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말과 세상의 본질 (계 6:1-17)
카테고리 : ╁'성경강해 | 조회수 : 2932019-11-12 오전 6:14:00

요한복음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창세전 언약 (에베소서 1장 3-10)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1)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정낙원 목사

'네 말과 세상의 본질 (계 6:1-17)


 어린 양이 하나님의 오른 손에 있던 책을 취하셨습니다.

그리곤 인을 떼기 시작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린 양에게 위임하셨다는 뜻입니다.

이제 어린 양이 이 세상을 심판주로서 일을 하십니다.

 

어린 양의 인을 떼면서 이 세상의 실체가 폭로가 됩니다.

일곱 인이나 일곱 나팔이나 일곱 대접은 모두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이는 곧 아담이 범죄 한 이후 이 세상은 이러한 모습으로 점철되어 왔고, 지금 되어져 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되어간다는 뜻입니다.

 

먼저 알 것은 요한계시록에서 나타나는 재앙들은 구약에 일어났던 재앙으로서 미리 보여 주신 것들입니다.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그 재앙의 내용은 동일합니다.

 

어린 양이 책을 취하여 인을 떼자 나타나는 재앙들은 신약 시대를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약에서부터 진행이 되어진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담의 범죄 이후로부터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재앙을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는 완연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점진적으로 점층적으로 강도가 더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앞으로 이 세상은 더욱 더 타락하고 악해질 것입니다.

재앙도 더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은 네 말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합시다.

 

어린 양이 인봉을 떼자 말들이 뛰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이 세상에서 각양의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게 도대체 무얼 말하고 있는지 성경을 통해서 알아봅시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요한계시록은 구약적 배경을 모르고서는 해석 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 오늘 본문도 구약적 바탕에서 해석을 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구약 속에 그림자처럼 오늘 본문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고 난 후 구약의 모든 이야기들을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것으로 해석을 하였습니다.

특히 히브리서 같은 것은 구약을 예수그리스도로 해석하는 결정판이에요.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못을 박아 버린 것입니다.

예수가 실상이고 율법은 그림자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림자를 먼저 주세요,

실상은 나중에 주세요.

그래서 성경은 먼저 나온 것들은 항상 타락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시역을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지요.

이는 창세전 언약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게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일해 가는 수순(手順)이에요.

이 수순을 모르면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이 시대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장난치는 자들은 모두가 이 수순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공포의 책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신천지 집단들처럼 요한계시록이 마치 자기들만의 전유물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들만 안다고 하는 거에요.

이들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흰 말에 속한 자들이에요.

 

오늘 본문의 흰 말에 대하여 다양한 해석들이 있어요.

양극단의 해석이 있어요.

무 천년주의와 역사기 전 천년주의 간에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어요.

무 천년주의에서는 흰 말을 예수그리스도라고 하고, 전 천년주의에서는 적그리스도라고 해요.

극과 극으로 완전히 달라요.

 

흰 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나머지 말들의 해석이 달라져요.

영적 해석과 육적 해석으로 달라지게 됩니다.

세상에 대한 이야기와 교회에 대한 이야기로 달라져요.

 

모든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기록이 되었어요.

그러므로 일차적으로 문자적으로 해석을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면 안 되어요.

왜냐하면! 성경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문자적인 육적 해석을 넘어서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로 보는 영적 해석을 하는데 까지 나아가야 해요.

 

성경은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았다고 합니다.

이는 보이는 것 속에 보이지 않는 것이 숨겨져 있다는 말입니다.

이게 성경의 비밀이에요.

 

육(肉)이 있고, 영(靈)이 있어요.

육(肉)은 드러난 것이고, 영(靈)은 감추인 것이에요.

보이는 것은 누구나가 해석 할 수가 있어요.

 

쉬운 말로 절간에 스님들도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가 있어요.

실제로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성경을 많이 강해했어요.

인도의 철학자 오쇼 라쥐니스는 자이나교도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4 복음서를 강해했는데 일반 목사들보다 훨씬 나아요.

철학적 깊이가 있어요.

하지만 육(肉)이에요.

 

간디를 보세요.

그는 힌두교 신자에요.

하지만 성경의 산상수훈을 근거로 비폭력주의를 주창하여서 인도의 해방을 이끌어 냈어요.

그래서 인도의 성자 소리를 듣게 되었어요.

간디는 성경이 말하는 사랑을 인본주의로 이해했어요.

 

인간적으로 보면 탁월해요.

그러나 육이에요.

육은 무익하고 죽이는 것이에요.

영이라야 살려요.

 

그런데 그 영은 보이지 않아요.

이건 오직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에게만 보여요.

성령이 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드러난 것으로는 누구나가 해석을 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드러난 것 속에 감추어진 것은 오직 성령을 받은 성도들만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육에 속한 자들에게는 닫힌 문서이지만, 영에 속한 자들에게는 열린 문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게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에요.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다 성경이 해석되어지지 않아요.

교회 안에도 육에 속한 자가 있고 영에 속한 자들이 있어요.

 

육에 속한 자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요.

그래서 육에 속한 자들은 예수 믿으면 세상에 복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기복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들이 복 주는 우상 예수를 전하고 있어요.

 

말은 예수인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마귀에요.

목사들이 마귀의 말을 하고 있어요.

