이 되는 것과 불교포교사가 되는 것이다.

기독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는 지준 군과는 달리 현승 군의 종교는 어려서부터 불교이다. 사철의 가파른 계단을 몸으로 기어서 올라가는 현승 군에겐 절에 오르는 것 자체가 고행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불교를 장애인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단다. 장애인들에게 불교를 널리 알리기 위해 도심의 빌딩에 법당을 만들고 교회처럼 좌석을 배치해 장애인들에게 편안한 그런 종교적 공간을 꼭 만들어보고 싶다고 한다. 시인이 되려고 하는 건 글이 가진 진솔함이 좋아서이다. 자신의 마음을 무장해제해서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시를 통해 ‘희망’을 전달하고 싶은 게 자신의 목적이라고 한다.

이런 현승 군의 얘기에 대해 지준 군은 “현실성이 없다”는 말로 우려한다. 언제 그 큰 돈을 모아 그런 꿈을 이루느냐는 것이다. 꿈은 장황하면 안된다는 것이 지준 군의 생각이다. 지준 군은 큰 이상을 품기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편이다. 외동인 지준 군의 이런 생각은 부모님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반면 현승 군은 부모님의 반대와 싸우며 자신의 이상을 굽히지 않고 있다. 혼자 이루는 꿈이 아니라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꿈이기에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는 것이 현승 군의 주장인 것이다.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는 축복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것일까?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는 생각보다 좀 실망스러웠다. 13년 동안 롱런한 뮤지컬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허술한 구성과 부진한 연기력으로 인해 웬만해선 감탄사가 터져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두 친구는 나름 재밌었다고 한다. 현승 군은 ‘사.비.타’의 형제애가 부럽다는 말로 쌍둥이 누나와의 부족한 대화를 은근히 불만스러워했다. 그러자 지준 군이 “내가 있는데 왜 그런 형제애를 부러워 하느냐?”며 현승 군의 어깨를 감쌌다. 둘은 동시에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우정은 죽을 때까지 갈 거예요”라는 말을 하며 서로를 바라보는 이 두 친구가 참 멋져 보였다.

지금의 인연이 너무 소중해 장애마저 용서가 된다는 현승 군의 말처럼 이들의 우정이 앞으로도 쭉 지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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