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화목 제물의 피와 구속 (롬 3:23-26)
카테고리 : ╁'성경강해 | 조회수 : 1192020-12-05 오후 12:01:00

 

요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화목 제물의 피와 구속 (롬 3:23-26).-

-.정낙원 목사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엿 볼 수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를 역(逆)으로 되짚어 보면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죄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게 하고 자기 영광을 좇게 한다는 말입니다.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인간을 위하여 창조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하여 창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죄가 개입하면서 이 목적이 헝클어지고 말았어요.

이게 죄에요.

 

이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모든 신앙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죄를 가늠하는 시금석이에요.

 

죄가 뭐냐?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위배가 될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를 위하여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집안 일을 시키고자 값을 주고 종으로 사 온 놈이 주인 행세를 한단 말입니다.

이건 주객이 전도가 된 것입니다.

 

이걸 역리(逆理)라고 해요.

다른 말로 죄라고 합니다.

죄가 뭐냐? 역리 현상으로 사는 것이에요.

역리(逆理)란? 목적이 뒤 바뀌어졌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지음을 받았는데 자기가 찬양을 받고 있어요.

예수를 믿으라고 믿음을 주었더니, 예수 믿는 자기를 자랑하고 있어요.

복음을 증거하라고 은혜를 주었더니, 복음 전하는 자기를 자랑하고 있어요.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라고 은혜를 주었더니 자기 영광을 드러내고 있어요.

이걸 하나님 것을 도적질했다고 합니다.

 

영광(榮光)이란?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를 하였다는 말은 하나님에 아름다움을 드러낸다는 말입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어떻게 드러내는가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은 하나님을 기분 좋게 하라는 말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언제 기분이 좋은가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처음 만든 상태 그대로 보존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걸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됩니다.

이러한 상태를 옳음이라고 하고 의(義)라고 해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되려면 우리가 설치면 안 되어요.

우리가 설치면 설칠수록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훼손당해요.

우리가 보기에 좋았더라가 되어요.

이게 죄에요.

 

신앙생활에 가장 나쁜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에 자기가 뭔가를 해서 변개 시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흔적이 훼손당해요.

하나님의 은혜성이 날아간단 말입니다.

이걸 하나님 영광을 가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섞이지 않은 상태를 거룩이라고 하고 섞인 상태를 타락이라고 해요.

그래서 하나님은 혼합하고 섞지 못하도록 이스라엘 민족의 삶을 통하여서도 율법으로 금지를 시켰던 것입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결혼하지 못하게 하였고!

소와 나귀를 겨리로 밭 갈지 못하게 하였고!

두 가지 재료로 된 옷을 입지 말라고 하였고!

한 밭에 두 가지 종자를 뿌리지 못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건 거룩성을 알려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이 하신 일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그대로 잘 보존 하려면 어찌하여야 할까요?

이는 자기 생각이 없으면 됩니다.

 

내 생각이 없으면 하나님이 하신 그대로 두게 되어요.

내 생각이 개입되는 순간 하나님이 하신 일에 순수성은 날아가게 되어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에 싸움은 하나님의 것에 우리 것이 섞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개입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을 예로 들어보세요.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말렉에 속한 모든 것은 죽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다 죽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사울 왕은 자기 생각으로 좋고 실한 것들은 살려 두었어요.

그것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다는 명목으로 말입니다.

이건 하나님의 뜻에 사울 왕의 생각이 개입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다” 고 한 것입니다.

사울 왕에게 있어 신앙이란? 하나님이 죽이라고 하면 죽이고 살리라고 하면 살려야 합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그러지 않았어요.

자기 생각으로 판단했어요.

 

이러한 사고가 사울 왕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인간들에게 나타나고 있어요.

그 속에 죄가 역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 신앙으로 비유하면 하나님께서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데 우리는 자꾸만 우리 행함을 끼워 넣고자 한단 말입니다.

 

믿음 속에 행함도 들어가 있는데 우리는 자꾸만 믿음 따로 행함 따로 구분해서 챙기고자 한단 말입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는 행하게 되어 있어요.

행함이 없으면 그건 믿음이 아니에요.

 

누가 행하지 않으면 그냥 믿음이 없나 보다! 라고 하면 되는데 우린 자꾸만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라고 한단 말입니다.

강요하여서 도출된 행함은 믿음이 일으킨 행함이 아니고 인간이 만든 행함이에요.

이런 행함은 반드시 자기를 자랑하게 되어 있어요.

 

분명히 말합니다.

온전한 믿음은 반드시 그 믿음이 일으키는 행함이 있어요.

이런 행함이 없는 사람은 신자가 아니고 종교인이에요.

예수를 믿는 자가 아니고 믿는 척 하는 자에요.

신자 아닌 자를 자꾸만 신자 티를 내게 하지 마세요.

안 움직이면 그냥 내비 두세요.

 

어차피 인간은 자기 믿음으로 살게 되어 있어요.

자기 안에 있는 것을 토하여 내게 되어 있단 말입니다.

그 속에 예수님이 계시면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날 것이고 그 속에 예수님이 안 계시면 마귀 모습이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포도나무는 반드시 포도 열매를 맺어요.

그러니 남에 신앙을 내가 이러쿵 저러쿵 관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교회 다니는 것으로 예를 들어 봅시다.

교회가 좋은 사람은 교회에 오지 말라고 해도 오고!

교회가 싫은 사람은 오라고 강요해도 안 와요.

그러니 오라 말라 강요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이 알아서 간섭하시겠지 두고 보세요.

그렇다고 무관심 하란 말이 아니에요.

원리를 말씀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하니 다시 말합니다.