그 속에 예수님이 거하는 성도는 설교를 들으면 대번에 육인지 영인지 알아봐요.

 

자기 안에 성령이 이 설교가 성령의 설교인지 아니면 육적 설교인지 구분하고 알아봐요.

성령의 감동으로 증거 되는 설교를 들으면 영이 춤을 추고, 육적으로 전하는 설교를 들으면 영이 거부를 해요.

 

복음은 영과 육을 갈라내는 일을 해요.

너희와 저희로 갈라내요.

너희에게는 하늘에 소리로 들리고, 저희에게는 땅에 소리로 들려요.

마치 다메섹에서 예수님의 음성이 사울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천둥소리로 들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으로 보는 것과 영으로 보는 것이 다른 것입니다.

육으로 보면 세상 이야기이고 영으로 보면 교회 이야기에요.

 

그럼 오늘 본문을 어떻게 해석하여야 하는지 봅시다.

 

기초적인 질문을 합니다.

지금 이 요한계시록의 수신자가 누구입니까?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이지요.

 

그럼 요한계시록의 이야기가 어디에 관한 이야기가 될까요?

당연히 교회에 관한 이야기가 되겠지요.

물론 세상 이야기도 있어요.

그건 교회가 세상 속에 있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의 실상은 교회에 준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럼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말들도 교회에게 주신 것으로 이해하여야겠지요.

일차적으로 그렇게 보아야 한단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흰 말을 “예수그리스도다” 아니다 “적그리스도다” 라고 의견이 나누어져요.

그럼 묻습니다.

예수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를 어디에서 하는 이야기들인 것입니까?

 

교회입니까?

세상입니까?

교회이지요.

 

세상에서는 예수그리스도나 적그리스도에 관심이 없어요.

그들은 온통 이 땅에서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까 에만 관심이 있어요.

세상은 흰 말이 예수이든 마귀이든 신경 안 써요.

 

이러면 자연히 흰 말도 교회에 관한 이야기가 되겠지요.

이렇게 되면 흰 말을 예수그리스도라고 한다면 그 뒤에 나타나는 말들도 당연히 예수그리스도와 관련된 것으로 해석이 되어져야 하겠지요.

또한 반면에 흰 말이 적그리스도라고 한다면 나머지 말들도 적그리스도와 관련된 것으로 해석을 하여야 해요.

 

그럼 말들의 성격을 봅시다.

말들의 성격을 보면 흰 말의 정체를 알 수가 있어요.

역순(逆順)으로 보면 흰 말의 정체를 알 수가 있습니다.

흰 말은 잠시 뒤로 미루고 그 다음 말부터 살펴봅시다.

 

흰 말 다음에 나오는 말이 어떤 말인가요?

“붉은 말”이지요.

붉은색 말이 어떤 일을 하는가요?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다고 하지요.

이건 전쟁을 말합니다.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일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말은 어떤 말인가요?

“검은 말”이 나오지요.

 

무슨 일을 하는가요?

손에 저울을 가지고 밀 보리를 사고 팔지요.

이건 기근을 말합니다.

 

그 다음에 어떤 말인가요?

“청황색 말”이지요.

청황색 말이 무엇을 하는가요?

그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고 하지요.

 

자 봅시다.

 

붉은 색 말과 검은색 말과 청황색 말이 모두가 좋은 일을 합니까?

나쁜 일을 합니까?

재앙을 주는 나쁜 일을 하지요.

 

그럼 흰 말은 어떤 일을 할까요?

좋은 일을 할까요?

나쁜 일을 할까요?

나쁜 일을 하겠지요.

 

당연히 재앙을 일으키겠지요.

어디에 재앙을 일으킵니까?

교회에요.

 

이건 본문 속에서 나타나고 있어요.

 

8절을 보세요.

 

8절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저희가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었다고 합니다.

저희란? 앞에 말들을 이야기 하고 있어요.

저희가 무얼 한다고 합니까?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 죽이더라고 하지요.

 

검은 누구입니까?

붉은색 말이지요.

 

흉년은 누구입니까?

검은색 말이지요.

 

사망은 누구입니까?

청황색 말이지요.

 

이제 한 마리 말이 남았습니다.

흰 말입니다.

이를 뭐라고 하나요?

땅에 짐승이라고 하지요.

 

흰 말이 뭐라고요?

땅에 짐승입니다.

 

그럼 묻습니다.

성경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땅의 짐승이라고 한 적이 있나요?

없나요?

없어요.

요한계시록 13장을 보면 바다에서 올라온 적그리스도를 짐승이라고 합니다.

 

그럼 흰 말이 예수그리스도입니까?

적그리스도입니까?

적그리스도이지요.

 

금방 드러나잖아요.

그런데 이걸 2000년 동안 싸우고 있어요.

왜? 그런가 하면 요한계시록 19장에 가면 예수님이 백마를 타고 온다고 하니까 6장의 흰 말도 예수님일 것이라고 단정을 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면류관을 받았다고 하니까 이건 예수님이 쓴 면류관이다 그러는 겁니다.

아니에요.

여기서 말하는 면류관은 '스테파노스' 라고 하는데 이것은 운동 경기에서 이긴 자에게 주는 이 세상의 면류관이에요.

