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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터로 훌쩍 떠나고 싶은 가을밤에
카테고리 : 연필로 그리는 삶 | 조회수 : 2762018-10-10 오후 9: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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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분주한 아빠의 손놀림을 따라 나도 덩달아 바쁘게 움직였다.
     
“분명 심심할 거야.”
“뭐가 심심해. 재미있지.”
혼잣말에 아빠가 대꾸를 해주셨는데 난 움직이던 손을 멈추지 않고 가방에 이것저것 심심하지 않을 놀 것들을 챙겨 넣었다.
     
“짐만 될 텐데...... 책 한 권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아빠가 한마디를 더 건넸지만 난 내 고집대로 가방에 더 넣을 것이 없는지 두리번거렸다. 아빠를 따라 낚시를 간다는 것은 작은 용기가 필요했다. 긴 시간 낚싯대만 뚫어져라 보고 있어야 한다고 엄마가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뻔한 지루함이 기다리는 곳인 줄 알면서 따라나선 것은, 아빠 따라 낚시 가면 자장면에 탕수육까지 거기다 콜라까지 사주겠다는 솔깃한 제안 때문은 아니다. 어디든 나를 데려가고 싶어 하는 아빠의 마음이 보여서 아빠와 함께 하고 싶었다. 아빠와 둘만의 시간은 어디를 가든 어린 나를 설레게 하는 즐거움이었다. 심심할 것 같은 낚시터였어도.
     
아빠는 징그러운 지렁이를 손으로 만지며 낚시하는 방법을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아빠의 설명보다는 지렁이의 꿈틀거림이 더 크게 들어왔다.
낚시를 따라갔지만 절대 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지렁이 때문이다. 징그럽기는 했지만 꼬물 거리며 살아있는 지렁이가  물고기 밥이 되어야 하는 운명이 가여웠다.
더 슬펐던 것은 지렁이를 먹으려다 잡힌 물고기였다. 파득거리는 물고기의 몸부림은 처절하기까지 했다. 식탁에 올라온 생선의 하얀 살은 냠냠 잘 먹었지만 낚시터에서 만난 물고기의 살아있는 눈을 보고는 도저히  매운탕을 목구멍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아빠가 끓여주신 정성스러운 음식이었지만 매운탕만큼은 먹을 수가 없었다.
     
“아빠-”
“응”
“우리 야만인 같아.”
“허허.”
아빠는 그럴듯한 말로 매운탕을 먹어도 되는 이유들을 말씀하셨지만 난 매운탕을 먹지 않았다. 낚시는 야만인의 이기적인 놀이 같아 보였다. 그때는 낚시의 느낌이 그랬다. 그럼에도 낚시를 따라다닌 것은 아빠와 보내는 시간이 좋았기 때문이다. 지렁이도 물고기도 불쌍하다며 울먹이는 딸을 위해 잡은 물고기를 대부분 놓아주기도 하셨고, 심심할 것 같다던 딸을 위해 라디오를 들고 가서 물고기들이 시끄러워하거나 말거나 노래를 틀어놓고 목청 높여 따라 부르기도 했다. 매운탕을 먹지 않는 딸을 위해 다른 먹거리를 준비해주셨다.  바로 라면! 파 송송 계란 톡! 양파도 듬뿍! 아빠를 도와 파도 송송 썰어보고 양파도 촘촘 다졌다. 삐뚤빼뚤 모양은 제각각이 된 야채들이지만 몇 번 더 해보면 잘하겠다는 아빠의 칭찬에 잘할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아빠 말씀대로 몇 번을 하다 보니 제법 그럴듯한 모양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아빠에게 배운 칼질이 지금 빛을 발 하나보다 어울리지 않게 칼질만큼은 잘하는 것을 보면. 
     
