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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갇힌 불꽃
카테고리 : 게재 | 조회수 : 122922010-01-23 오후 4: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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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갇힌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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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isdom of Heschel
 
 

어둠 속에 갇힌 불꽃의 저자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1907-1972)에 대하여
"내 중심되는 관심사는 인간 상황이다." 위대한 창조적 유다인 학자이자 사상가의 한 사람인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Abraham Joshua Heschel)은 1907년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학자 가문의 한 후예로서 그는 일찍이 토라와 <탈무드>를 경건한 생활태도와 함께 몸에 익혔다. 1927년 베를린 대학교에 입학하여
1933년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교 학생이면서 그는 동시에 유다민족연구학술원
(Hochschule fur die Wissenschaft des Judentums)에서 연구생활을 계속하였다. 1936년,
그의 학위 논문 "예언자"(Die Prophets)가 출판되었는데 이것이 1962년에 출판된 그의 고전적인 저자 <예언자들>(The Prophets)의 뼈대를 이루었다. 1937년 마르틴 부버는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 있는 유다인 레르 하우스의 자기 후계자로 헤셀을 지명하였다. 그러나 반유다주의의 먹구름이 짙어지면서 1938년 폴란드 시민권을 지닌 유다인은 독일에서 추방되었다. 1939년 바르샤바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그는 런던으로 떠났다. -그것은 독일의 폴란드 점령과 대학살이 있기 두 달 전이었다. 헤셀은 나찌의 손아귀를 가까스로 벗어났다. 그는 자기 자신을 "내 동족이 타 죽어간... 수백만의 인명이 악의 위대한 영광을 위하여 사라져간... 불길에서 건짐받은 타다 남은 나무"라고 했다. 1940년 그는 신시내티의 헤브루 유니온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 미국에 왔다. 그것에서 그는 5년간 머물며 철학과 라삐 문학을 가르쳤다. 1945년부터 죽을 때까지 그는 아메리카 유다신학교에서 첫 번째의 해리 에머슨 포스딕 객원 강좌를 맡았다. 그는 또한
미네소타, 아이오와, 스탠퍼드 대학교들에서도 강의하였다. 라삐 헤셀은 온 인류를 사랑한 경건한 유다인이었다. 언젠가 그는 "내 중심되는 관심사는 인간 상황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오늘날 현대인의 고뇌는
정신적으로 넋을 잃은 인간의 고뇌라고 단언한다." 그는 또 이렇게도 말했다. "유다 법의 중심 주제는 제도가 아니라 인간이다… 영성 생활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에 있고, 일상적인 행위로도 오를 수 있다. 종교는 특별한 기회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법 이해를 요약하였다. "불의한 행동이 비난받는 것은 법이 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헤셀은 모든 인간의 관심사에 늘 앞장서 있었다. 1965년 봄에는 앨라배마의 셀마에서
마틴 루터 킹과 함께 행진하였다. 그는 미국의 베트남 정책을 반대하는 항거자들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그는 수많은 인권 행진과 평화시위에 참여하였다. 1967년의 6일 전쟁이 끝나자 그는 <이스라엘 : 영원의 메아리>라는 책을 써서 그 역사적인 순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세계의 유다인들에게
소련에 사는 유다인들을 돕자는 호소를 맨 처음 한 인물이었다. 그는 기독교-유다교 대화를 추진한 강력한 에큐메니스트였다. 그는 자주 바티칸에 초대받아 이탈리아의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연설하였다. 1969년 치명적인 심장마비를 겪었으면서도 그는 인권 옹호를 위한 정열적인 활동을 계속하였다. 인간에 관한 모든 것이 그의 관심사였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얽혀 들어가는 것,
행동하고 반응하는 것, 놀라고 응답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존재한다는 것은 그가 알거나 모르거나 우주의 드라마의 한 배역을 맡는 것이다." 또,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삶이란 다른 모든 존재들과의 관계에서 자기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책임있게 이해하는 것도
그 속에 포함된다." 또, 다른 곳에서는 "우주의 하느님은 인간의 삶을 관심하는 영이시다… 우리가 하느님을 이해하려다가 흔히 실패하는 까닭은 우리의 생각을 끝없이 넓게 펼칠 줄을 몰라서가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충분히 닫을 줄을 몰라서이다. 하느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분을 우리 마음 속의 어떤 대상으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 안에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라고 썼다. 그가 갑자기 숨을 거두자 세계 각처에서
그에게 바치는 조사(弔詞)가 날아왔다. 미국에서는 예수회에서 발행하는 <아메리카>가 1973년 3월 10일의 온 지면을 헤셀 추모로 채웠다. 편집자는 이렇게 말했다. "독자 여러분은 저마다
유다주의의 살아있는 전통과 그 힘, 성스러움 그리고 사랑에 관하여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이 이야기해 줄 때 배운 바가 있었을 것이다. 유다인들과 기독교인들과 마호멧 교도들이 숭배하는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를 평화스럽게 서로 이해하고 존경하면서 함께 살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빈다." 같은 지면에서 존 C. 베넷 목사는 이렇게 썼다. "아브라함 헤셀은 전 미국의 종교 공동체에 속한 인물이었다. 이 일에 그보다 더 진실했던 사람을 나는 모른다…." 베넷 박사는
헤셀이 유니온 신학교에서 객원 교수로 있을 때 학장이었다. 유다 신학교의 프리츠 A. 로드차일드 교수는
<아메리카>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학문적인 저술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답고 신선한 귀절을 그의 글에서 읽는다. 그의 생각들은 번쩍이는 경귀와…
정신적인 보석… 안에서 빛나고, 쉽게 풀려나오는 문장 뒤에는 우리가 그 껍질을 벗기고
깊숙이 파고 들어가 살펴보아야 알 수 있는 복잡하고 심오한 생각들이 감추어져 있다." …1972년 12월 23일,
라삐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은 잠든 채 숨을 거두었다. 루스 마커스 굿힐 (<헤셀의 슬기로운 말들>의 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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