즉 월계관을 말해요.

 

그러나 19장에서 예수님이 쓰신 면류관은 '디아데마' 라고 하여 왕이 쓰는 왕관을 말합니다.

이는 만유를 발 아래 굴복 시키신 만왕의 왕만이 쓸 수 있는 왕관이에요.

예수님은 인간들이 주는 월계관을 쓰는 분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씌워주는 만왕의 왕이 쓰는 왕관을 쓰세요.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흰 말은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고 합니다.

이것은 미완료 시제로서 잠시 이긴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 완전히 이긴 것이 아니에요.

이는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에게 잠시 이기도록 허락하신 것을 말해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짐승이 잠시 성도들을 이긴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기고 이기려하지 않아요.

십자가에서 단번에 승리 하셨어요.

또한 이기려고 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이기신 분이에요.

이긴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오른 손에 있는 책을 취하시고 인을 떼시는 것입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보세요.

이긴 자들이라고 하지 이기려고 하는 자들이라고 하지 않아요.

성도들도 예수 안에서 이긴 자들이에요.

이기려고 하는 자들이 아니에요.

 

또한 예수님은 활을 가지고 일하시지 않아요.

칼을 가지셨어요.

활은 거짓 세력들이 가지고 미혹해요.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흰 말은 적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지 예수그리스도가 아니에요.

복음 운동이 아니고 미혹의 역사를 말합니다.

종말의 징조 중에 최고의 징조가 거짓그리스도들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종말의 징후는 마치 구약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망할 때의 영적 상태와 동일해요.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구약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패망하기 직전에 모습이 바로 거짓 선지자들이 창궐하여서 백성들을 미혹하여서 여호와를 떠나게 하였어요.

지금이 그 때와 동일해요.

 

요한계시록은 적그리스도 세력의 속임을 말해주고 있어요.

예수그리스도를 어린 양이라고 하는데,

적그리스도는 새끼 양이라고 해요.

 

어린 양이나 새끼 양이나 같아요.

이는 적그리스도가 예수그리스도를 흉내를 낸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진리가 그 속에 없는 성도들은 다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그럴듯 하니까요.

창세 이래로 역사 속에서 나타난 이단들은 모두가 그럴듯하게 나타났어요.

 

이걸 미혹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종말에 관하여 말씀을 하실 때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사람의 미혹을 조심하라고 하셨어요.

이는 이리가 양의 탈을 쓰고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즉 적그리스도는 양의 탈을 쓴 이리이므로 조심하라고 하셨어요.

거짓 종들이 광명의 천사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왜? 위장 할까요?

왜? 이리가 양의 탈을 씁니까?

양을 잡아먹기 위함이지요.

 

이걸 요한복음 10장에서는 강도라고 했어요.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나니 라고 하셨어요.

예수님의 양은 예수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의 음성을 대번에 알아 봐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적그리스도 세력을 풀어 놓는 것은 가짜 신자들을 추수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에 진짜 성도들이 핍박을 당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말합니다.

예수님의 양은 절대로 적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아요.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이단에 빠진다고 해서 애석해 하지 마세요.

그건 하나님께서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으니까 미혹에 던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2장을 봅시다.

 

살후 2:9-12=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잘 보세요.

악한 자들이 나타납니다.

이들이 어디에 나타납니까?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누구를 미혹합니까?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는 자들을 미혹합니다.

 

이 일을 누가 하십니까?

하나님이 하세요.

하나님께서 진리를 싫어하니까 비 진리를 따르도록 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을 귀가 할례를 받지 않았다고 해요.

그러니까 뱀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의 말을 진리처럼 듣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변에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있거들랑 몇 번 권면을 해서 안 들으면 그냥 두세요.

예수는 권유한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복음은 설득해서 들려지는 것이 아니에요.

 

그들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고,

이단을 설득하려고 하지 말란 말입니다.

그냥 믿어지는 대로 사세요 라고 그냥 두세요.

어쭙잖게 전도한다고 하다가 열 받지 말고,,,,

그럼 만수무강에 지장 있어요.

제 말 뜻을 알겠지요.

 

이 시대 수많은 이단들이 있어요.

셀 수가 없어요.

별 희한한 이단들이 다 있어요.

이 모두가 예수님이 재림하기 직전에 영적으로 흑암이 깊음 속에 있는 종말의 현상이에요.

새 날이 오기 전에 나타나는 징후들이에요.

 

이게 요한계시록의 내용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적그리스도의 비밀들을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미리 알려주신 것입니다.

속지 말라고,,

그럼 참 성도들은 속지 않아요.

 

다시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을 누구에게 주신 말씀입니까?

아시아의 일곱 교회이지요.

 

요한계시록의 주제가 뭔가요?

교회가 큰 환란을 당하게 될 것이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기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을 봅시다.

 

계 7:9-17=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13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하나님께서 144.000명을 인(印) 치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그림을 보여 줍니다.

가만히 보니까 능히 셀 수없는 수많은 무리들이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어린 양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이에 장로 중에 하나가 이 사람들이 누구들입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다고 합니다.

이게 계시록 14장에 가면 시온 산에 선 144.000명으로 나타나요.