의(義)란? 하나님이 하신 상태를 그대로 보존하는 상태를 말하고!

죄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변개 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의(義)에 상태에요.

 

그러므로 피조물 속에 하나님이 하신 일이 손상이 가지 않고 그대로 잘 보존이 될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됩니다.

그럼 창조하신 하나님이 아! 참 잘 만들었다! 라고 하면서 그것을 만든 주인으로서 영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은 단 하나에요.

간단해요.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대로 순수하게 있는 겁니다.

뭔가 섞이면 안 되어요.

그럼 순수성이 날아가요.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수박을 만들었으면 수박으로 있으면 되어요.

수박에다 호박을 접붙여서 개구리 수박을 만들면 안 되어요.

하나님께서 개구리 수박이 필요했을 것 같으면 처음부터 개구리 수박을 만들었어요.

수박에다 호박을 접붙이는 것은 창조 질서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왜? 수박에다 호박을 접붙여서 개구리 수박을 만들까요?

 

이는 모두가 인간의 탐욕 때문입니다.

죄가 탐욕을 불러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역사하는 곳에는 반드시 타락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타락이란? 원래의 상태를 상실케 하고 변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이걸 우리에게 적용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이 있어요.

우리에게 주신 것이 있단 말입니다.

그게 뭔가 하면 믿음이에요.

 

그런데 마귀는 믿음에다 인간의 것을 섞으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은혜에 인간의 행위를 섞으라고 해요.

여기에 미혹 당하면 믿음에다 자기 행함을 섞어요.

은혜에다가 자기 행함을 섞는다는 것은 자기 가치를 챙기겠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왜? 하나님의 은혜에 자기 행함을 섞고자 하는가 하면 행함 속에는 자기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예수 믿으면 되는데!

우리는 꼭 예수를 믿는 나도 좀 인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냥 복음 전하면 되는데!

복음 전하는 나도 좀 알아 달라고 하고 있어요.

 

그러니 나 예수 믿잖아요!

나 복음 전했잖아요!

나 교회에 왔잖아요!

꼭 내가 했다는 것을 끼어 놓고자 한단 말입니다.

이게 죄에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복음 안다고 하면서 복음 전하는 자신을 자랑하고 있어요.

이게 부정당하면 화를 내요.

인간은 자기가 부정당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요.

본능적으로 반발해요.

이는 자기의 없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인의 본성은 자기를 긍정하고 자기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합니다.

죄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밀어내고 자기 이름을 새기도록 해요.

그런데 성령은 자기를 부정하고 부인하라고 해요.

내 생각을 죄라고 합니다.

 

여기에 충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고난인 것입니다.

달리 고난이 아니에요.

자기 본성에 거스리는 일을 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라고 하고 자기를 부인하여야 하기 때문에 고난인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상고해 봅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난 후에 인간에게 명하신 말씀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을 봅시다.

 

창 1:26-28=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십니다.

그리고는 창조하신 만물을 다스리라고 하시지요.

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도록 위임을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하나님을 대신하여서 만물을 경영(經營)하는 자로 서 있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하나님이 만드신 회사를 인간에게 경영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럼 인간은 만물을 어떻게 경영하여야 할까요?

이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경영해야 합니다.

만물을 다스리되 자기 마음에 맞도록 다스리면 안 되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도록 다스려야 해요.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 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를 하신 것입니다.

형상(形狀)이라는 말은 모양을 새겨 넣었다는 뜻이에요.

문서화 하였다는 말이에요.

 

그러니 형상이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몸에 그려 놓았다는 의미가 있어요.

인간의 몸에서 하나님이 뜻이 나타나야 해요.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만물을 다스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쉬운 말로 하나님 마음이라고 이해하여도 되어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한 것은 마치 부모가 자식을 낳은 것과 같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형상이에요.

자식 속에 부모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식은 부모의 거울과 같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낳았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자식입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곧 하나님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는 말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기뻐 할 때가 언제인가요?

그것은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때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만물의 경영을 맡겼어요.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만물을 다스려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선악과를 먹어선 안 된다고 했던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독자적인 눈과 독자적인 생각을 갖게 되어요.

독자적인 눈과 독자적인 생각을 갖게 되면 독자적인 심판의 기준을 갖게 됩니다.

그럼 하나님처럼 심판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건 타락이고 악이에요.

 

피조물이 심판자가 되면 안 되어요.

그럼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피조물 입맛에 맞도록 개조시켜 버려요.

그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세상이 자기가 보기에 좋은 세상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피조물인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독자적인 눈과 생각을 가지고 심판자가 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심판자가 되면 만물을 하나님 마음으로 다스리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다스리게 됩니다.

그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고 자기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게 되어요.

이건 창조의 목적에서 위배되는 것입니다.

이걸 과녁에서 이탈하였다고 하여서 죄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선악과가 무슨 훈장님 꿀단지 같아서가 아니라 피조물인 인간에게는 유익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물을 심판하는 권세는 오로지 창조주이신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창조의 목적대로 만물이 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인간은 뱀의 꾐에 넘어가 먹어서는 안 되는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는 순간 하나님의 마음을 상실하였어요.

이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독자적인 존재가 되고 말았어요.

심판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독자적인 존재는 살 수가 없어요.

그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사사건건 반기를 들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창조주의 마음과 피조물의 마음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입장에서 모든 만물을 다 돌아보시는데 인간은 자기 입장에서 돌아보아요.

 

그럼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고 자기 나라가 세워져요.

그래서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고 독자적으로 심판하는 마음을 가진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추방을 한 것입니다.

그리곤 인간의 본래 자리인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어요.

 

창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 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시 90:3-4=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 임이니이다”

 

흙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티끌로 돌아가라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