심심할 것 같다며 들고 갔던 가방 속 놀 것들은 아빠 예언대로 짐이 되었다. 책 한 권이면 충분했다. 그 책도 어떨 때는 펴볼 시간 없이 조용한 낚시터에서 우리는 시끌벅적하게 놀았다. 아빠와 함께 하는 낚시는 지루하지 않았다.
아빠는 산과 들과 바다로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멀리 보던 산, 그 속으로 들어가 자연의 냄새를 맡아보게 하셨고, 어른이 되어서 어쩌면 오르지 못하게 될 산을 오르고 정상에 서서 발아래 구름을 두는 기쁨을 미리 맛보게 해주셨다. 바다와 계곡물의 다름을 알게 하셨고 자연과 하나 되어 노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아빠가 없으면 해보지 못할 여러 가지를 경험하게 하셨다. 그중 하나가 낚시였다.
다름을 안고 살게 된 딸이 어른이 되었을 때 어쩌면 아빠가 없는 이 세상에서 아빠만큼 좋은 남자를 만나지 못하고 독신으로 살게 된다면 혼자 할 수 없는 것들을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셨던 것 같다. 
아빠가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을 다 보여주고, 해줄 수 있는 것을 다 해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보았다. 어린 내 눈이 아빠의 깊은 마음을 보았다. 그래서 심심할 것 같은 낚시도 따라나섰다. 

요즘 '도시 어부'라는 tv 프로를 가끔 본다. 남편은 낚시를 좋아하지 않고 가지도 않으면서 그 프로는 꼭 챙겨 본다. 배우 이덕화 씨를 보면 마음이 짠... 해진다. 아빠를 보는 느낌이 든다. 귀염 가득한 말 투, 듬직한 가장의 느낌... 그 프로를 보는 내내 소꿉놀이하듯 아빠와 함께 끓여먹던 라면이 먹고 싶어진다.
세상 어디에도 그 맛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내 기억에만 살아있는 맛이다.
아빠가 염려하신 것과 달리 난 독신으로 살지 않는다. 아빠만큼이나 좋은 남자를 만나 내가 보고 싶은 세상을 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다. 낚시만 빼고. '도시 어부' 덕분에 낚시가 재밌을 것 같다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어쩌면 또 다른 낚시터의 추억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좋은 예감이 든다.
     
심심할 것 같아 가방 가득 놀 것들을 챙겼던 시간, 징그럽지만 가여웠던 지렁이 그리고 끝내 먹지 않았지만 먹어보고 싶을 만큼 냄새가 좋았던 아빠표 매운탕, 꿀맛 같던 라면.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아빠를 떠올리게 하는 행복한 기억들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내 마음 한편을 채우고 있다.
처음 낚시를 따라나선 때가 10월을 시작하는 때였다. 해 질 무렵의 쌀쌀한 기온에 담요를 돌돌 말고 앉아있었지만 마음은 포근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다.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아빠가 끓여주신 매운탕을 꼭 먹어보고 싶다. 그 깊은 맛을 맛보고 싶다.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냄새는 기억 속에 보글보글 끓고 있다. 아빠와 함께 했던 시간으로 잠시라도 돌아갈 수 있는 그 냄새가 세상에 존재할까?...  그 깊은 맛을 내는 매운탕집을 꼭 찾고 싶은 10월이다. 그냥 그때 먹을걸...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때 먹어보지... 맛있었는데...”
아빠가 아프시고 하얀 병실에 누워 하신 말씀.. 지금도 마음을 아프게 하는 울림으로 남는다.
아빠는 딸에게 그 매운탕을 먹이고 싶으셨나 보다.

“아빠 다 나으면 또 가지 뭐. 이번에는 내가 잡아서 맛있게 끓여줄게.”
“네가? 맛있게? 허허, 아빠가 끓여줄게. 그건 내가 더 낫지 싶다.”
“호호, 네.. 먹고 싶었어요. 꼭 끓여줘. 얼른 나아서...”
"그래.. 진작 말하지 먹고 싶었다고.. 꼭 해줄게."
     
아빠는 딸에게 매운탕을 끓여주겠다는 말을 지키지 못했다. 그 아쉬움을 안고 먼 길을 가셨다.
그 걸음이 혹시라도 무겁지나 않았을지... 먹고 싶었다고, 말하지 말걸.. 괜히 아빠 마음만 무겁게 해드린 것 같아 죄송하다. 빨리, 꼭 나으시라고 보여드린 마음인데...

선선한 가을, 아빠와 함께 했던 그 시간으로 잠시라도 가보고 싶은 그런 계절이다.

낚시터로 훌쩍 떠나고 싶은 가을밤에... by 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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