 

그러니까 앞서서 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 각각 12.000명씩 인을 칠 때는 144.000명으로 말한 것을 확대 하여서 수많은 무리라고 다시 설명을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144.000명이 따로 있고 수 많은 무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같은 것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하실 때 네 후손이 하늘에 별과 같이 많다고 했습니다.

하늘에 별은 셀 수가 없어요.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의 12지파 속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을 144.000명으로 말해주고 있어요.

이걸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아브라함과 언약하신 것과 틀려져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하실 땐 분명히 하늘에 별과 같이 셀 수 없다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 인침을 받은 144.000명이 곧 셀 수 없는 허다한 무리들인 것입니다.

 

제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이들이 모두가 어디에서 나온다고 합니까?

큰 환란 속에서 나온다고 하지요.

그럼 묻습니다.

성도들이 누구로부터 환란을 당합니까?

적그리스도 세력으로부터 환란을 당하잖아요.

 

그럼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네 말들은 모두가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인가요?

아니면 적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긴가요?

적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이지요.

 

그럼 또 묻습니다.

오늘 본문이 교회 바깥 이야기입니까?

아니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까?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지요.

 

이건 예수님께서도 말씀 하셨어요.

 

마태복음 24장을 봅시다.

 

마 24:1-25=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3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7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 가지 말며 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9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눅 21:7-13= “저희가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8 가라사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며 때가 가까왔다 하겠으나 저희를 좇지 말라 9 난리와 소란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니라 10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11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12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에게 손을 대어 핍박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13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마태복음 24장은 예수님의 종말장입니다.

요한계시록과 같아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종말의 징조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뭐라고 하나요?

사람의 미혹을 받지 말라고 합니다.

이는 적그리스도 세력을 말해요.

그 다음에 난리가 나고 민족들이 서로 싸우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과 온역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를 일컬어 환란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24장은 요한계시록 6장의 내용과 동일해요.

 

잘 생각해 보세요.

적그리스도 세력들이 어디에 일어납니까?

교회이지요.

교회 바깥은 이미 마귀의 수중에 떨어져 있어요.

 

그럼 교회 안에 누가 적그리스도 세력으로 활동할까요?

육에 속한 목사들이지요.

그래서 멸망의 가증한 것들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주님이 재림 하실 때가 가까웠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들이 누구인가요?

계시록 6장식으로 말하면 흰 말들입니다.

왜? 흰 말이라고 할까요?

이는 위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걸 이리가 양의 탈을 쓰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양의 탈을 쓰고 있다고 했나요?

양을 잡아먹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은 목사의 밥이에요.

이 시대 대형 교회 목사들 보세요.

모두가 돈 버러지들이에요.

100% 라고 하면 그렇고 99%에요.

 

그들이 남긴 흔적들을 보세요.

자식들에게 교회 세습을 하고 전별금에다 죽을 때까지 한 달에 수천만 원씩 사례비 명목으로 뜯어가고 있잖아요.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목사가 사도 바울처럼 혹은 12 제자들처럼 복음을 전하면서 핍박과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고 한다면 자식을 목사 만들겠습니까?

교회를 세습시켜 줄까요?

턱도 없는 소리입니다.

신학교 간다고 하면 말릴 겁니다.

 

그럼 왜? 목사 만들어서 교회를 세습시켜줄까요?

평생 그런 직장이 어디에 있겠어요.

돈 많이 받지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지요.

호의호식하지요.

대접받지요.

 

그러니까 목사 하기 싫다는 놈도 강제로 신학교 보내서 교회를 세습 시켜주는 거에요.

큰 교회는 목사가 설교를 잘하고 못하고 상관없이 굴러가게 되어 있어요.

인간들이 굴러가게 만들어요.

 

그러니 교회가 대형화 하고 돈이 모이면 절대 부패하게 되어 있어요.

큰 교회들이 하는 짓들을 보세요.

교세 확장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잖아요.

건물 키우기 경쟁들이에요.

교인들의 의식 속에도 교회가 크면 진리의 터전인줄 알아요.

 

이게 이 시대 교회의 실상이고 교인들의 의식이에요.

이 시대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절간이에요.

십자가 도와 전혀 상관없는 설교를 하는데도 아멘하고 붙어 있는 교인들은 불자들이에요.

 

지난 번에 어떤 목사님이 그러는데 서울에 명성이 아주 높은 어떤 교회는 목사 전별금으로 수백억 원을 주고 그의 재산이 수천억 원이나 되고 매월 5천만 원씩 사례비로 주고 여 비서와 자동차 기사와 고급 아파트와 그 외 모든 것을 풀 옵션으로 제공한다고 해요.

 

전부 돈 지랄들을 하고 있잖아요.

교인들이 소경이니까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자들을 주의 종이라고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냥 쌍쌍으로 묶어서 브루스를 추게 만들었어요.

그러다가 불 구덩이게 빠지게 만든 것입니다.

 

에스겔 14장을 봅시다.

 

겔 14:10절 “선지자의 죄악과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이 같은즉 각각 자기의 죄악을 담당하리니”

 

이스라엘 속에 어떤 선지자가 유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유혹하십니다.

그러자 그에게 묻는 자들이 일어납니다.

그럼 그에게 묻는 자도 그와 동일하게 취급을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육에 속한 목사를 따르는 자는 그도 육에 속한 자라는 말입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니까 따르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거짓 선지자나 그에게 묻는 자는 동일하게 대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걸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고 합니다.

