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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들과 맺은 ‘피의 연대기’
카테고리 : 장애 有感(유감) | 조회수 : 1492018-08-30 오후 8:16:00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한다. 특별한 목적은 없다. 그저 상대와 담소 나누는 시간이 행복할 뿐이다. 하여 상대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거리가 멀어도 개의치 않는다. 길에서 버리는 시간을 오히려 소중하게 생각한다. 특정 날짜와 시간 등 만남에 필요한 결정도 대부분 상대 의견에 맞춘다. 하나의 세계와 조우하기 위해 이 정도의 노력을 들이는 건 마땅한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만남은 항상 밝은 에너지를 선물한다.

 

허나 장소를 정하는 문제는 양보하지 않는다. 약속 며칠 전이나 몇 시간 전에 만남이 예정된 지역을 찾아간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을 물색하기 위해서다. 괜히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만나 하염없이 다니며 상대를 힘들게 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까닭이다.

 

고착화된 습관의 기저에는 불편함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누군가를 만나 음식점이나 카페를 찾아다닌 기억은 자연스레 미안한 감정이 들게 했다.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통로였다. 찌는 더위로 무장한 여름엔 찐득찐득한 땀을 쏟으며 걷게 한 게 죄스럽고, 뼈를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선 상대가 감기라도 걸리지 않을까 식은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에서 순위권에 들 정도의 고층 빌딩을 지을 수 있을 만큼 우리나라의 기술수준은 뛰어나다. 마음만 먹으면 모든 공간의 장애물들을 제거할 수 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이 대표적인 예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이 역에서 5호선과 4호선으로 환승하려면 휠체어 리프트를 타야 했다. 역무원은 역의 구조상 엘리베이터 설치가 불가능해서 그런 것 아니겠냐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환승 구간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결국 기술의 문제라기보다 의지의 부재가 원인이었던 거다.

 

같은 건물을 사용하는 상점들 중에도 경사가 설치된 곳이 있고, 없는 곳이 있다. 태초에 지어지길 턱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일부 점포의 사장님들은 경사를 만들어 장애인들의 접근성을 보장한다. 허나 여전히 그 수가 미미한 것이 장애인들이 느끼는 현실이다. 게다가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보도블럭이나 점자 안내판을 구비한 일반 건물은 거의 없다. 도와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라면 그건 잘못된 판단이다. 도움을 생각하는 건 최후에 할 일이다.

 

중앙일보사의 입구엔 작은 턱이 있다. 처음 회사에 간 날엔 주위사람들이 휠체어를 들어주었기에 무사히 건물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회사 입구엔 작은 경사가 생겼다. 휠체어의 진입이 어렵다는 것을 목도한 논설위원이 주필에게 이야기해서 만든 거다. 그는 그동안 얼마나 장애인 접근권에 대해 생각이 없었는지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부끄러움을 숨기지 않았다. 6년 전 일이다.

 

독일에 갔을 때 5층짜리 아파트에 살던 장애인을 만났었다. 해당 건물은 계단으로 이뤄져있었다. 그런데 장애인이 이사 오자 아파트에 엘리베이터가 생겼단다. 한 사람의 불편함도 소흘히 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중앙일보에서 발견한 모습은 우리 사회에도 희망이 있음을 보여줬다. 일부러 장애인의 접근권을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몰라서 혹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장애인을 배려한 공간을 만들 수 없었다고 믿는다.

 

얼마 전 모임장소를 찾았다가 되돌아오는 경험을 했다. 엘리베이터가 너무 작아 휠체어가 들어가지 못해서다. 한 비장애인은 접근이 어려워 모임에 불참하는 현실을 어이없어했다. 장애인들에게 그 어이없음은 현실인데 말이다. 장애인의 접급권 보장을 위해 모든 건물을 지을 때, 유니버셜디자인을 필수로 도입해야 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철없던 시절엔 나 하나 피 보면 되는 것이라고 여겼었다. 그러나 피 흘리고도 가만히 있으면 후대에게도 피를 전해주는 거란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의 세계는 우리가 변화시켜야 한다. 이게 피의 연대기를 종식시키는 방법이다. 건물들과 피로 맺은 악연을 끊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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