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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날
카테고리 : 나의 이야기 | 조회수 : 1172020-01-19 오후 9:20:00

작은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날

 

강민호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지만 지금도 작은아버지께서 돌아가시던 그날을 생각하면 정말로 신기하였다.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심근경색으로 쓰려진 작은아버지께서 회복되기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서 나는 금요심야 예배를 드릴 작정으로 오후에 교회 갔었다. 그러나 막상 저녁 때 씀이 되니까 예배를 드려야 되겠다는 마음이 복선처럼 완전히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약주와 담배를 좋아하시는 작은아버지께서는 그날부터 오일 전에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쓰려졌다. 나는 큰고모에서 그 연락을 받은 후 내내 작은아버지께서 회복되기를 바라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 전날에도 큰 고모께서 연락이 왔어 작은아버지가 좋은 곳으로 갈게 기도하라고 할 때, 부처님을 믿은 사람이 그런 말을 안 되다고 면박을 주었던 것도 작은아버지께서 회복되기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믿음이 없지만 안 드리던 금요심야 예배를 드리면 작은아버지께서 회복될까 싶어서 오후에 교회로 갔다. 그런데 어느 마법사가 마법을 부리는 것처럼 간절했던 그 마음이 저녁 때 씀 되자 완전히 없어졌다. 그냥 친한 성도들하고 저녁만 먹고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저녁 먹으려고 우리교회 옆에 있는 이바돔감자탕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낮데 없는 연불소리가 들어왔다. 어릴 때 집에서 많이 들으면서 성장했던 탓인지는 몰라도 그 연불소리가 나는 마음을 에어백처럼 감싸 안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느낌이 들어도 나는 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성도들과 저녁 먹고 집에 막 도착 했을 때 고향인 제주도에 있는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작은아버지께서 저녁 때 쯤에 끝내 돌아가셨다는 연락이었다. 씻고 할머니 모시고 서귀의료원에 갈 거라고 하는 중이라는 말도 했다. 나는 동생에게 할머니를 위로 잘해주라고 이번 일로 할머니께서 기력이 약해지지 않게 잘해드리라고 말하고 통화를 끝냈다. 동생하고 통화를 끝내고 이바돔감자탕에서 연불소리가 들었던 이유를 알았다. 천벌(天罰)을 받을 생각이지만 나의 종교적 믿음의 고향처럼 생각하고 있다. 찬송가보다 연불소리를 들게 될 때 내 마음이 더 평안해지곤 한다.

 

작은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받기 전에 연불소리가 들게 되어서 작은아버지의 운명했다는 소식을 들렸을 때도 큰 충격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인생 마지막에는 작은아버지의 본래 모습처럼 너그럽고 좋게 떠나가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 작은아버지께서는 좋은 분이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 어린이 날이면 나와 동생 데리고 소풍 가주셨고 명절에는 새 옷도 매번 사주셨다. 내가 제주도에서 특수학교 다닐 때도 작은아버지께서 통학도 많이 도와주었다.

 

좋은 사람은 세상을 떠나갈 때 오래 병원생활하지 않고 떠나갔다는 말처럼 작은아버지께서는 가족들이 자신을 간호하면서 육체적, 심리적,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경험하지 않고, 회복될 것이라는 회망고문에 시달리지 않게 위해서다. 작은아버지께서도 할머니와 작은어머니, 나를 포함한 모든 가족들이 오래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게 되면 몸과 마음이 힘들어할까봐 일찍 돌아가신 것이다.

 

나는 그런 작은아버지께 배은망덕한 행동들을 많이 했다. 작은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 잘 되지 않아서 자주 거의 90십이 다된 할머니에게서 돈 빌러가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했다. 가끔은 작은아버지 면전에다 캥거루족의 표본이라고 비난 하였다. 그때부터 나는 작은아버지와 사이가 멀어졌고 5년부터는 작은아버지와 완전히 멀어졌다. 우리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한 달쯤 후에 작은아버지께서는 고향 집을 은행에 담보로 잡혀서 대출 받게 해달라고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이유는 작은아버지께서 사용해왔던 굴착기가 너무 낡고 오래되어 자주 잔고장이 많이 일어났다고 하면서 새 굴착기를 구입 할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작은아버지께서는 고향 집을 담보로 잡혀서 대출 받은 돈은 열심히 일해서 빠른 시일 안내 갚겠다고 말씀 하였다.

 

하지만 나는 작은아버지의 그 말씀을 믿지 않았다. 예전에도 동생 이름으로 은행에서 돈을 밀러서 갚지 않은 바람에 동생이 몇 년 동안 신용불량자가 되어 고생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었다. 만의 하나라도 작은아버지께서 대출 받은 돈을 갚지 못한다면 고향 집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작은아버지의 간절한 부탁을 냉정하게 외면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우리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고향 집을 담보로 잡혀서 대출을 받겠다는 작은아버지에게 몹시 서운 하였다. 큰 아들을 잃은 할머니를 위로해드리고 나와 동생들에게 아버지 대신 집안 어른으로써 힘이 되어주어야 하는 작은아버지께서 고향 집을 은행에 담보로 해서 대출 받겠다는 말씀은 내게 또 한 번 큰 상처를 주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작은아버지와 사이가 멀어졌고 5년이 지나도록 거의 얼굴 보면서 대화해보지 않았다. 큰 고모에게서 작은아버지께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그 동안 했던 내가 배은망덕한 일들이 일제히 생각났다. 정상적인 모습이 좋으니까 일어나셔서 내가 용서를 밀게 된다면 소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너그럽고 좋은 작은아버지께서는 가족들이 자신 때문에 가족들이 고생할까 생명을 주관하는 분의 계획에 순종해서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처럼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만나면 작은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약주를 대접하면서, 저질렀던 배은망덕한 행동들을 용서를 빌겠다고 생각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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