소경이니까 거짓 목사들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가짜 신자들을 추수하기 위하여 적그리스도 세력인 가짜 목사들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 자들을 보세요.

전부 거룩하고 점잖지요.

얼마나 멋집니까?

흰 말들이잖아요.

 

그래서 구원 받은 영혼들이 데모를 하는 겁니다.

저 놈들 빨리 작살내 달라고,,

자꾸만 속이니까,,,

 

흰 말이 뛰니까 그 다음에 나타나는 것이 뭔가요?

이단 전쟁이 시작이 되고

이단 전쟁이 시작 되니까 말씀에 기근이 일어나고,

말씀에 기근이 일어나니까 먹지 못해 죽어가는 것입니다.

 

이건 육적으로는 세상의 모습이기도 해요.

평화를 가장한 자들이 일어나서 자기하고 사상과 이념을 달리하는 자들을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죽이는 전쟁을 하고 있어요.

그럼 난민들이 발생하고 먹지 못하고 각종 전염병으로 죽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무슬림과 서방 세계의 전쟁이 잘 보여주고 있어요.

그 이면엔 종교 전쟁이에요.

이슬람과 기독교 전쟁이에요.

이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스마엘과 이삭의 싸움이에요.

아브라함은 이걸 미리 보고서 아파했어요.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먼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해석을 하여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는 이단 전쟁이 극심해요.

서로가 이단이라고 해요.

자기 하고 다르면 이단이에요.

 

서로가 이단이라고 하니 진리에 서 있지 못하는 교인들은 우왕좌왕 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큰 교회로 몰리는 거에요.

큰 교회는 정통이겠지 하고 말이에요.

그곳이 사단의 회인데 말이죠.

 

아니 요한계시록의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보세요.

 

사단의 회라고 하고,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고,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이 일어난다고 하잖아요.

 

이 자들이 누구를 죽입니까?

성도들을 죽여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있는 참 자기 백성들을 위로하고 소망 삼기 위하여 요한계시록을 주신 것입니다.

 

천상의 모습을 보여주고서 이겨내라고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이미 구약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 주셨어요.

구약에도 네 가지 말들이 뛰었어요.

네 말들이 뛴 증상들이 나타났어요.

 

예레미야 14-15장을 봅시다.

 

렘 14:10-16=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하므로 나 여호와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 하시고 11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12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13 이에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이 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시리라 하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15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16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인하여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입을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 아내와 그 아들과 그 딸도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렘 15;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치라 2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망할 자는 사망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 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 4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바를 인하여 내가 그들을 세계 열방 중에 흩으리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백성들을 미혹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신다고 하지요.

 

잘 보세요.

거짓 선지자가 출현했어요.

이걸 요한계시록 6장에서 흰 말이 뛴 겁니다.

그러자 붉은 색 말인 칼이 따르지요.

그리곤 그 뒤로 검은 색 말인 기근이 따릅니다.

그리고는 청황색 말인 염병이 그들을 죽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망할 자는 사망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하시지요.

 

이게 어디에서 일어나는 사건입니까?

이스라엘이에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속에 일어나게 하신 사건이에요.

 

이 때가 언제인가 하면 바벨론에 망하기 직전이고 포로 잡혀 갈 때에요.

예레미야는 바벨론 포로 직전에 이스라엘이 망할 것을 예언한 선지자이고,

에스겔은 바벨론에 망하여 포로로 잡혀간 선지자에요.

 

에스겔 14장을 봅시다.

 

겔 14:12-23=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13 인자야 가령 어느 나라가 불법하여 내게 범죄하므로 내가 손을 그 위에 펴서 그 의뢰하는 양식을 끊어 기근을 내려서 사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는다 하자 14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5 가령 내가 사나운 짐승으로 그 땅에 통행하여 적막케 하며 황무케 하여 사람으로 그 짐승을 인하여 능히 통행하지 못하게 한다 하자 16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겠고 그 땅은 황무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7 가령 내가 칼로 그 땅에 임하게 하고 명하기를 칼아 이 땅에 통행하라 하여 사람과 짐승을 거기서 끊는다 하자 18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9 가령 내가 그 땅에 온역을 내려 죽임으로 내 분을 그 위에 쏟아 사람과 짐승을 거기서 끊는다 하자 20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오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2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네 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온역을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중에서 끊으리니 그 해가 더욱 심하지 않겠느냐 22 그러나 그 가운데 면하는 자가 남아 있어 끌려 나오리니 곧 자녀들이라 그들이 너희에게로 나아오리니 너희가 그 행동과 소위를 보면 내가 예루살렘에 내린 재앙 곧 그 내린 모든 일에 대하여 너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 23 너희가 그 행동과 소위를 볼 때에 그들로 인하여 위로를 받고 내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모든 일이 무고히 한 것이 아닌 줄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범죄 하니까 그 땅에 네 가지 재앙을 내립니다.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온역입니다.

 

칼은 붉은 색 말이고,

기근은 검은 색 말이고,

온역은 청황색 말이고,

사나운 짐승은 흰 말이에요.

 

그러니 요한계시록의 네 말이 에스겔에서 뛴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요한계시록은 광의적인 의미에서는 어느 시대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언적인 의미에서는 예수님 재림 직전에 교회들에게 주신 말씀이에요.

예수님의 재림 직전의 교회의 모습이 라오디게아 교회 모습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이 어떤가요?

미지근해서 확 토해내고 싶을 지경이라고 하지요.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이런 상태를 두 사이에 머뭇거린다고 해요.

 

마치 엘리야 시대 이스라엘과 같아요.

엘리야 시대 이스라엘의 모습이 어떠했는가요?

바알과 아세라를 하나님으로 믿고 있을 때입니다.

이걸 요한 계시록에서는 이세벨의 교훈을 따른다고 합니다.

 

이세벨의 교훈이란? 바알과 아세라를 하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바알은 풍요의 신이고, 아세라는 다산의 신이에요.

이 시대적인 의미로 보면 떡을 주는 신이에요.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를 복 주는 예수로 믿고 있다는 말입니다.

 

엘리야 시대가 그랬어요.

그래서 엘리야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 머뭇거리느냐?

바알이 하나님이든지 내가 믿는 여호와가 하나님이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갈멜산에서 누가 믿는 신이 참 하나님인가 내기하자고 하였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은 그들이 믿는 바알 신의 이름을 부르고, 엘리야는 엘리야가 믿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믿는 신이 응답을 하십니다.

엘리야가 믿는 신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란? 언약을 위한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는 하나님이 아니에요.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하나님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이 자기들 소원을 들어주는 신으로 둔갑을 시켜 놓은 것입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따르는 겁니다.

왜냐하면! 떡을 준다고 하니까요.

 

이게 이 시대 기복주의 신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복 주는 예수!

소원 성취해 주는 예수!

나를 지켜주는 예수!

 

이게 바로 우상이거든요.

지금 이 시대 교회가 이 우상 예수를 가르치고 있어요.

엘리야의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고 바알의 하나님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갈 때의 모습이 그러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들을 환란 가운데 던져서 그들의 죗값을 치르게 하셨어요.

이게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온역입니다.

 

칼은 붉은 색 말이고,

기근은 검은 색 말이고,

온역은 청황색 말이고,

사나운 짐승인 흰 말들을 뛰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진짜 신자들이 나타나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환란에 던지니까 그 속에서 진짜와 가짜로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가짜들을 동화되어 버리고 진짜들은 기어 나온단 말입니다.

이렇게 그들에게 동화 되지 않고 기어 나오는 자들이 남은 자들이고 이긴 자들인 것입니다.

 

거짓 목사들이 일어나야 해요.

그래야 진짜와 가짜로 갈라져요.

그러니까 네 가지 말들을 뛰게 하신 것은 진짜와 가짜를 갈라내고자 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인 것입니다.

 

에스겔 14장 22절을 보세요.

 

22절 “그러나 그 가운데 면하는 자가 남아 있어 끌려 나오리니 곧 자녀들이라 그들이 너희에게로 나아오리니 너희가 그 행동과 소위를 보면 내가 예루살렘에 내린 재앙 곧 그 내린 모든 일에 대하여 너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내린 네 가지 재앙 속에서 나오는 자들이 있다고 하지요.

이들이 곧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걸 요한계시록 7장에서는 수많은 흰 옷 입은 무리들이 큰 환란에서 나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타락된 교회를 회개시키고 그 안에서 자기 백성들을 찾아내기 위하여 교회에 환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 환란이 거짓 선지자들로 하여금 핍박당하는 것입니다.

이걸 불 같은 시련이라고 합니다.

정금 같이 나오게 하는 시련이에요.

 

에스겔 9장을 봅시다.

 

겔 9:1-11= “그가 또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가라사대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로 각기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2 내가 본즉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 좇아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살륙하는 기계를 잡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 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3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4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5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7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 8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는지라 엎드리어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9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찼나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 11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먹 그릇을 찬 사람이 복명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 하더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왜? 바벨론에 포로 잡혀 가게 하였나요?

이는 그 땅에 피가 가득하고 불법이 찼다고 합니다.

피가 가득하다는 것은 참 종들을 핍박하였다는 말입니다.

불의가 가득하다는 말입니다.

 

이 때문에 탄식하는 자들이 있어요.

이들이 누구인고 하니 가증한 일로 탄식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살육하는 기계를 보내서 탄식하는 자들의 이마에 표를 하게 하시고 표가 없는 자들을 성읍 안에서 심판을 단행하십니다.

 

교회 안에서 가증한 일이 무엇인가요?

예수님께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때가 종말의 따라고 하셨지요.

멸망의 가증한 것이 누구인가요?

적그리스도에요

그의 추종자들이에요.

 

거짓 목사들이 강단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 한단 말입니다.

어떻게 말씀을 도적질 합니까?

이는 광야에서 마귀가 예수님에게 하신 것처럼 해요.

 

마귀는 예수님에게 네가 만약 하나님 아들이라고 한다면 세상에서 으뜸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라고 합니다.

이는 자기 가치를 챙기라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영웅호걸이 되어서 하나님 아들다움을 드러내야 하지 않겠느냐 라고 합니다.

 

마귀는 복음을 이용하여 자기 가치를 챙기라고 합니다.

자기 이름을 내라고 합니다.

이게 바벨주의고 네피림 사상이거든요.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이 사는 목적은 하나님 말씀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산다고 합니다.

이는 언약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성도가 사는 이유는 언약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귀와 예수님의 차이가 뭔가요?

마귀는 자기 존재로부터 출발하고 있고,

예수님은 언약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어요.

마귀는 내가 먼저이고 예수님은 언약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마귀는 하나님의 언약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살아가는 궁리만 하게 한단 말입니다.

이게 바로 짐승들의 삶이에요.

짐승은 배를 위하여 사는 자들이에요.

그래서 사도 바울로 자기 배를 위하여 사는 자들을 십자가의 원수라고 했어요.

 

그럼 교회 안에 가증한 것이 무엇인지 드러났습니다.

교인들의 관심사를 떡에 붙잡아 두는 것입니다.

떡을 위하여 예수를 찾게 한단 말입니다.

 

이게 바로 우상 숭배에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잡힐 때 모습이 바로 이러한 모습이었어요.

거짓 선지자들이 떡을 위하여 거짓 평강을 전한 것입니다.

 

에스겔 13장을 봅시다.

 

겔 13:17-21= “너 인자야 너의 백성 중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부녀들을 대면하여 쳐서 예언하여 18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고자 하여 방석을 모든 팔뚝에 꿰어 매고 수건을 키가 큰 자나 작은 자의 머리를 위하여 만드는 부녀들에게 화있을진저 너희가 어찌하여 내 백성의 영혼을 사냥하면서 자기를 위하여 영혼을 살리려 하느냐? 19 너희가 두어 웅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지어서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 20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새를 사냥하듯 영혼들을 사냥하는 그 방석을 내가 너희 팔에서 떼어 버리고 너희가 새처럼 사냥한 그 영혼들을 놓으며 21 또 너희 수건을 찢고 내 백성을 너희 손에서 건지고 다시는 너희 손에 사냥물이 되지 않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잘 보세요.

두어 웅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얻기 위하여 거짓말을 한다고 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의 영혼을 사냥한다고 합니다.

 

이에 하나님께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냥하지 못하도록 환란에 던져 넣는 것입니다.

환란에 던져 지면 떡을 위하여 사는 자와 언약을 위하여 사는 자들이 구분이 되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에 환란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 6장의 네 가지 말이 뛰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적그리스도 세력들과 그에 따른 일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이걸 세상에 확대하여서 살펴봅시다.

 

교회가 왜? 타락합니까?

이는 세상 것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이 세상은 아담의 범죄 후에 하나님께서 저주 하신 곳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 사실을 모릅니다.

이 땅에서 영생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이 세상에서 빼내는 일을 하십니다.

 

창세기 1장을 보세요.

1절을 보면 하나님이 천지(天地)를 창조 하십니다.

그런데 2절을 보면 하늘은 온데 간데 없고 땅만 나타납니다.

그 땅의 모습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입니다.

한마디로 지옥입니다.

 

이건 아담이 범죄하고 난 후 이 땅의 모습입니다.

저주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세상을 지옥으로 은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지옥에 자기 백성들이 있습니다.

이건 마치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에 종살이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들은 언약의 후손으로서 애굽에 살 사람들이 아닙니다.

약속의 땅에 살아갈 자들입니다.

 

그런데 지옥 같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하신 때가 되어서 모세를 보내어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빼내오도록 하셨습니다.

 

이건 마치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백성들을 하늘로 빼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자기 백성들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땅에 기운으로 살고자 한단 말입니다.

분명이 그 땅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저주의 기운이 흐르고 있는데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를 알려 주는 일을 합니다.

그것이 애굽에 열 가지 재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으로 애굽이 이런 곳이다 라고 알려 주신 것입니다.

애굽이 어떤 곳이냐 하면 죽음의 땅입니다.

 

피, 개구리, 이, 파리,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 장자의 죽음으로 보여 주셨어요.

 

출애굽기 7장부터 12장까지를 보면 나일 강 물이 피가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서 장자가 죽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건 바로를 혼내는 징벌적 의미를 훨씬 넘어선 영적 의미를 함유하고 있어요.

 

애굽은 세상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애굽에 내려진 열 가지 재앙은 곧 이 세상의 본질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이 이런 곳이다! 라고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들이 마시던 물이 죽음의 피였고

그들이 떡이라고 먹었던 것이 실상은 개구리 밥이고,

그들이 사는 곳이 어둠이라고 알려 줍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의 삶도 악질과 독종처럼 고통과 아픔의 연속이고,

기껏 농사 지어놓은 것들을 메뚜기가 와서 먹지 않나,

그렇지 않으면 우박이 내려서 졸지에 망하게 해요.

각종 사고로 편할 날이 없어요.

 

이 땅의 삶이란? 재앙으로 얼룩진 삶이에요.

천재지변(天災地變)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어요.

살만한 곳이 아니란 것을 지구가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종말의 징조를 말씀하시면서 민족과 민족이 싸우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과 온역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는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 아니란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거든 산으로 도망가라고 하지요.

 

이스라엘에게 있어 산이란? 예루살렘을 말해요.

예루살렘은 해발 800m 위에 건설된 도시에요.

이곳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친 곳이에요.

나중에 솔로몬이 여기에 성전을 지었어요.

 

그래서 성경에서 산을 말할 때는 예루살렘 성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를 영적으로 하면 예수그리스도 안입니다.

그러니까 종말에 징조를 말씀 하시면서 네 가지 말들이 뛰거들랑 산으로 도망가라는 말은 예수그리스도에게 나아가라는 말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어디에 계신가요?

하늘나라에 있어요.

그러니까 산으로 도망가라는 말은 예루살렘이나 다른 어떤 산으로 도망가라는 말이 아니고 세상 바라보지 말고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은 멸망할 곳이니 미련두지 말고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살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을 보면 구원 받은 144.000명이 어디에 있나요?

시온산에 있지요.

그 시온 산이 바로 하늘 예루살렘이에요.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을 설명하고자 있는 모델 하우스에요.

그러니 땅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도망 가도 살 수가 없어요.

하늘 예루살렘으로 도망가야 살아요.

그 하늘 예루살렘이 바로 예수 안인 겁니다.

 

모세가 애굽에 있는 백성들을 광야로 빼낸 것은 산으로 빼낸 것과 같아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뭐라고 합니까?

내 백성을 애굽에서 빼내와 이 산에서 나에게 경배하라고 하지요.

 

이 산이 어딘가요?

모세가 사명을 받던 호렙산이에요.

다른 말로 시내산이에요.

 

그래서 모세가 출애굽 한 백성들을 시내산으로 인도 한 것입니다.

시내산으로 인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 시내산 위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는 곧 이스라엘이 가야할 진정한 산은 하늘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늘이 광야에서는 보이지 않는 땅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이 광야에서는 요단강 건너에 있는 가나안인 것입니다.

막상 가나안에 들어가니까 하나님은 너희들이 살 땅은 이 세상에 없다고 하면서 산 꼭대기에 성전을 짓고선 하나님께 경배하도록 하십니다.

 

산 아래서 사는 백성들은 산 위에 세워진 성전을 보면서 우리가 장차 가야할 곳은 저 하늘에 있다는 것을 소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게 이스라엘에게 있어 신앙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말씀을 따라서 가나안으로 들어갔더니 하나님께서 너에게 약속한 땅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고 알려 주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하늘에 있는 성을 바라보고 살았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살면서 갖은 고초를 겪습니다.

그러면서 하늘에 있는 한 성을 바라보면서 살았습니다.

그것이 가나안 땅에서 장막 생활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거부(巨富)입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 건물을 세우고 살지 않았어요.

이는 이 땅은 영원한 도성이 아니란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도성은 하늘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던 것입니다.

 

이게 아브라함의 신앙입니다.

그럼 그 아브라함의 후손들도 아브라함과 같은 자세로 이 땅을 살아야합니다.

그래야 아브라함 후손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브라함 후손들이 지금 애굽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서 애굽에 실상을 알려주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게 열 가지 재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봐라!

너희들이 사는 곳이 바로 이런 곳이다!

그래 이런 곳에 천년만년 살고 싶으냐!

떠나야 하지 않겠느냐? 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태어나고,

애굽에 교육을 받고,

애굽에 음식을 먹고,

애굽에 것만 보았어요.

 

그들은 애굽이 전부 인줄 알았어요.

그 당시에는 애굽이 가장 잘 사는 나라였어요.

그러므로 이 보다 더 좋은 세상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모세가 와서 이 땅은 멸망 받을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떠나자고 합니다.

 

지금 요한계시록 6장이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핍박 가운데 있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말합니다.

얘들아!

너희가 사는 곳이 이런 곳이란다.

 

거짓이 난무하고,

전쟁이 끊이지 않고,

기근이 있고,

온갖 사건과 사고와 질병이 난무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곳에 오래 살고 싶으니,

빨리 떠나야 하지 않겠니,

저 위 하늘을 봐라,

네 동무들이 있는 저 천국을 보란 말이다.

 

저기가 너희들이 살 곳이란다.

그러니 이 땅에 미련두지 말고 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라고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비록 땅에서 버림을 당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하늘로 가기 위한 것이니 낙심하지 말고 도리어 기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린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보아야 할 것은 천국입니다.

땅을 보지 마세요.

땅에 일어나는 것을 보지 마세요.

그건 모두가 성도로 하여금 천국을 소망케 하는 촉매 역할을 하는 것들입니다.

 

성도는 고난이 클수록 천국을 소망하게 되어 있어요.

어떻게 하면 고난을 피하고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까 라고 고민하는 것은 성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창세전 언약을 보면 하나님은 애초부터 성도에게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시기로 작정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성도는 땅에 복을 구하지 않고 하늘에 복을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그렇게 간섭을 해 나가십니다.

 

그러니 세상 것으로 위안 삼고자 하지 말고 하늘에 소망으로 위안을 삼으시기 바랍니다.

잠시 잠간후면 오실이가 오십니다.

오고 계십니다.

우리를 그 나라로 데리고 가시기 위하여 주 예수께서 오십니다.

그 날을 사모하면서 현실을 이겨내시길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아프다고 하여도 잠시 지나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알게 하소서. 그리고 이 세상은 멸망할 곳이고 영존하는 곳은 하늘에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바라는 마음이 관념이 되지 말게 하시고 믿음으로 바라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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